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올초 증시 부양과 더불어 속도감 있게 추진해온 '다산다사(多産多死)' 정책이 급정거를 하게 됐다. 국정과제인 '코리아 프리미엄을 향한 자본시장 혁신' 일환으로 상장폐지 요건 강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준비 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채 제도 시행 시기를 무리하게 앞당긴 게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부실기업 '신속' 퇴출하려다 되레 지연…앞당겼던 시행 시기 재유예 혼선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재판장 권성수)는 지난 2일 코스피 상장기업 주연테크와 코스닥 상장기업 케이엠제약이 각각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낸 상장폐지결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CBS노컷뉴스가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재판부가 지적한 제도 도입·시행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너무 성급했다'로 요약된다.
당초 상장 유지를 위한 시가총액 요건 강화 조치는 2025년 1월 금융당국이 발표한 '주식시장의 질적수준 제고를 위한 기업공개(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을 통해 1~3년의 준비 및 순차적 제도 도입 기간을 두고 예고된 바 있다.
그 사이 정권교체가 있었고, 이후 금융위원회는 2025년 12월 부처 업무보고를 통해 '코스닥 신뢰+혁신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다산다사 구조로 상장심사·상장폐지 제도를 재설계해 혁신기업의 원활한 상장과 부실기업의 엄정·신속한 퇴출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때만 해도 앞선 제도개선에 따른 상폐 제도의 면밀한 준비와 제도안착을 다짐했을 뿐이다.
상황이 급변한 건 2026년 2월 11일 금융위와 거래소가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방안'을 발표하면서다. 코스피가 '5천피(P)'를 돌파하며 상승을 위한 '풀악셀'을 밟은 시점이기도 하다.
권대영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현 재정경제부 1차관)은 "지난 20년간 코스닥 시총은 8.6배로 크게 상승했지만 지수는 1.6배 상승에 그쳐 더 신속하고 더 엄정한 부실기업 퇴출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돌연 시총 요건 상향조정 계획을 조기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발표 당시 시점으로 겨우 한 달여 전 40억→150억 원으로 급격히 오른 코스닥 시총 기준 추가 상향 시기가 앞당겨졌다. 2027년 1월 시행될 기준 적용 시기가 올해 7월로, 2028년 1월 시행될 기준은 2027년 1월로 빨라졌다. 기업들이 1년 뒤에야 맞이할 줄 알았던 새 기준을 짧게는 불과 넉달 뒤 적용받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시총요건 조기 시행은 코스피에도 똑같이 적용됐고, 주가 1천 원 미만 동전주 상폐 요건을 신설한 '거래소 상장규정 개정(2026년 5월 13일 승인)'으로 굳어져 7월 1일 시행됐다.
그 결과 케이엠제약은 7월 9일, 주연테크는 7월 21일자로 각각 시총 미달에 따른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이어 90거래일 중 '45일 연속' 시총 회복이라는 요건마저 채우지 못하며 상폐가 결정됐다. 이에 케이엠제약은 9월 1일, 주연테크는 9월 7일 소송을 냈다. 회복 요건 역시 기존 30일에서 45일로 강화된 것이다.
法 "시총 기준, 불과 한 달여 앞두고 갑작스럽게 당겨 시행" 지적
재판부가 당초 2025년 1월 발표한 시총 미달 기준 상향 자체까지 문제로 본 건 아니다. 그러나 시총 기준이 50억 원, 40억 원으로 과도하게 낮았던 종전에 비해 가파르게 높여가는 상황에선 심사 절차가 달라야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기업의 이의신청 절차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실제로 적용된 사례가 확인되지 않는 기존 상장규정상 시가총액 기준과 달리, 상향된 기준에 의하면 다수의 상장법인에 상장폐지 사유가 적용될 수 있으므로, 개정 이후에도 이의신청 절차를 두지 않은 것이 정당화된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시가총액 미달 기준 도입 시기를 앞당긴 것과 관련해 거래소는 '부실 기업의 적시 퇴출이라는 공익적 목적'이라고 설명했는데,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도 "추상적인 설명 이외에 그 시기를 앞당길 구체적인 사유나 필요성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또 "시가총액 300억 원(코스닥 200억 원) 미달 기준은 불과 한 달여 만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앞당겨 시행됐다"며 조기 시행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과조치 적용기간 단축으로 인해 당초 제시된 일정에 맞춰 시가총액 상승 계획을 마련했던 상장법인으로서는 계획의 실행에 상당한 차질을 입게 됐다"며 기업들의 피해를 인정했다.
관리종목 지정 '유지'·상폐만 '유예'했지만…제도 자체 뒤집힐 가능성도
판결 이후 거래소는 지난 7일 입장문을 내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이의신청 과정에서 충실히 소명해 나가겠다며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 아울러 7월 1일부터 시행해온 시총 미달 기업의 관리종목 지정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지정 후 후속 상폐 절차는 이번 법원 판단에 따라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거래소가 유지하기로 한 관리종목 지정에 대해서도 추가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주연테크를 대리하는 변호인측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관리종목 지정 결정의 적법성도 추후 본안소송을 통해 다툴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시총 미달 기업의 관리종목 지정 효력 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의 결론도 임박해 주목된다. 최근 코스피 상장기업 2곳이 낸 가처분 소송이 심문기일을 마친 만큼, 이들 사건에서도 가처분이 인용된다면, 시총 미달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 및 상폐 제도 자체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거래소 역시 이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는 이번 판단이 나온 지난 10월 2일 유가증권시장 및 코스닥시장 상장규정 시행세칙에 법원 결정시 상장폐지를 유예할 근거를 마련해 당일 시행했는데, 관리종목 지정 조치 역시 법원 판결이 나오면 즉시 유예할 수 있도록 조치해둔 상태다.
이처럼 무리하게 일정을 앞당긴 코스피·코스닥시장 부실기업 퇴출 정책이 법적 소송에 휩싸이며 시장의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융위는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 상향은 연구용역, 해외사례 조사 등 다각적 사전검토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한 것"이라며 "거래소는 이번 가처분 결정에 이의신청을 제기하며 제도의 취지와 필요성을 충분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