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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박성태> 1926년 일제강점기에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가갸날에서 시작된 한글날, 올해로 딱 100년이 됐습니다. 빼앗긴 조국에서 절박함으로 지켜낸 한글, 이제는 뭐 K-POP이나 또는 영화, 이런 데서 한글 많이 나오고 있고요. 외국 청소년들도 한글 자음, 모음이 있는 티셔츠를 입기도 합니다. 오늘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서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와 한글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 준비했습니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 정재환> 안녕하세요, 정재환입니다.
◇ 박성태> 정재환 대표님입니다. 기억하실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많은 분들이 과거 정말 젠틀하고 바르셨던 코미디언, 개그맨으로 알고 계실 텐데 지금은 한글문화연대 대표시네요.
◆ 정재환> 예, 제가 젊었을 때 개그맨으로 또 방송 사회자로 일을 하다가 어느 날 우리말이 참 소중하고 중요한 거구나 뒤늦게 깨닫고, 그때 어떻게 한글 운동을 하게 돼 가지고요. 2000년에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쭉 활동을 하고 있는 거죠.
◇ 박성태> 그렇군요. 그러면 원래 개그맨 하시다가 아나운서 역할도 많이 하셨고,
◆ 정재환> 아나운서는 아니고요. 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많이 했습니다.
◇ 박성태> MC를 많이 보셨죠. 그러면 말을 가지고 하는 일을 하시다가 우리 말과 글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련 활동을 이어오신 계기가 있었습니까?
◆ 정재환> 처음에는 사실은 개그맨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니까요. 사람을 웃겨야 되고, 그리고 또 웃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행복했죠. 그런데 이제 프로그램 이렇게 진행을 하다 보니까 이게 또 말을 정확하게 해야 될 필요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를테면 한 번은 이렇게 숫자를 세는데, 이제 쉰하나, 쉰둘, 이렇게 세야 되는데 쉬은하나, 쉬은둘, 그랬더니 그걸 딱 따끔하게 지적하는 시청자도 계셨고요. 그리고 아무튼 제가 이렇게 실수를 하면서 아, 우리말 공부를 좀 해야 되는구나. 그리고 이게 마이크 앞에서 이제 말을 하면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직업인데 최소한 밥값은 해야겠다, 그래서 또 이제 공부를 하게 됐고요.
◇ 박성태> 그렇군요.
◆ 정재환>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쓰기'라든가 또 나중에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 존중의 근본 뜻'이라든가 이런 책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한글 사랑에 빠지고,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있긴 있었습니다. 1998년에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라는 책이 나왔는데, 간단히 말씀드리면 우리말 쓰지 말고 앞으로 영어를 우리말로 하자 뭐 이런 얘기였는데.
◇ 박성태> 일부는 주장을 하는 분들이 있었죠.
◆ 정재환>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영어 공부의 필요성은 대부분 다 공감하시고 또 열심히 공부할 필요도 있고 그렇지만 아니,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를 우리말로 쓰자? 동의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그때 위기를 느끼고 이게 일제강점기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해서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어서 일단 지키고, 그리고 가꾸고, 더 키우자. 그런 생각으로 활동을 하게 된 겁니다.
◇ 박성태> 아, 그러셨군요. 사실 저도 기억이 납니다. 과거에 이제 몇몇 분들이 얘기를 한 거죠. 어차피 영어 교육 문제가 큰데 사교육 문제가 커지고 하니까 국제화 시대에 아예 영어를 그냥 우리말로 쓰자 이런 주장을 했던 분들이 계셔요.
◆ 정재환> 그런데 그때는요. '그래, 영어를 우리말로 쓰면, 영어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도 굉장히 많았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필리핀 같은 경우에 1900년부터 아무튼 미국이 들어가고 미국의 교육을 하고 이제 그러면서 영어를 쓰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타갈로그어하고 영어가 공용어인데 영어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냥 타갈로그어를 쓰든가 또는 뭐 세부아노라고 해서 그 지역 말을 쓰든가, 그러니까 학교에서는 영어 배워야죠, 자기 지역 말 배워야죠, 뭐 이런 상황이 돼 있는 거죠.
◇ 박성태> 알겠습니다. 아무리 편의나 이런 게 있다고 해도 우리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글을 버리는 건 좀 아닌 거죠.
◆ 정재환> 지금 말씀하신 그 부분이 사실은 가장 큰 이유였죠. 이를테면 뭐 영어를 잘하면 우리가 뭐 좀 얻을 수 있는 게 있을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버리는 거는 이건 안 되지 않느냐, 그게 가장 컸습니다.
