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프로배구 한국전력의 베테랑 리베로 정민수가 지난 시즌의 뼈아픈 트라우마를 딛고 오직 '봄 배구'만을 바라보며 다시 운동화 끈을 동여맸다.
한국전력은 지난 2025-2026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KB손해보험에 패하며 단 승점 1 차이로 5위에 그쳐 봄 배구 무대를 밟지 못했다. 충격적인 시즌 피날레 이후 지휘봉을 잡은 석진욱 감독은 지난 6개월간 흐트러진 선수단의 정신력을 강하게 다잡는 한편, 타협 없는 수비 조직력을 이식하며 팀의 체질 개선을 진두지휘했다.
12일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한국전력 체육관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만난 정민수는 지난 시즌 최종전 직후 겪었던 극심한 마음고생과 반성, 그리고 석진욱 감독 부임 이후 독하게 멘탈을 다잡게 된 과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프로 13년 차를 맞이한 베테랑이지만 지난 시즌 마지막 경기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정민수는 "배구 인생을 통틀어 잊을 수 없는 경기 중 하나로 남았다"며 "베테랑인데도 KB손해보험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찾아온 엄청난 부담감과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였다. 경기 후에는 배구공조차 쳐다보고 싶지 않았고, 기억을 잊으려 몸이 완전히 망가질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당시의 괴로움을 고백했다.
안일했던 자신에 대한 냉정한 복기도 이어졌다. 그는 "당연히 봄 배구에 올라갈 줄 알았던 안일한 마음 때문이었나 싶었다. 경기 영상을 돌려보니 6라운드 들어 그전에 했던 플레이의 반도 못 보여줬더라"며 "결국 내가 부족해서 팀이 졌다는 것을 깨달았고, 동료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시즌 후 '베스트7' 리베로 상을 수상했을 때조차 "팀이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상을 받는 자리가 너무 부끄러웠다. 기쁨보다는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훨씬 더 컸다"고 털어놨다.
망가졌던 베테랑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새로 부임한 석진욱 감독의 매서운 질책이었다. 정민수는 "석진욱 감독님이 부임하시자마자 '정신력과 태도를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감독이 보기엔 부족한 면이 너무 많다'고 뼈아픈 지적을 해주셨다"며 "팀에서 멘탈이 가장 강하다고 자부해왔는데 되짚어보니 나약한 부분이 많았다. 감독님의 강력한 채찍질을 받으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봤고, 멘탈적으로 훨씬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현역 시절 최고의 수비수였던 석 감독의 부임 이후 팀 분위기 역시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정민수는 "선수들의 훈련 태도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감독님이 엄격하고 강한 피드백을 주시는데, 처음에는 낯설어했던 후배들도 이제는 눈치를 보지 않고 코트에서 당당하게 플레이한다"며 "코트 위에서 절대 지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고 팀 분위기를 전했다.
모든 시련을 털어낸 정민수의 시선은 이제 오직 팀의 봄 배구 진출만을 향해 있다. 개인 기록이나 수상 욕심은 완전히 내려놓았다.
정민수는 "오직 봄 배구 무대를 밟는 것 하나만 바라보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선수단 전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며 "그 간절함은 말이 아니라 코트 위에서의 눈빛과 파이팅 넘치는 태도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의 독기와 집중력을 유지한다면 이번 2026-2027시즌에는 반드시 한국전력이 봄 배구에 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