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려면 범칙금부터…강제퇴거 두려워 7살에야 어린이집

[이주학생 5% 시대 ②]
"학교 갈 수 있을까"…입학 앞둔 수지 어머니의 걱정
구제대책은 2028년까지…복잡한 서류·범칙금도 장벽
7살에야 어린이집 간 라비비…초등학교 적응에도 어려움
보육 공백에 언어·사회성 발달 우려…아파도 병원 문턱 높아

딥선군과 수지는 지난 2024년 8월 강화도에 놀러가 처음으로 바다를 봤다. 당시 아이들의 모습. 본인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저 죽으면 애들 유령돼요"…시한부 베트남 엄마의 호소
②학교 가려면 범칙금부터…강제퇴거 두려워 7살에야 어린이집
(계속)

"걱정 너무 많아요. '학교 들어갈 수 있나, 친하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여기 계속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수지(가명·6)양의 어머니 A씨는 걱정이 많다. 또래 아이들처럼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을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수지양은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이다.
 
수지양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유령' 신분이다. 네팔 출신인 A씨의 E-9 비자(외국인근로자용 비자)는 자녀에게 적용되지 않았고, 이마저도 만료되면서 수지는 미등록 상태에 놓였다.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은 합법적인 체류자격이 없는 외국 국적 아동을 말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미등록 이주민이어서 출생 등록을 하지 못했거나, 부모와 함께 또는 혼자 한국에 들어온 경우 등이 해당한다.

한국에는 수지와 같은 아동이 2만 명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학교와 병원 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장래를 설계하는 데도 제약을 받는다.
 

축구선수가 꿈이지만…구제대책은 고등학생 때까지

이주배경 아동들이 많이 다니는 경기 남양주의 장현썸머힐어린이집에서 지난 9월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고성민 기자

미등록 아동도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법적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강제퇴거에 대한 우려 등 불안정한 체류 여건 때문에 공교육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에 법무부는 이들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구제대책을 운영하고 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푼딥선(8)군은 장래희망을 묻자 수줍게 답했다.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체육이고, 피구를 제일 잘한다고도 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 타파 스네하(33)씨는 아들이 우선 공부부터 잘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2년 전까지 미등록 아동이었던 딥선군은 구제대책을 통해 체류자격을 얻은 뒤 학교에 다니며 여느 초등학생처럼 장래희망을 키우게 됐다. 부모도 아들이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며 평범한 바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체류자격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법무부가 2021년 발표한 '국내출생 불법체류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에 따라 일정 요건을 충족하고 부모가 불법체류 범칙금을 납부하면 대상 아동과 그 부모에게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여권과 가족관계증명서 등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한국어로 된 행정문서를 처리하는 일은 큰 장벽이다. 미등록 체류 기간이 길수록 범칙금 부담도 커진다. 지침에 따라 범칙금이 70% 감경되더라도, 7년 이상 미등록 체류한 가정에서는 양육자 2명이 부담해야 하는 범칙금이 총 1800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가정도 있다.
 
구제대책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체류자격은 보장하지 않고, 그마저도 2028년 3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수지양의 어머니 A씨가 앞으로도 한국에서 살 수 있을지, 뱃속의 둘째도 학교에 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이유다.
 

공교육 진입 전부터 사각지대…한국 문화 적응 기회 놓쳐

AI 생성 이미지

"방글라데시에서 재밌게 놀았어요", "한국말 안 어려워요", "커서 폴리스(경찰) 될 거예요."
 
이주배경 아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장현썸머힐어린이집에서는 한국과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다양한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아이들은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이처럼 취학 전 어린이집 보육은 이주배경 아동의 언어와 사회성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은 제도적으로는 취학 전 어린이집 단계서부터 사각지대에 놓인다. 학교와 달리 이들의 체류자격을 위한 별도의 구제대책이 없고, 보육료 지원이나 어린이집 우선입소 과정에서도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분이 노출돼 강제퇴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도 어린이집 이용을 가로막는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 라비비는 7살이 돼서야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는 강제퇴거를 우려해 라비비가 어린이집은 물론 외부 활동에도 나서지 못하게 했다. 라비비는 소아우울증 증세를 보였으며, 어렵게 어린이집에 다니게 된 뒤에도 사회성과 언어 발달 등의 어려움으로 초등학교 적응에 애를 먹었다.
 
라비비가 다녔던 장현썸머힐어린이집의 김금희 대표는 "밖에서 또래와 놀아보지 못한 상태였고 사회성이나 정서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6개월 동안 어린이집에 다녔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0~7세 아이들은 또래 관계가 중요하다. 또래와 어울리는 과정에서 언어와 사회성을 배우는데, 부모와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영유아기에 어린이집에 다니면 정서와 사회성을 기를 수 있어 초·중·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미등록 아동들은 이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아 여러 문제가 이어진다"며 "어린이집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만큼, 부모를 안심시키는 등 미등록 아동들이 하루빨리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파도 버티는 아이들…미등록 아동에게 높은 병원 문턱

"애기 등록번호는요? 여권도 없어요? 그러면 못 받아요."

수지양의 어머니 A씨는 수지를 안고 병원을 찾을 때마다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수지양은 태어났을 때부터 감기에 걸리거나 상처가 나도 마음 놓고 치료받기 어려웠다. 미등록 상태여서 의료기관 이용에 제약을 겪었기 때문이다.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은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렵고, 국민건강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어 의료비 부담이 크다.
 
A씨는 "수지가 두 살 때 볼펜에 찔려 볼을 다쳤다. 약국에 갔더니 병원에서 꿰매야 한다고 해 응급실에 갔는데, 치료비가 170만 원 나왔다. 상처를 꿰매러 간 것뿐인데 비용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비용도 비싸지만, 아기가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려워 힘들었다. 아기 등록번호도 없고 여권도 없다고 하니 이것저것 묻는 것도 많았고 접수도 쉽게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딸이 아팠을 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장현썸머힐어린이집의 정태욱 원장도 "어린이집에 다니던 미등록 아동이 감기에 걸려 병원에 데려갔더니 치료비가 11만 원 나왔다. 간단한 검사와 약 처방만 받았는데도 비용이 많이 나와 부모들이 병원에 가려 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금희 대표는 "몰리라는 미등록 아동이 있었는데, 열이 펄펄 나고 배가 아픈데도 부모가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다. 아이가 아픔을 고스란히 견디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아이들이 병원만이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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