정부가 농지 투기와 불법 이용을 막기 위해 진행한 전국 농지조사와 개정 농지법 시행으로 부산지역 농민 사이에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고령 농민의 임대 등 관행적인 위반 사례는 처분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후폭풍은 여전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제도를 농촌 현실에 맞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대부분 개인 간 임대"…단속 대상 될까 불안한 농민들
낙동강 삼각주에 자리 잡은 강서구 대저동은 부산의 대표적인 농업지역으로 시설하우스 등을 이용한 농업이 활발한 곳이다. 정부가 지난 5월부터 전국 농지 전수조사에 나서면서 이곳에서도 농지 임대차를 둘러싼 우려가 커지고 있다.대저동의 한 임차 농민은 "대저 지역은 자기 땅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10%도 안 될 정도로 대부분 개인 간 임대차가 이뤄지고 있다"며 "평생 농사를 지어왔는데 내 땅이 아닌 곳을 빌려 농사짓는 걸 불법이라고 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말했다.
또 "농사를 짓지 않으면 임대인이 결국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시설하우스를 비워달라고 하면 생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농민들이 특히 우려하는 건 농지은행 등을 거치지 않고 고령 농민이 이웃이나 지인에게 농사를 맡기는 등 관행적으로 이뤄져 온 개인 간 임대차 역시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농지법 위반으로 판단될 경우 농지를 처분해야 할 수 있다는 점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농지를 팔려고 해도 취득자격 등을 충족해야 해 일반 토지처럼 매수자를 쉽게 찾기 어렵고, 결국 제값을 받지 못한 채 헐값에 넘겨야 하는 것 아니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농지 투기 막기 위한 전수조사…농촌 관행과 법 사이 '간극'
헌법 제121조 1항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 원칙을 두고 있으며 소작제도 금지하고 있다. 현행 농지법 역시 농업경영에 이용할 사람이 아니면 원칙적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정부는 이를 근거로 사상 처음으로 전국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위반 농지에 대해서는 처분 절차를 의무 진행하도록 제도를 강화했다.
지난 5월 7일 국회를 통과한 농지법 개정안에 따르면 처분명령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감정평가액과 공시지가 중 높은 금액의 25%를 이행강제금으로 부과하도록 했다.
지난 7월 말 발표된 기본조사에서는 전국 농지 1013만 필지 가운데 27%인 284만 필지가 불법 임대차와 무단 휴경, 불법 전용 등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월부터 심층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정부, 관행적 위반 구제 위한 '특별조치법' 추진
정부는 농지 투기를 막는 것이 전수조사의 핵심이라며, 상속 농지를 이웃이 경작하거나 고령 농민이 다른 사람에게 농사를 맡기는 등 관행적인 사례는 처분하지 않겠다며 우려를 잠재우고 있다.
또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관행적·생계적 위반에 대해서는 처분을 유예하고, 신고·신청 등을 통해 위반 상태를 정상화할 수 있도록 특별조치법을 연내 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8일 농지 전수조사 관련 브리핑에서 "농사짓는 농업인에게는 아무 피해가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투기가 아닌 일반적 사안은 처분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방향으로 국회와 협의해 특별조치법을 제정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일 열린 농지 특별조치법 제정 방향 토론회에서도 관행적 임대차에 2~3년의 정상화 기간을 주고, 실제 경작자가 농지은행을 통해 농지를 빌리거나 소유자와 서면계약을 맺어 농지대장에 등록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전문가 "농촌 현실 반영해 지킬 수 있는 법으로"
전문가들은 이번 전수조사를 계기로 농지 투기와 관행적인 농지 이용을 구분하고, 실제 농업 현장에서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 법 원칙과 농지 이용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게 벌어져 있는 만큼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사동천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그동안 농지법에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규정들이 누적돼 있었고 제대로 집행되지 못한 부분도 있다"며 "이번에는 농지로서 보전해야 할 부분과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부분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단기간에 개선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을 중심으로 농지 임대차를 제도화하고 임대료 등을 적정하게 관리해 투기 목적 소유를 막아야 한다"며 "실제 농업 생산이 가능한 농지와 그렇지 않은 농지를 구분해 이용 규제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