◇ 박성태> 그래서 한글문화연대를 만들어서 지금 대표로 계십니다. 본격적으로 우리 글에 대해서, 한글에 대해서 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글날의 전신, 가갸날, 이게 1926년에 만들어졌는데 이거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 정재환> 지금은 우리가 뭐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 자유가 없었죠, 그러니까 일제의 통치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뭐든지 마음먹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1926년 처음으로 이제 가갸날을 제정해서 이 한글을 기념하게 됐다는 거, 그게 저는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때로부터 100년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분들 생각은 일제가 자꾸 억압을 하고 이제 우리 말글을 이제 없애려고 하고, 1920년대 후반 시점만 해도 그렇게 강도가 세지는 않았지만 일제는 식민 지배하면서부터 조선 사람들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고 했던 거거든요. 그러니까 동화의 궁극적인 실현이라는 거는 그냥 조선 사람들이 다 일본말 하는 거고.
◇ 박성태> 말과 글에서.
◆ 정재환> 그리고 우리 왕은 일왕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고,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거거든요. 그러니까 거기에 이제 저항하고 대항하고 투쟁하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게 1926년 가갸날 기념식이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 박성태> 그 당시에도 그러면 이 국제적으로도 한글의 위대함도 알고 있었고, 또 가갸날을 통해서 한글을 지키는 게 독립운동이다, 이것도 이제 기반이 된 거군요.
◆ 정재환> 그렇죠. 그러니까 사실 이 식민 지배 같은 것을 하게 되면요, 대개는 다 그런 건 아닙니다마는 프랑스 같은 경우가 그랬고 이제 일본이 그랬던 거죠. 그러니까 단순히 그 땅과 사람을 통치하는 게 아니고 지배하는 게 아니고, 그냥 완전히 우리랑 똑같이 만든다, 그러면서도 또 사실은 실질적인 차별이 있죠. 나중에 창씨 개명 같은 걸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조선 사람 이름까지도 그냥 일본 사람하고 똑같이 만들어, 그렇게 해야 우리가 내선일체 이게 되는 거고 같은 일본 사람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도 또 일본 내부에서는 그 창씨를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그건 왜 그러냐 하면요, '생김새도 비슷하고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하면 구별이 안 되지 않느냐' 그러니까 그런 어떤 아주 근본적인 그런 차별이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겉으로는 어쨌든 '우리 똑같아, 우리 일시동인이잖아' 그렇지만 그들과 마찬가지 생각일 수 있는데 우리는 조선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야 된다, 그리고 그것의 정수인 말과 한글을 지켜야 된다라고 생각했던 거죠.
◇ 박성태> 그래서 한글날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실은 5대 국경일 중의 하나예요, 그만큼 한글이 중요하다는 걸, 제가 기억으로는 한글날이 예전에 공휴일이었다가 저 어렸을 때 한동안 공휴일이 아니었다가 2000년대에 그때 다시 공휴일이 됐습니다.
◆ 정재환> 네, 노는 날이 너무 많아서 경제 활동에 지장이 있다 해가지고 1991년부터 평일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평일이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문제가 생기냐 하면 사람들이 한글날이 언제인지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글날 언제입니까? 이런 설문조사도 있었는데 모른다고 응답한 분도 많았고, 10월 1일 아닌가요? 이렇게 또 대답한 분들도 있었고.
◇ 박성태> 국군의 날이고 하니까요.
◆ 정재환> 네, 그렇죠. 그러니까 일단 딱히 뭐 이렇게 크게 기념하는 것도 아니고 공휴일이 아니니까, 평일이니까 그게 이제 의식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해서 저희가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도 하고, 그리고 또 2006년부터 국경일이 됐는데요. 여전히 평일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직장에 출근해야 되고 또 학교에 가야 되고 별 재미가 없어요. 그리고 마음껏 그날의 의미를 새기고 즐길 수도 없고. 그래서 이거 공휴일 다시 해야 된다 해가지고 또 열심히 거리에 나가서 서명도 받고 청원도 하고 뭐 그러면서 2013년부터 공휴일이 된 겁니다.
◇ 박성태> 2013년부터 한글문화연대가 한글날 공휴일 만들기에 큰 역할을 하셨고.
◆ 정재환> 예, 저희만 한 건 아니고요. 한글학회도 있고 한글 단체들이 많이 있죠.
◇ 박성태> 여러 한글 단체들이, 그냥 쉬는 날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날 중의 하나죠. 그러면 본격적으로 이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저희가 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대왕이 원래 만든 이유, 이게 나오잖아요.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제 뜻을…' 저도 다 외우네요.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그랬었는데 이것 자체가 사실 서민들, 지금으로 따지면 약자들을 위해서 만든 거잖아요.
