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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한강교'에서 '강남스타일'까지, 가요에 비친 서울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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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재발견] 대중가요 속에 나타난 서울 '강남과 강북'

노래는 어떤 식으로든 그 노래가 속한 사회를 반영한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심 공간 ‘서울’도 마찬가지. 우리의 대중가요 속에는 ‘서울, 서울사람, 서울살이’의 역사가 녹아있다.

대중가요를 통해 서울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작업이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에 의해 시작됐고, 이 작업은 그녀가 내놓은 책 <광화문연가>(이영미. 예담. 2008)를 통해 쉽게 재미있게 정리됐다.

이번 “서울의 재발견”에서는 추억의 노래부터 최신 가요까지 대중가요 속에 비친 서울 ‘강남과 강북’의 모습을 <광화문연가>를 인용해 소개하고자 한다. 긴 인용이지만, 대중가요로 ‘서울’을 만나려면 꼭 한번 마주치게 될 책 <광화문연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편집자 주]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밤이 새면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를 떠나갈 거에요
오오 뚜룻뚜룻뚜 하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 혜은이 <제3한강교> (1979)

 



한국전쟁 후 서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1968년 1.21 사태 후 안보 위기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경부고속도로 준공으로 시작됐던 서울 강남 개발이 6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비와 유흥문화의 핵심으로 떠오른 ‘강남’은 대중가요에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9년에 발표된 혜은이의 <제3한강교>. 이 노래는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밤이 새면 첫 차를 타고 이를 모를 거리로 떠날 거에요”라는 가사 때문에 금지곡이 되는 소동을 겪었다. 어떻게 ‘처음 만나서 바로 하나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 가사는 당시 당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원나잇 스탠드’로 비쳐졌다. 결국 이 가사에서 ‘처음’을 ‘다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를 ‘맹세를 하였습니다’로 가사를 바꾼 후에야 금지곡에서 풀리는 해프닝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이름 모를 거리’도 밝은 분위기의 ‘행복 어린 거리’로 가사가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전 '핑클'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 했을 때 다시 원래 가사대로 불렀다는 사실.

강남 개발의 시초가 됐던 제3한강교 즉 한남대교. 한남동과 강남 영동(영등포의 동쪽, 즉 지금의 ‘강남 3구’를 지칭하던 단어) 지구를 연결하면서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던 제3한강교는 강남의 상징과도 같은 다리였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는 이렇게 1970년대 말 화려한 향락가로 변모된 강남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였다.

1980년대 주현미의 노래는 이런 강남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1985년 <영동 부르스="">, <비 내리는="" 영동교="">를 지나,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에 이르면, 불빛 아래 엉키는 눈길과 새벽까지 기다리는 여자라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넘어간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
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만났던 그 사람
행여 오늘도 다시 만날까 그날 밤 그 자리에 기다리는데
그 사람 오지 않고 나를 울리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아아, 그날 밤 만났던 사람 나를 잊으셨나봐

-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1988)

 



가사 분위기로 봐서, 화자는 ‘신사동 그 사람’의 이름이나 연락처 따위는 모르는 모양이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눈길이 마주쳤다니 둘이 만난 것은 술집이 분명한 듯하다.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는 남자를 새벽까지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은 당시 강남 유흥가의 분위기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그 다음해에 발표된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는 한발 더 나간다.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봄봄 웃음꽃이 피니까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한번쯤은 찾아오세요
아아아, 여기는 사랑을 꽃피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 문희옥 <사랑의 거리=""> (1989)


아무리 다른 방식으로 읽어주려해도 ‘호객 행위’로 읽히는 노래다. 게다가 문희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데뷔한 나이 어린 가수라, 소녀티가 남이 있는 목소리로 하는 ‘호객성 멘트’는 여러 가지 다른 연상을 가능할 정도였다.

