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그림 밖에서 삶을 보다= 김연수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 이후 4년 만에 새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를 펴냈다. 일곱 번째 소설집으로, 역사와 예술, 근미래를 오가는 9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표제작 '눈 내리는 삼일포'는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의 그림 '고성삼일포도'에서 출발한다. 좀이 슬어 구멍 난 그림을 보고 "눈 내리는 삼일포 같다"고 상상한 이야기를 통해 상처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시선에서는 빛과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그린다.
이 작품은 그림책 작가 이수지가 같은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그림책 '눈 내리는 삼일포'에서 다시 촉발됐다. 김연수가 그림책을 본 뒤 가상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수지는 이번 소설집의 표지 일러스트도 맡았다.
다른 작품들도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인가'라는 질문을 이어간다. '우리 인생의 목격자'는 야구를 좋아했던 한 소녀의 이루지 못한 꿈과 훗날 달라진 세계를 연결하고, '조금 뒤의 세계'는 미래의 일을 미리 감각하는 여인을 만난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는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있다. '동풍이 어디로 흩어지는지'에서는 육체를 버리고 정신을 데이터로 옮기려는 손녀와 이를 막으려는 할아버지가 등장하고, '신의 마음 아래에서'는 죽은 이의 마음을 안드로이드에 이식할 수 있는 시대의 윤리적 선택을 다룬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시간에 대해 "뭔가를 빼앗아갈 때는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러나 뭔가를 줄 때는 또 얼마나 다정했는지"라고 적었다. 이번 소설집 역시 상실과 두려움 속에서도 삶의 바깥을 상상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 = 뉴욕 북부의 외딴 마을. 푸에르토리코계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세 형제가 가난과 사랑, 폭력이 뒤섞인 집 안에서 자라난다. 저스틴 토레스의 자전적 첫 소설 '우리, 짐승들'은 그 혼란스러운 유년의 시간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작품은 짧고 파편적인 장면들을 이어 붙이며 가족 안에 공존하는 사랑과 폭력, 공포와 경이로움을 포착한다. 토마토를 던지고 쓰레기로 연을 만들며 어울려 놀던 세 형제는 때로 서로를 지켜주고 때로는 물어뜯듯 상처 입힌다.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폭력과 무력함, 가난 속에서 무너진다. 세 형제는 그 모든 장면을 이해하지 못한 채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소설은 유년을 따뜻하게 미화하지도, 상처만으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특히 막내 화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면서 이야기는 다른 결로 움직인다. 한목소리로 움직이던 '우리'는 서서히 '나'로 갈라지고 가족에게 속해 있다는 감각과 자신만의 존재로 살아가려는 욕망이 충돌한다.
토레스에게 성장은 단순한 성취나 해방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까운 관계가 흔들리고, 이전의 자신과도 결별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 짐승들'은 그 균열을 통해 성장과 상실, 자기 발견이 어떻게 한꺼번에 찾아오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5개 언어로 번역됐다. 2018년 동명의 영화로 제작돼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됐으며,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1세기 최고의 책'에도 이름을 올렸다. 토레스는 이후 '암전들'로 2023년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저스틴 토레스 지음 | 김진준 옮김 |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