◆ 정재환>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문자죠. 그리고 참 놀라운 것은 15세기에 동양도 그렇고 서양도 그렇고 보통 사람을 위해서 문자를 만든다?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특히 지도자, 위정자들 그런 생각을 안 했죠. 사실 이 문자라는 게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어떤 지배의 수단이기도 했고 지배 계층의 어떤 특권이라고 그럴까, 전유물이기도 했거든요. 그러니까 문자를 앎으로 해서 내가 권력도 가질 수 있고 또 부도 쌓을 수 있고 그랬던 건데, 보통 사람들이 문자를 알게 된다, 그러면 이게 뭔가를 나눠야 되는…
◇ 박성태> 권력이 나눠지는 거군요, 그게.
◆ 정재환> 그런 이제 상황이 되는 거죠. 그래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조정에서 공표를 한 거죠. 그게 1443년 12월 30일 자 세종실록기록에 나오는 건데요, 아마 그때 문무백관들 굉장히 당황했을 겁니다.
◇ 박성태> '글자는 우리만 알아서 써야 그게 우리 권력인데, 어디 서민들에게, 당시는 양민들에게 알 수 있는 글들이 있냐'
◆ 정재환> 예, 세종이 아주 은밀하게 그런 걸 했다는 거. 그러니까 대신들하고 의논도 안 하고 했다는 거. 이런 것도 이제 문제가 될 수 있는 거고요. 어쨌거나 이제 1444년에 한 두 달이 채 못 돼서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이 반대를 하게 되는 거죠. 반대를 하게 되면서 아니, 백성들은 뭐 굳이 문자 몰라도 괜찮습니다. 이런 것도 또 그 반대 이유에 들어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대부들, 당시 이미 문자를 알고 있고 모든 것을 갖고 있고 그러니까 새로운 문자의 필요성, 이런 건 그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거죠.
◇ 박성태> 그런데 결국은 만들어졌고 사실은 처음에 만든 다음에 새로운 글자잖아요. 사실은 입모양, 소리, 또 이렇게 모음으로 천지인을 따서 만든 것들인데, 당시에 조선시대 때 15세기에 우리 서민들은 그걸 익히기가 쉬웠나요? 어땠습니까?
◆ 정재환> 사실은 방금 말씀하신 그 입모양, 그러니까 뭔가 이 말을 할 때 발성기관의 움직임, 조음 위치, 이런 걸 갖고 한글을 만들었다. 또 모음자 같은 경우에는 자연, 하늘과 땅과 사람, 이런 것을 갖고 글자를 만들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알려진 겁니다. 1940년에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이후고요. 그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 박성태> 그전에는 기역, 니은, 디귿 뭘 만들었는지.
◆ 정재환> 알 수는 없었죠.
◇ 박성태> 그냥 리을이면 갑자기 세종대왕이 지나가다가 지렁이를 보고 이걸 리을로 써야 되겠다. 예를 들면 그런 식으로밖에 몰랐다는 거죠.
◆ 정재환> 그러니까 실제로 여러 가지 추정이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세종께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시다가 문창살을 보고 만들었다,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 제가 어렸을 때는 정말 그걸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가르쳐 주셨거든요.
◇ 박성태> 그래요?
◆ 정재환> 그럼요.
◇ 박성태> 그런데 이제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해례본이란 세종대왕이 '내가 한글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어요'라는 책인 거죠.
◆ 정재환> 그러니까 언어학에 대한 깊은 지식과 과학적인 사고를 갖고 이제 그걸 만들었다는 게 뒤늦게 발견된 거고요. 그런데 이런 제자 원리가 발견되기 이전에도 한글은 굉장히 배우기 쉽고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글자였다는 거죠.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글자이기 때문에 세종께서는 내가 이런 새 글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전략을 세웠을 거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은 사실은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공부할 수는 있지만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고 돈도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쉽게 배울 수 있는 문자여야 된다.
◇ 박성태> 무조건 쉬워야 된다.
◆ 정재환> 아주 쉬운 글자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이제 그 창제 작업에 착수를 하신 거죠. 그래서 실제로 나중에 훈민정음 해례본 마지막에 정인지가 쓴 글에 보면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면 깨우치고,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렇게 돼 있는데 며칠 만에 깨우치셨습니까? 한글.
◇ 박성태> 저는 제가 깨우칠 때는 기억이 잘 안 나요, 사실.
◆ 정재환> 기억이 안 나시죠? 저도 기억이 안 납니다.