강남 개발이 속도전으로 전개될 이 당시, 고속터미널과 명문학교뿐 아니라 유흥업소도 강남 이전 대상이었다. 정부는 강북 도심에 유흥업소 허가를 금지하고, 경부고속도로 주변 땅을 유흥업소들에게 팔았다. 고속도로 옆 신사역 주변에 유흥가는 이렇게 형성됐다. 1972년부터 신사동에 집중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유흥업소들이 80년대에는 압구정동으로 번져갔다. 대중가요의 공간도 ‘안개낀 장충단공원’, ‘돌아가는 삼각지’가 아닌, ‘제3한강교’나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사랑의 거리’로 그렇게 변해갔다.

‘강남’은 유흥가와 소비의 중심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아파트 열풍의 진원지가 바로 강남이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 윤수일 <아파트> (1984)


‘다리를 건너’와 ‘갈대 숲’이라는 배경이, 밀집 주거를 가능케 하는 아파트와 묘하게 부조화하다고 따질 필요는 없다. 바로 그것이 1980년대 한강 건너에 있는 아파트촌 풍경이었으니까. 매력적인 그녀가 사는 곳, 그녀와 연애를 나눴던 곳, 그러나 이제는 나를 만나주지 않는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곳은 바로 ‘강남의 아파트’였다. 80년대 초 이미 아파트가 동경의 대상이자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노래가 바로 윤수일의 <아파트>다.

1990년대 신세대문화가 새로운 화두가 되었을 때에 강남은 대중가요에서 다시 한 번 부상한다. 이른바 ‘압구정동 오렌지족’, ‘야타족’이라는 말의 근거지가 바로 강남이었고, 돈 많고 소비적인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떠오른 것이다. 신성우의 이라는 희한한 제목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강남은 미국화된 소비문화, 과시적 욕망의 공간으로 표상되었다.


거리를 나서먼 나를 바라보는 많은 시선들 (그건 착각이야, 그건 착각이야)
그래서 무대 위를 걷는 기분으로 걷는다 (그건 착각이야, 그건 착각이야)
거리엔 모두 텅빈 눈으로 오만한 미소를 짓는 공주뿐이야
내용 없는 자존심 값싼 유행을 따르는 건 결코 진실은 될 수 없잖아
(중략)
구두굽 높이만큼 솟아있는 자존심
이만하면 킹카라고 내 자신은 생각한다
쇼윈도엔 항상 내 얼굴이 비치고 있어
마주 걷는 여자의 액세서리 무언의 눈싸움
(하략)

- 신성우 (1994)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싸이의 <강남 스타일="">은 바로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있다. 클럽에서의 부킹 상황을 연상하게 하는 이 노래의 가사는, 육체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강남을 노래한다. 그러나 바로 싸이의 기괴하고 코믹한 말춤이 보여주듯, 이 노래는 육체적 욕망의 부박함과 유치함을 미화하지 않고 가식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강남의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까지 노래의 동조자로 끌어들였다.


(상략)
Eh- Sexy Lady
오빤 강남스타일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You know what I’m saying

오빤 강남스타일
(하략)

- 싸이 <강남스타일> (2012)

 




하지만 여전히 강남의 바깥에 사는 사람들은 강남 혹은 압구정동을 넘어서지 못하는 벽 같은 것으로 느끼곤 하는데, 그들의 부러움과 위화감은 노래 속에 이렇게 표현됐다.


강을 건너보니 여긴 딴 세상이야
만만한 사람 많아 적을 볼 수가 없어
이 동네 분위기도 정말 장난 아닐 걸
모두가 똑같은 얼굴 똑같은 메이커야 그게 뭐야
여기저기 둘러봐도 내가 제일 약해보이네
난 괜찮아 절대 기죽지 않아
(하략)

- 왁스 <강북에 산다=""> (2001)


(상략)
메리 크리스마스 되면 과연 화양리에도 눈이 내릴까 모두 궁금해해
남들은 날 무시해 흥 화양리에 산다고
하지만 난 보여주겠어 우리 동네에도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걸
산타 할아버지랑 손잡고 압구정동으로
(하략)

