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도지사의 '소방 재정 빨대' 발언 직후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 순직 사고까지 겹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바짝 몸을 낮췄다. 대통령 인사권을 둘러싼 공개 충돌에 이어 또다시 추 지사발(發) 악재가 터지자, 당내에선 좀처럼 제어되지 않는 '추미애 리스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김민석, 순직 소방관 조문…추 지사 논란엔 말 아껴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18일 밤 경기 부천 공장 화재 진압 중 순직한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김 대표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숭고하고 고귀한 일을 하시는 소방관들의 생명을 지키도록 국가와 정부가 노력하겠다"며 "민주당 대표로서 맘이 아프고, 국가의 일을 하는 입장에서 죄인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만 추 지사 발언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당 차원의 사과는 이미 두 차례 내놨다.
이용우 대변인은 지난 16일 논평에서 "추 지사가 사용한 표현으로 상처받은 소방 공무원과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도 이튿날 언론 공지를 통해 "당 소속 도지사의 발언으로 상처받은 소방관과 국민 여러분께 당을 대신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추 지사에게 "깊은 자성 어린 사과"를 요청했다.
발단은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였다. 추 지사는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답하며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뒤에도 지방자치단체가 여전히 상당한 예산을 떠안고 있는 구조를 설명하다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다. 재정 구조를 짚으려던 취지였지만 소방관을 재정 부담 덩어리로 묘사했다는 반발이 일었고, 소방공무원노조는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사흘 뒤엔 상황이 더 나빠졌다. 16일 오전 부천시 오정구의 한 도장공장 화재 현장에 선착대로 투입된 김 소방위가 중상을 입고 구조됐다가 17일 새벽 끝내 숨진 것이다. 발언 직후 터진 순직 사고에 여론은 급격히 돌아섰다.
추 지사의 대응은 불을 더 키웠다. 추 지사는 16일 화재 현장에서 사과 의향을 묻는 취재진에게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답했다. 17일에는 빈소를 찾아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이 됐다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리고, 또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과드린다"고 했다. 발언 나흘 만에 나온 사과였지만 '사과를 바라시니까'라는 단서 탓에 등 떠밀린 사과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당내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친명계 중진 정성호 의원은 페이스북에 '구화지문 설참신도(口禍之門 舌斬身刀)'를 적고 "추 지사는 말의 본뜻이 그게 아니라고 해명할 일이 아니라 그 말로 상처받은 분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먼저 하시는 게 도리"라고 직격했다. 경기도당위원장인 서영석 의원도 지역위원장 긴급 연석회의에서 "추 지사는 상처받으신 소방공무원과 유가족, 도민 앞에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주기를 바란다"며 "그것이 신뢰를 되돌리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거물 도지사에 경고 안 먹혀…"리스크 언제든 재발"
민주당이 곤혹스러운 건 추 지사발 논란이 처음이 아니어서다. 추 지사는 앞서 김지용 초대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를 '친윤 검사'라고 비판하며 인사권자인 이재명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섰다. 김민석 대표는 "각자의 처지와 역할에 맞게 정확하게 하는 것,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며 공개 경고를 보냈다. 추 지사를 둘러싼 관사·관용차 논란과 민생예산 삭감도 꾸준히 문제가 됐다.
쌓인 불만은 당원들의 징계 요구로도 이어졌다. '추 지사 비상징계를 바라는 당원 및 지지자 등 연대청원인 일동'은 온라인에서 비상징계 연대청원서 동의를 받고 있다. 재정 빨대 발언과 민생예산 감축, 대통령 인사권 관련 발언, 관사·관용차 논란 등 네 가지를 징계 사유로 들었다.
당규상 최고위원회 의결만으로 징계할 수 있는 비상징계 절차가 있고, 2023년 최강욱 전 의원에게 적용한 전례도 있다. 그러나 당내에선 일단 신중한 기류다. 민주당 한 의원은 "추 지사도 사과했고 징계까지는 또 다른 내부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 조심스럽다"며 "예산 국면에서 소방과 관련한 해법을 마련하는 데 더 집중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이 내세워 취임한 지 석 달 남짓 된 광역단체장을 징계하는 건 자기 부정이라는 부담도 크다. 중수청장 인선을 거치며 갈라진 당원들의 갈등이 더 격화할 수 있다는 점도 지도부가 머뭇거리는 이유로 꼽힌다.
추 지사 논란은 다른 현안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청 지지율이 빠지는 가운데, 지도부가 검토해 온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추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여론이 가뜩이나 안 좋은데 강성 지지층만 결집하는 전략이 효과적일지 모르겠다"며 "일단 자세를 낮춰 민심을 듣는 게 1순위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당 기강을 다잡아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다만 6선 의원 출신에 법무부 장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거치고 경기도지사까지 오른 추 지사에게 당의 경고가 앞으로도 먹히겠느냐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이미 자신이 충분히 할 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고 보니 막기도 쉽지 않다"며 "리스크는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