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평생 자신을 만들어온 책들과 독서의 시간을 돌아본 '읽는 인간'이 출간됐다. 반세기 넘게 소설을 쓰고 시대를 향해 목소리를 내온 그가 자신의 생애를 설명하기 위해 꺼내든 것은 작품 목록이 아니라 '읽어온 책들의 목록'이다.
책은 일흔을 넘긴 오에가 도쿄의 한 서점에 자신의 이름을 단 서가를 꾸리고 진행한 독서 강의를 바탕으로 한다. 아홉 살 때 만난 '허클베리 핀의 모험'부터 윌리엄 블레이크와 단테까지, 삶과 작품에 깊은 흔적을 남긴 책들을 하나씩 되짚는다.
오에가 강조하는 독서법은 '다시 읽기'다. 번역본을 읽은 뒤 원문과 대조하고 다시 원서로 돌아가며, 한 작가를 정하면 수년에 걸쳐 작품과 연구서를 읽었다. 그렇게 반복한 독서는 정보나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문체와 사고방식,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졌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독서와 나이 듦의 관계를 살핀다. 젊은 날 읽은 작품이 수십 년 뒤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을 함께 읽었던 책으로 기억한다. 책 한 권을 오래 곁에 두는 일이 결국 한 사람의 삶과 함께 변해가는 과정이다.
오에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책 네트워크'가 있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어떤 책을 읽고 영향을 받았는지를 따라가면 그 사람의 삶의 지도 역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읽는 인간'은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보다, 오래 읽고 거듭 읽는 일이 한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오에 겐자부로 지음 | 박은정 옮김 | 상상스퀘어
전주 동네책방 '잘 익은 언어들'을 운영하는 이지선이 두 번째 에세이 '잘 익은 언어들을 만나러 갑니다'를 펴냈다. 첫 책 '책방뎐'이 위로와 공감의 공간으로서 책방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책방지기 10년의 시간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우정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책에는 손님 없는 날 춤을 추며 마음을 달래는 순간부터, 책방을 대신 홍보해준 택배 기사, 수면 내시경 보호자가 되어준 단골손님, 시한부 손님과의 마지막 우정,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필사 노트를 다시 펼쳐드는 장면까지 웃음과 상실이 교차한다.
저자는 책방을 지켜온 힘을 '잘 익은 우정'이라고 부른다. 단골손님 12명이 북큐레이터가 되어 책을 추천하고, 때로는 손님이 영업사원이 되고, 때로는 서로의 일상을 돌보며 책방의 시간을 함께 만든다.
그래서 책 속 '잘 익은 언어들'은 책방 이름만을 뜻하지 않는다. 작가가 책에 담은 문장과 그 문장을 필요로 하는 독자를 잇는 말이자, 사람 사이에서 오래 숙성된 관계를 가리킨다.
책방 운영의 낭만만 보여주지도 않는다. 손님이 없는 날, 쉬지 못하는 자신, 버티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하는 현실도 가감 없이 담는다. 그럼에도 저자가 끝내 붙드는 것은 "다정하고 단단하게 살아남고 싶다"는 마음이다.
니나킴 작가의 컬러 일러스트가 함께 실렸다.
이지선 지음 | 니나킴 그림 | 오르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