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 양국이 합의하에 장기간 추진해온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조건(conditions)이 바뀌었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한미 갈등에 대한 우려와 함께 평소와 다른 뚜렷한 반발기류도 감지된다.
그는 지난 4월 "정치적 편의가 조건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고 하는 등 전작권 조건의 충족을 누차 강조해왔다. 그랬던 그가 돌연 '조건 변화'를 언급하며 사실상 '조건 변경'을 시도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전작권 전환을 고대해온 한국민에게 깊은 실망감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브런슨 사령관은 납득할 만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14일(현지시간) "신문을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조건이 확실히 변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를 예로 들었다.
이 발언대로라면 북한의 군사력 강화를 '조건' 변화의 이유로 봐야 하는데, 이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이미 합의된 전작권 전환의 3대 조건은 '동맹의 북한 핵‧미사일 포괄적 대응 능력'(조건2) 등을 포함하고 있다.
만약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가 정말 문제라면, 조건 자체가 아니라 이를 충족할 평가 방식을 바꾸자고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때문에 일각에선 본의가 와전됐을 가능성도 거론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은 "기존 합의 이행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 외에 다른 설명은 내놓지 않았다.
브런슨 사령관이 미국 워싱턴DC에서 지난 12일부터 사흘 연속 여러 행사에 참석해 다영역특임부대(MDTF) 같은 민감한 주제를 잇따라 제기한 것도 실수보다는 오히려 잘 준비된 발언이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에서 달리 주목할 부분도 있다. 그는 "조건이 변했고 우리가 우리의 계획을 바꿨기 때문에 우리가 지켜야 할 새로운 기준(standards)이 생겼다"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미군과 한미 양측 가운데 누구를 지칭하는지 불분명하다. 다만 그게 어느 쪽이라도 '계획 변경'의 실체는 또 다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재로선 브런슨 사령관이 강조해온 중국에 대한 포위·압박과 이를 위한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이 깊다는 추정이다. 그는 지난 5월 한국을 중국을 겨냥한 단검(dagger)에 비유해 논란을 불렀다. 13일(현지시간) 행사에서도 "지도에 선 하나만 그어보면 베이징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작권 전환 조건 변화를 주장하기 위한 사전 빌드업으로 여겨질 법한 대목이다.
브런슨 사령관의 '조건' 흔들기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코앞에 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더 예민한 반응을 낳고 있다. 정부는 이번 SCM에서 2단계(완전운용능력. FOC) 검증을 마치고 전작권 전환 목표연도(X-연도) 설정에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럴 경우 향후 1~2년 내 역사적인 전작권 전환이 이뤄진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도 최근 전작권 전환에 대해 "큰 이견 없이 가고있다"고 말해 현 추세대로라면 별 차질 없이 진행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 브런슨 사령관의 돌출적 발언으로 전작권 전환은 제동이 걸리게 됐다. 현재 정황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중이 실렸다고 볼 근거는 찾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미 군부의 강한 반대 기류를 무시하기도 쉽지 않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해외 미군기지 통합 및 고위 장성 감축 등과 맞물려 군부의 이해관계와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내달 초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는 전작권 전환에도 상당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다수의 예측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한다면 미 군부의 입김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우리 정부는 예년처럼 11월 이전 SCM 개최를 희망했지만 미국 측 요구에 따라 12월로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전 주오사카 총영사)는 "(미 군부 입장에선) 자기들의 세계 전략 속에 전작권 문제를 넣어야 하는데, 이번 SCM에서 전작권 문제가 매듭이 지어져 버리면 그게 오히려 상수가 되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일종의 시간벌기 전략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