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자금 270억 원 세탁한 20대 조직원 8명 구속 송치

경기도→대구→광주로 보내라는 수상한 퀵서비스 배달 의뢰
포장 뜯어보니 대포통장…도박자금 세탁조직 일망타진
20대 중반 친구·선후배 사이 조직 구성…한 달 새 수수료 1억 2천만 원 챙겨
광주 광산경찰서, 끈질긴 추적으로 자금세탁 공범 8명 구속 송치

광주 광산경찰서가 불법 도박자금 세탁 조직으로부터 압수한 물품. 광주 광산경찰서 제공

"경기도에서 대구로 물품 퀵서비스를 의뢰한 사람이 다시 광주로 가라는 겁니다. 뭔가 이상했어요"
 
지난 9월 1일 한 퀵서비스 기사는 평소처럼 배달 주문을 받고 경기도에서 물건을 받아 대구광역시로 급히 향했다.
 
기사가 대구의 약속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의뢰인은 다시 전화를 해 "보낼 주소를 잘못 입력했다"면서 "물건을 전남광주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헛걸음하게 된 기사는 웃돈을 더 받기로 하고 차를 돌렸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포장을 뜯어보니 여러 사람 명의의 통장과 휴대전화, 신분증이 쏟아져 나왔다. 기사는 곧바로 112에 '범죄에 쓰이는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개의 신분증과 대포통장을 운반하는 의뢰를 받았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광주 광산경찰서는 기사가 알려준 약속 장소에서 잠복하다 물건을 받으러 나온 20대 공급책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날 경찰은 대포폰 5대와 신분증 5개, 대포통장 5개를 압수했다.
 
경찰은 A씨가 광주에 새로운 자금세탁 거점을 차리기 위해 통장과 휴대전화를 모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상선과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로 확대해 약 한 달 동안 추적했다.
 
자칫 대포통장 공급책 한 명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사건으로 끝날 뻔했던 이 일은 270억 원대 불법 도박자금을 세탁해 온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실마리가 된 것이다.
 

전부 20대 남성으로 구성된 자금세탁 조직…역할 쪼개 기업처럼 운영

광주 광산경찰서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도박공간개설·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자금세탁 조직 총책 20대 남성 B씨 등 공범 총 8명을 구속 상태로 공소청에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 8월 25일부터 이달 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도박사이트 이용자들이 입금한 도박자금 등 범죄수익 약 270억 원을 넘겨받은 뒤 이를 타인 명의 계좌 15개로 여러 차례 쪼개 이체하는 방식으로 자금 출처를 숨겨주고 그 대가로 1억 2천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당초 퀵서비스 기사의 신고로 현행범 체포한 공급책 A씨에 대한 단일 수사를 진행하던 중 △퀵서비스 기사와 통화한 조직원 △광주로 갈 통장과 신분증이 담긴 상자를 직접 포장한 조직원 △배송비를 보내고 퀵서비스 애플리케이션에서 퀵서비스를 의뢰한 사람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포착했다.
 
경찰은 한 달 동안의 CCTV 분석 등을 통해 자금세탁 조직원들의 신원과 거주지를 특정했다. 이어 지난 2일 대구와 경기도 수원·파주의 사무실과 은신처 총 3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해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경찰은 지난 4일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자금세탁 총책 B씨를 비롯한 관련자 8명을 모두 구속했다.
 

친구 통장 사들이고 "걸리면 구인광고 봤다고, 모른다고 해라" 지침까지

해당 조직은 범죄에 활용할 통장을 주로 친구나 지인에게서 사들였다. 제3자를 소개받아 구매하거나 인터넷 아르바이트 플랫폼을 통해 구매한 통장도 있었다.
 
조직은 통장 명의자들에게 "경찰에 적발되면 인터넷 아르바이트 구인광고를 보고 아무것도 모른 채 빌려줬다고 말하라"고 미리 교육하기도 했다.
 
이번에 구속 송치된 조직원들은 모두 20대 중반이었으며 또래 친구거나 학교 선후배 사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24시간 돌아가는 온라인 불법 도박장의 시스템에 맞춰 교대로 근무하면서 상선의 지시대로 입금된 돈을 다른 계좌로 옮기는 일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대포통장 19개와 대포폰 24대, 신분증 17개, 현금 350만 원 등을 압수했다. 범죄수익 1억 2천만 원에 대해서는 기소 전 추징보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은 도박사이트를 개설한 상선과 해외 서버 추적에도 나섰다.
 
광산경찰서 관계자는 "불법 도박사이트 범죄는 범죄수익을 세탁하는 조직이 가담하면서 규모가 커질 수 있다"며 "자금세탁에 가담한 윗선까지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말했다.
 
이어서 "불법 도박사이트 이용은 개인의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대포통장·자금세탁 등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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