- DJ DOC <메리 크리스마스=""> (2000)


비록 이들 노래 가사가 ‘강남’에 대한 소외감과 적대감을 과장되게 표현한 감은 있지만, ‘신세대와 압구정동’ 담론이 넘쳐나던 90년대에 10대 청소년기와 20대 대학 시절을 보낸 젊은 세대라면 대체로 이해할 수는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90년대에 이미 30~40대의 나이로 진입한 386세대나 장년층들이 가졌던 ‘강북’에 대한 느낌은 ‘강남’에 대한 부러움이나 소외감과는 차원이 다른 추억과 그리움의 애틋함이었다.

이제 모두 세월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 이문세 <광화문 연가=""> (1989)


모두 세월을 따라 변하였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 그것이 바로 서울 옛 도심 ‘강북’이 갖는 이미지였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 동물원 <혜화동> (1989)

 




1960년대 초중반 혜화동에서 태어나 그 한옥 사이사이 골목길에서 뛰어놀았을 이들.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관악산으로 옮겨갈 때쯤, 아마 이들도 강남으로 혹은 여의도로 이사를 갔을 것이다. 옛 친구들은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 ‘고향 혜화동’에 모였다. 마치 시골 출신들이 향우회를 하듯, 이들 역시 고향에 다시 모인 것이다. ‘아주 멀리’ 간다는 말로 보아 외국 유학을 떠나는 느낌이 강하다. 1960년대 서울 중상류층에 태어나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하고 다시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하는, 고학력 아이들의 행보가 고스란히 읽혀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들은 강남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창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아련한 그리움의 장소이자 고향으로서의 ‘강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원의 <혜화동>은 바로 이런 이들의 ‘강북’에 대한 심리를 대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강북’은 더 이상 강남에 대한 부러움과 소외감이라는 반사적 이미지가 아닌, 혹은 그저 ‘그리움과 추억’의 공간만도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강북’ 특히 서울 옛 도심이 강남 못지않은 세련됨을 지니면서도 그보다 좀 더 운치 있고 느리고 소박한 이미지를 입어가는 분위기가 맥을 같이 한다.


난 낯설은 의자에 앉아서
난 낯설은 거리를 보면서
난 낯설은 소식을 듣고서
난 낯설은 생각을 하면서

난 낯설은
바람이 지나가 버린 곳에 살아
조금도 변하지는 않았어
아직도 난
그대가 보내 준 마음, 소식 듣고 싶어
이런 내 맘 아는지

때론 쉴 곳을 잃어가도
넘어질 듯이 지쳐가도
아무 말 없이 걸어가리
그대 있는 곳으로
내가 있던 곳으로

- 루시드폴 <삼청동> (2005)


쉴 곳 잃어 지칠 때 아무 말 없이 걸어갈 수 있는 곳, 바람이 지나가 버린 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곳, 소란함 없이 가만히 생각하고 관조할 수 있는 곳, 그것이 루시드폴의 <삼청동>에 담긴 삼청동 그리고 강북의 이미지다. 그리고 그 느낌은 김연우의 2집 앨범 [연인]에 수록된 경음악 <몇해전 삼청동="" 거리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2004)에도 은은하게 담겨 있다.


지금까지 대중가요 속에 담긴 서울 ‘강남과 강북’의 어제와 오늘을 만나봤다. 대중문화 자체가 그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인 만큼, 우리가 부르고 즐기던 대중가요 속에서 ‘서울, 서울사람, 서울살이’의 사회상과 변화상을 실감나게 대면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일을 낯설지 않게 알려주는 책이, 오늘 이 글의 인용처가 된 <광화문연가>(이영미. 예담. 2008)다. 그때 그 시절 노래와 함께 걷는 서울의 추억, 서울의 풍경이 그립다면, 또는 노래와 대중문화로 서울을 새롭게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서울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픈 분들은 twitter.com/js8530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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