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가 전국 시위가 약탈·방화로 번지자 일부 지역에 통행금지를 도입했다.
19일(현지시간) AF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이날 비상대책 회의를 마친 뒤 이르면 당일부터 통행금지를 시행하라는 지침을 각 지역에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통금은 부분적·지역적으로 제한되며, 시행 여부는 지역 당국이 판단한다.
르코르뉘 총리는 "이번 통금의 목적 중 하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상점과 같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도 열어뒀다. 다만 현 단계에서는 일부 지역 통금이 더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지역별 조치가 잇따랐다. 파리 경찰은 레퓌블리크 광장과 상업지구 레알 일대에 이날 밤 11시부터 20일 새벽 6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총리실에 따르면 북부 릴·두에·와티니·드냉 등 4개 도시에서는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새벽 6시까지 부분 통금이 시행된다.
니스는 에릭 시오티 시장이 영상 메시지를 통해 미성년자의 도심 통행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남부 마르세유는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 공공 집회를 금지했다.
이번 시위는 열악한 교육 여건에 항의하는 고등학생들에게서 시작됐다. 이후 공공부문 투자 부족과 고물가에 반발하는 시위로 번졌고, 지난 주말 대규모 시위 과정에서 공공시설 방화와 상점 약탈이 벌어졌다.
제랄드 다르마냉 법무장관은 주말 동안 경찰에 구금된 인원이 2330여명이며, 이 가운데 70%가 성인이라고 밝혔다.
세르주 파팽 상무장관은 최소 3천개 상점이 피해를 입었고, 피해액이 수억유로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매업연합도 피해 상점이 3천곳에 육박한다며 "소매업 부문은 잇단 위기로 이미 취약해진 상황에서 또다시 혼란의 최전선에 섰다"고 했다.
안 르에낭 상무부 디지털 담당 차관은 빈티드·이베이·아마존·메타·틱톡 등 온라인 플랫폼에 장물 거래 차단과 재판매자 기소 협조를 요청했다.
로랑 뉘녜즈 내무장관은 혼란이 커지자 이날 프랑스앵포 라디오 인터뷰에서 "책임을 통감한다. 발생한 피해를 볼 때 내가 사임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사의를 반려했다. 엘리제궁은 경찰·치안 당국의 지휘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뉘녜즈 장관을 유임시켰다고 밝혔다.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이 "폭력 사태로 이어진 대응 계획 및 정보 실패와 관련해 투명성을 보장할 조처를 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당국이 시위 규모와 양상을 잘못 예측하고 현장 인력을 지나치게 적게 배치해 통제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뉘녜즈 장관은 르코르뉘 총리와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약탈·기물 파손을 막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현장 경찰과 보안요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르코르뉘 총리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날도 "극좌 세력이 우리나라 전역에 깊은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며 극좌 책임론을 폈다.
시위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파리 루브르박물관은 시위대 수십명이 유리 피라미드 입구를 막아서면서 문을 열지 못했다.
DPA통신에 따르면 '노란 조끼' 운동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24일 토요일 '2막'을 열겠다고 예고했다.
노란 조끼 운동은 2018년 11월 물가 급등과 사회 불평등에 항의하며 시작돼 수개월간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학생 시위대의 동참 요청에 이들은 지난 주말 시위에 합류했다.
프랑스 주요 노동조합들도 다음 달 5일 파업과 시위를 예고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부터 21일까지 사흘 일정으로 중동 순방에 나섰다. 첫 방문지 쿠웨이트에서 메샬 알아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군주(에미르)를 만났고,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카타르도 찾는다.
엘리제궁은 순방 목적을 석유·경유 공급 확보와 유가 안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폭스뉴스는 프랑스 언론을 인용해 마크롱 대통령이 시위 전날인 16일 밤 부인 브리지트 여사와 파리 서쪽 낭테르에서 열린 캐나다 가수 셀린 디옹의 콘서트에 참석해 비판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폭력 사태를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하면서도 평화 시위의 권리는 보호돼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도 폭력 사태를 규탄하고, 프랑스를 여행하는 자국민에게 "향후 수일간 추가 시위, 일부 경우에는 추가 폭력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금융시장도 흔들렸다. 재정 불안으로 약세를 보여온 프랑스 국채 가격은 이날도 떨어졌다. 프랑스 국채 10년물 금리는 전장보다 0.12%p 오른 4.9%를 기록했고, 독일 국채 10년물과의 금리 차는 1.45%p까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