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 부족에 전세계가 비상인데…한국은 남아돌아도 더 못 팔아

9월 세계 경유 수출 하루 70만 배럴 감소…중동·러시아 전쟁 영향
반면 국내 경유 물량은 회복세…전쟁 이전인 1월 수준에 근접
국내 소비 감소로 남는 경유, 하지만 '수출 상한'에 막혀
업계 "내수 공급 유지하며 수출 확대 허용해야"
정부 "수급 우선"…100% 초과 수출은 예외 협의

박종민 기자

전 세계적으로 경유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서 각국이 경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소비가 위축되며 경유 물량이 남아돌고 있다. 이에 각국은 한국산 경유 수입을 원하고 있지만 국내 정유 업계는 수출 상한에 걸려 물량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는 국내 공급을 유지하면서 추가 수출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물가와 수급 안정을 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두 개의 전쟁에 경유 공급 흔들…한국 생산은 회복

국제에너지기구(IEA)의 10월 석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경유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하루 약 70만 배럴 감소했다. 경유난의 배경에는 중동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있다. 전쟁으로 인한 정유시설 피해와 가동 차질로 원유를 경유 등 석유제품으로 바꾸는 과정에 병목이 생긴 것이다.

겨울을 앞두고 경유를 비축해야  할 각국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결국 늘어난 수요 탓에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IEA에 따르면, 미국의 경유 가격은 올해 2월 넷째주 개런당 3.89달러에서 9월 넷째주 6.38달러로 뛰었다. IEA는 경유를 포함한 중간유분의 공급난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상황은 다소 다르다. 미국과 북아프리카 등으로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면서 경유 생산이 회복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자료에 따르면 생산량은 지난 4월 2284만9천배럴에서 8월 3056만1천배럴로 늘었다. 전쟁 이전인 1월의 3102만8천배럴에 근접한 수준이다. 산업통상부도 지난 13일 10~11월 원유 도입 물량을 지난해 평균 수준 이상 확보했으며, 국내 경유 물량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내수 지키며 수출 늘리자는 업계…정부는 신중

유조선. 연합뉴스

정유업계는 속이 탄다. 전세계 경유 대란에 경유 수출단가도 지난 2월 배럴당 88.78달러에서 8월 154.09달러로 약 73%나 오르는 등 호황을 맞고 있지만, 정부의 수출 상한 때문에 마음처럼 수출량을 늘리기 어려워서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면서 휘발유·경유·등유의 월별 수출량을 전년 같은 달의 100% 이내로 제한하고, 국내 반출량은 전년 동월의 90% 이상 유지하도록 했다. 국내 판매가격을 억제하는 상황에서 물량이 가격 높은 해외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경유 대란이 일어나는 상황과 달리 국내에서는 오히려 경유 소비가 줄고 있다는 것. 지난 8월 경유 국내 소비량은 897만9천배럴로 지난해 동월보다 24.2%나 줄었다. 생산량은 2.3%만 감소(3056만1천배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수 수요가 위축되면서 해외 판매로 돌릴 수 있는 물량이 상대적으로 늘어난 셈이다.

업계 요구는 국내 공급 의무를 유지하되 수출 상한을 탄력적으로 운용해달라는 것이다. 생산이 회복된 만큼 내수에 필요한 물량을 공급하고 남는 경유는 수출할 수 있도록 수출 상한선을 늘려달라는 얘기다. 특히 국내에서는 최고가격제로 판매가격이 묶이는 상황에서 수출 제약까지 받는 것은 과도하다는 불만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경유 물량을 충분히 공급하는데 소비가 위축돼 남는 잉여 물량에 대해 수출 상한을 조금 더 유연하게 풀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잉여 경유가 저장탱크에 쌓여 더이상 저장할 곳이 없게 되면, 전체 가동률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경유가 화물 운송과 농어업 등에 폭넓게 쓰여 가격이 오르면 생활물가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산업부는 지난 16일 "중동 전쟁에 따른 호르무주 해협 위기 등 원유 도입 불확실성, 최고가격제 하에서 석유제품의 수출·내수 간 이중가격에 따른 내수 공급 차질 우려 등을 고려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수출 관리 및 국내 의무 공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며 "국내 우선공급 원칙 아래 전년 동월 대비 100%까지 수출을 허용하고 있고, 필요시 협의를 통해 100%를 초과하는 물량에도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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