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보다 '노무현 신화' 때린 한동훈…노림수와 득실은?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1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D-1 토론회, '검찰 폐지, 내일부터 지옥문이 열린다'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은 자당 정치인들이 검찰로부터 조작수사를 당해 순교했다는 식으로 '거짓 전설'을 만들어 지지층에게 주입하고 국민들 상대로 가스라이팅을 해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작수사에 당했다는 '노무현 신화'가 대표적입니다."
 
지난 1일 국회 토론회에서 화제가 된 무소속 한동훈 의원의 발언이다. 그는 검찰 폐지의 근원이 진보 진영의 '노무현 신화'라는 주장을 펼쳤다. MB정부 때 '박연차 게이트'로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유명을 달리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검찰 탓이라는 시각을, 여권이 국민들에게 주입해 왔다는 것.
 
한 의원은 더 나아가, "노 전 대통령은 본인 또는 그 가족이 스폰서 박연차(前 태광실업 회장)로부터 3억원 넘는 피아제 시계를 받았다"며 "논두렁에 버렸든, 망치로 깨부쉈든, 그런 시계를 받으면 안 된다는 본질을 가릴 수 없다"고 했다. 김승원 전 법무장관 후보자의 '신약 임상 로비' 의혹을 때리며 낙마를 견인한 화력을 고스란히 옮겨온 모양새다. 이달 들어 한 의원이 1주간 페이스북에 올린 관련 게시물은 40개가 넘는다.
 

'박정희' 대신 '脫 노무현 신화' 띄운 韓

한 의원이 '노무현 신화' 탈피를 표방한 표면적 명분은 여권의 무리한 '검찰개혁'이다. 노 전 대통령을 이 주제로 언급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월 초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씨를 부른 간담회에서 민주당 김민석 대표 등을 고인과 함께 거명한 것.
 
당시 한 의원은 민주당이 20여 년간 견지한 '복수심 마케팅'이 피해자 보호시스템 붕괴를 자초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을 일방적 피해자로 묘사하고 검찰을 악마화했다는 의미의 "가스라이팅"도 여기서 튀어나온 표현이다. 이로부터 두 달이 지난 지금, 여권의 검찰개혁 강경론자들이 검찰 출신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를 반대하며 여태 '친윤 논쟁' 중인 상황을 감안하면, 근거 없는 공세만은 아니다.
 
다만, 연이은 노 전 대통령 소환을 기존 대여투쟁의 연장선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 전 대통령 수사와 죽음에 대한 인식론은 법무장관 인사 같은 현안과 거리가 있을뿐더러, 국감 정국을 관통하는 이슈도 아니다.
 
실제로 최근 보수진영이 뜨겁게 호명하는 전직 대통령은 따로 있다.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로 폄훼 논란에 휩싸인 박정희 전 대통령. 국민의힘은 육 여사 죽음 관련 '배후설'을 담은 이 작품이 "박 전 대통령 명예훼손"이라며 상영 중단을 압박 중이다. 1주차 국감도 온통, 관련된 논쟁으로 얼룩졌다.
 
그런데, 한 의원은 지난달 28일 '암살자(들)'이 비판받아 마땅한 영화라는 공식 입장을 딱 한 차례 남겼다. '조작수사' 프레임을 깨겠다며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진보언론들의 보도까지 파묘(破墓)한 집요함에 비하면, 거의 최소한의 코멘트다. 앞서 필요하면 "(SNS 글을) 하루 50개가 아니라 5천 개라도 쓰겠다"고 밝혔던 대여 저격수로선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장동혁 등 국힘 당권파와 '메시지 차별화'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한 의원이 '박정희 수호전(戰)'에 편승하길 원치 않았을 거라는 해석이 나왔다. 노선과 전략 상, "좌파들의 음모론"이라며 '암살자(들)'을 맹공해온 장동혁 대표 등과 구별된 메시지를 내는 게 유효했을 거라는 취지다.
 
영화가 촉발한 정쟁과 전장은 이미 장 대표와 또다른 당권 주자들인 주진우·이진숙 의원 등이 선점한 탓이다. 이들은 '올공(올림픽공원) 세력'으로 대표되는 강성 지지층의 성원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 재건'을 내세우는 한 의원과 결이 다르기도 하다. 이에 더해, 국민의힘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 때 '국정농단' 수사를 담당한 한 의원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미묘한 관계도 한 의원이 이 사안에 말을 아끼는 이유로 거론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한 의원이 검찰 폐지와 맞물려, 노 전 대통령 이야기를 전면에 꺼낸 데엔 독자적 스피커로서의 차별화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도 "대한민국 전체, 특히 보수진영에서조차 금기시되어 온 얘기"를 공론화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며 전통 지지층을 결집하기 좋은 소재란 점, 검찰개혁에 대한 온도 차로 갈라진 여권 내 균열을 파고들 수 있다는 점도 한 의원에겐 플러스 요인이다. 국민의힘의 한 초선 의원은 "창작품에 대한 소모적 논쟁보다 이 편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고 봤다. 다른 당 관계자는 "본인이 잘하는 '팩트 전쟁'으로 존재감 각인에 성공했다"고 평했다.
 

지지층 확장엔 '마이너스'로 작용할 듯

하지만, 여권의 뇌관을 건드린 여론전으로 얻을 실익은 크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당장 여당에서는 격앙된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고인의 금품 수수를 기정 사실로 못 박은 한 의원을 향해 "사건의 변호인도 아니었고, 담당 수사검사도 아닌 사람이, 감히 '모든 사실이 팩트'라며 외치고 있다"며 설전을 이어갔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도 "역사의식이 윤석열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맹폭했다.
 
야권에선 사뭇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한 의원의 공격력은 인정하면서도, 참전은 꺼려하는 것. 한 의원 복당(復黨)에 우호적인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도 '조금 과한 게 아니냐'는 반문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지 여부를 떠나 국민적 향수가 있고, 비극적 최후를 맞은 전직 대통령을 자꾸 도마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얘기다. 중도층으로 지지 기반을 확장하는 데도 실(失)이 더 클 거라는 지적이다.
 
한 영남권 의원은 "못할 말은 아니라 보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고 했고, 또다른 당 관계자는 "대권 주자로서 현명치 못한 처신이다. 장기적으로 운신의 폭을 좁힐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청 폐지로 귀결된 '검찰개혁'이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앙심을 품은 여권의 프레이밍에 따른 결과라는 한 의원의 대전제 역시, 다소 비약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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