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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수애 장혁 '감기', 왠지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순간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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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관람가, 8월14일 개봉

'감기'포스터(영화사 제공)

 

변종 감기 바이러스의 창궐로 한 도시가 폐쇄되기에 이른다는 내용의 재난영화 '감기'(감독 김성수)는 끔찍한 재난상황을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규모감있게 그려냈다.

특히 감염자로 판명난 사람들을 지난 2010년 구제역 발생 당시 살처분한 350만 마리 가축처럼 처리하는 장면은 크나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비닐로 뚤뚤 감긴 시체더미를 기중기로 들어 올려 옮기는 장면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불편하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 혹시나 모를 비감염자까지 희생시키기로 결정되면서 군대가 투입되고, 진실을 알게된 도시민들이 떼로 거리로 뛰어나와 그들과 대치하는 모습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선두에 나선 한 여성이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고 가슴을 드러내보이며 "봐라, 난 말짱하다(감염자가 아니다)"고 말하는 순간에는 "두부처럼 잘려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이란 노랫가사가 겹쳐진다.

2015년 12월로 전환시기가 늦춰진 전시작전권까지 거론되는 이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재난으로 시작하나 이 재난으로 초래된 정치적 상황으로 상상력을 발전시킨다.

이 영화는 엄청난 공포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이 얼마나 올바로 서있어야 하는지를 드러낸다. 바람직해서 오히려 생소하게 느껴지는 대통령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유다.

밀입국 노동자들을 경기도 성남시 분당으로 실어나른 남자가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한다. 환자가 사망한지 채 24시간도 안돼 분당의 모든 병원에 동일한 증상의 환자들이 몰려든다.

정부는 도시 패쇄령을 내리고, 분당시민은 강제로 수용캠프에 끌려가 감염여부를 검사받는다.

눈앞에서 첫 사망자의 죽음을 목도한 감염내과 전문의 인해(수애)는 싱글맘으로 어린 딸을 찾으러 나섰다 서울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수용캠프로 끌려간다.

우연히 인해의 딸 미르(박민하)를 돌보게 된 동정심 많고 정의감 넘치는 분당 소속 구조대원인 지구(장혁)는 두 모녀와 함께 아수라장 속에서 살기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로 유명한 김성수 감독이 10년만에 메가폰을 잡았다.

김감독은 "자신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의 극한의 공포심, 혹은 인간성의 상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애와 휴머니즘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또한 "구제역 유행 당시 돼지 살처분 장면을 찍은 다큐를 보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런 상황이 우리 인간에게 닥치면 어떨까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싶었다"고 했다.

통제불능의 아수라장이 품어내는 광기와 공포의 에너지는 잘 전달된다. 너무나 고생해서 찍은 영화라는 게 화면 곳곳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빚어내는 감정의 파고는 생각보다 크지않다.

바이러스 창궐 이후 벌어지는 다양한 풍경을 훑어내는데, 오히려 이야기가 분산된다는 느낌이다. 충분히 현실적이면서도 어느 순간 너무 나아간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드라마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19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 재현되는 것이다. 결정권자의 발포명령을 기다리며 민간인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뿐만 아니다.

격리된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누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아직 죽지않았는데도 감염됐다는 사실만으로 살처분시키라는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진압군의 무감각한 태도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또 한 젊은 군인이 감염자 수용캠프에서 친구집에 방문했다 아수라장에 휘말린 자신의 엄마를 발견하고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하는 장면 등은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처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백신개발에 적신호가 켜지자 잠시 패닉상태에 빠진 대통령을 대신해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넘기고 시민 몰살에 찬성하는 정치인의 머리모양이 대머리라는 점은 단지 우연의 일치인지 궁금하다.

물론 이 장면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과 우리나라 대통령 간의 대립구도는 단지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 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다수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맹점을 드러내는 면도 있다.

바이러스 발생지인 분당 주민의 희생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논리는, 세계로 확장하면 전 지구의 안전을 위해 한국이 희생될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오히려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자세가 다수의 생명을 지키는 길일 수 있다.

이 영화의 남녀 주인공이 자신의 딸 혹은 남의 딸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는 줄거리를 택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김성수 감독은 "감기 속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살려는 사람과 재난을 막으려는 사람이 충돌하는데, 그런 난감한 상황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연출의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신재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영화 속 상황이 현실에서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지구의 멸망 원인으로 바이러스에 의한 멸망을 가장 현실성 높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극중에 나오는 감기 바이러스는 조류 인플루엔자의 한 종류다. 실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해 약 60%의 사망자를 낸 H5N1이 다시 한번 변이를 일으킨, H5N1 변종으로 설정됐다. 14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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