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이름 짓고 여성도 족보에…순천 한글학자 송병수 선생 재조명

한글날 100주년 맞아 전남CBS 시사포커스서 삶과 업적 조명
46년간 국어 교사 재직…며느리 박옥임 전 교수, 한글 사랑 실천한 삶 회고

순천의 한글학자 아보 송병수 선생. 『한글학자 아보 송병수 선생』 캡처

'어지니', '열리미', '언더기', '움지기', '송송이'.

순천의 한글학자 아보 송병수(1919~2002) 선생이 자녀들에게 지어준 이름들이다. 한자 대신 우리말의 뜻과 소리를 담은 이름으로, 평생 한글 사랑을 실천했던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은 9일 전남CBS '시사포커스'에서는 송 선생의 며느리인 박옥임 전 순천대학교 교수와 박소정 전 순천YMCA 이사장이 출연해 고인의 삶과 업적을 되짚었다.

1919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송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우리말과 글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부르는 이름과 실제 기록하는 이름이 다르다는 점에 의문을 품은 것이 계기였다.

순천농업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교사의 소개로 조선어학회에 직접 편지를 보냈다. 몇 달 뒤 학회에서 발간한 잡지 '한글'을 받아 밤새 읽으며 우리말 연구에 대한 관심을 키웠고, 학생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송 선생은 이후 46년간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우리말 연구와 한글 보급에 힘썼다. 특히 일상에서 우리말을 지키는 실천으로 순우리말 이름 짓기에 앞장섰다.

자녀들에게 '어지니', '열리미', '언더기', '움지기', '송송이' 등의 이름을 지어줬지만, 당시에는 한글 이름을 호적에 올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1948년 태어난 자녀의 이름을 한글로 등록하려 하자 호적 담당 기관은 한자 이름을 지어오라며 이를 거부했다. 송 선생은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로 이름을 짓는데 호적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은 부당하다며 맞섰다.

한글 이름을 인정받기 전까지 호적의 이름란을 비워두고, 법원의 유권해석까지 받아내며 끝내 한글 이름을 등재했다.

이러한 이름 짓기는 손주들에게도 이어졌다. 생명의 원천인 강을 뜻하는 '가람'에서 비롯된 '가라모',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으뜸이라는 의미를 담은 '길마로', 컴퍼스처럼 사물의 척도가 되고 원만하고 합리적인 사람이 되라는 뜻을 담은 '거름수' 등이다.

손주들은 한글학자인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에 자부심을 가졌고, 송 선생은 주변 사람들의 자녀에게도 순우리말 이름을 지어주며 한글 이름의 가치를 알렸다.

박 전 교수는 "아버님은 정신과 얼이 살아 계셨던 분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을 실제 삶에서 실현하셨다"며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셨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순천의 한글학자 아보 송병수 선생과 가족들. 『한글학자 아보 송병수 선생』캡처

송 선생은 1984년 순우리말 이름의 가치와 표기 방법을 다룬 논문을 발표하며 한글 이름의 보급 방향을 제시했다.

또 한글 가로쓰기 족보를 만들고, 기존 족보에서 빠져 있던 여성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 기록했다. 한자와 남성 중심으로 이어져 온 족보의 관행에서 벗어나 우리말과 여성의 이름을 함께 존중하려는 실천이었다.

한글 사랑은 이름과 연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송 선생의 호인 '아보'는 '아끼고 보살피자'는 뜻으로, 한자 대신 우리말로 지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에게도 우리말 이름을 붙였고,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까지 아끼는 삶을 살았다고 가족들은 회상했다.

순천 지역의 지명과 어원, 역사 등을 연구한 향토사학자로도 활동했다. 오랜 교직 생활과 지역사회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순천시민의 상을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박소정 전 이사장은 "한글을 사랑하자는 말에 그치지 않고 가정과 교육 현장에서 직접 실천했다는 점이 감동적"이라며 "단순히 한 가정의 아버지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분"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8일 전남CBS '시사포커스'에 출연해 시아버지인 한글학자 송병수 선생의 삶과 업적을 소개하는 며느리 박옥임 전 순천대학교 교수. 유튜브 '전남 CBS' 캡처

송 선생의 한글 사랑과 실천적 삶을 알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며느리인 박옥임 전 교수는 지난해 송 선생의 글과 연구 성과를 엮은 유고집을 발간해 그의 삶과 업적을 재조명했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유고집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사랑을 일상에서 실천한 송 선생의 삶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박 전 교수는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박 전 교수는 "교육은 우리 삶의 기본인 만큼 세종대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글을 창제했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며 "외국어와 속어, 비어, 은어 등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시대에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병수 선생의 후손들이 펴낸 문집 『한글학자 아보 송병수 선생』. 박옥임 전 순천대 교수 제공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