◇ 박성태> 그러네요.
◆ 정재환> 왜냐하면 저희는 어렸을 때 학교를 이렇게 다니면서 그날그날 조금씩 배워갔던 것 같거든요.
◇ 박성태> 부지불식간에 알게 되니까.
◆ 정재환> 물론 처음에 뭐 기역, 니은도 외우고 뭐 가갸거겨 이런 것도 연습을 했겠지만. 그런데 외국인들한테 이렇게 물어보면 오히려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인지가 얘기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지혜로우면 아침나절. 19세기 말에 육영공원에 영어 교사로 왔던 호머 헐버트 박사가, 그러니까 영어를 가르쳐야 되는데 조선어를 알면 더 쉽게 잘 가르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조선어 공부, 이제 글자 공부를 했는데 한글을 4일 만에 터득했다고 했습니다.
◇ 박성태> 물론 뭐 한글이 어렵다라는 건 일부 외국인들이 그 미세한 뉘앙스를 준다든지, 그런 부분을 구별하는 게 좀 어렵고 존칭이 어려울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글은 정말 쉬운 언어다라는 거군요.
◆ 정재환> 그러니까 사실 지금 말씀하신 부분은 이제 한글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한국어의 문제를 이제 아울러서 봐야 되는 그런 부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외국인들이 지금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한 500만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요. 이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어는 어렵다, 그렇지만 한글은 쉽다'
◇ 박성태> 한글은 쉽다.
◆ 정재환> 며칠 만에 다 외웠다.
◇ 박성태> 이게 세종이 원래 이제 자꾸 범죄가 나오니까 '삼강오륜이 있는데 왜 이렇게 범죄가 나오냐'
◆ 정재환> 예, 그런 것도 있습니다.
◇ 박성태> 삼강오륜을 양민들이, 농민들이 못 봅니다, 한문으로 돼 있어서. 그래? 그러면 만들자 그랬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 정재환> 있습니다. 실제 세종께서는 백성을 교화시키는 거, 그러니까 그게 전근대식 어떤 표현인 거죠.
◇ 박성태> 사실 그것도 애민정신에서 나온 거죠.
◆ 정재환> 네, 진주에서 김화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그런 끔찍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세종께서 굉장히 충격을 받으시죠. 이 백성들이 사람의 도리를 알아야 되고 삼강오륜을 알아야 되는데 가르칠 방도가 없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새 문자가 필요했고 그런데 결국은 백성들이 글자를 쓰게 되면서 지식과 정보에, 하루아침에 모든 게 뒤집어지지는 않습니다마는, 접근할 수 있고 그러면서 서서히 깨어나게 되는 거죠.
◇ 박성태> '실제 한글이 배우기 쉽다. 정말 과학적이고 친서민적인 글이다'라는 건데, 지금 그게 과거가 아니어도 지금도 여든이 넘어서 상당히 뒤늦게 한글을 쉽게 깨우친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 정재환> 그럼요. 칠곡 할매들께서 굉장히 유명하시죠. 그런데 이분들이 사실은 뭐라 그럴까요? 어렸을 때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시고, 집에서 일찍이 밭에 나가 일을 하거나 조금 성장해서는 공장에 가서 돈을 벌거나 그러면서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고, 특히 남자 형제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했던 거죠. 또 과거에는 여자들은 공부 안 해도 돼,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고 그래서 학교에 안 보내기도 했고. 그래서 평생을 이분들이 글자를 모르고 산 거죠. 그래서 이분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동사무소 가는 거, 왜냐하면 그런데 가면 이름을 쓰라고 하니까요, 주소를 쓰라고 하고. 그래서 우체국이라든가 은행, 이런 데도 마찬가지인데 될 수 있으면 그런데 가는 걸 피하시고. 그 버스에 보면 행선지가 적혀 있지 않습니까? 그걸 읽을 수 없으니까 혼자서는 버스도 못 타시고 그렇게 사셨는데 나중에 한글문해교실 이런 데 다니시면서 그걸 배우시고 이제 비로소 글을 읽게 되신 거죠. 지금 칠곡 할매뿐만이 아니라 전국에 그런 할머니들이 굉장히 많이 계신데 다들 제가 볼 때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지 않나.
◇ 박성태> 그만큼 쉬워서, 쉽게 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글자다. 못다 한 얘기가 너무 많아서 유튜브로 조금만 더 괜찮으시겠습니까?
◆ 정재환>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요.
◇ 박성태> 그러니까요. 그럼 본방송은 여기까지 하고 유튜브로 제가 조금 더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