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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선' 이장호 감독 "내리막길 의미 찾는 것이 인생의 큰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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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문제 다룬 시선으로 18년만에 영화 감독 복귀

이장호 감독(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늘 인생의 정점에서 살 수 없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데, 상당한 고통과 번민이 있겠으나 그 내리막길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본다."

29살의 젊은 나이에 '별들의 고향'(1974)으로 당시 한국영화 흥행신기록을 세우며 화려하게 데뷔한 이장호 감독(68).

한국영화 리얼리즘의 신호탄이 된 '바람불어 좋은 날'(1980)을 비롯해 '낮은 대로 임하소서'(1981) '바보선언'(1983)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 등을 내놓으며 198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가 무려 18년 만에 영화 '시선'으로 다시 출발선상에 섰다.

12일 폐막한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된 시선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지원을 받아 지난 5월, 40도를 넘나드는 캄보디아의 뜨거운 태양에서 수십 명의 배우, 스탭들이 고군분투하며 촬영한 영화.

돈만 밝히는 수상한 현지 선교사 조요한(오광록)과 한국의 기독교 선교그룹이 이슬람 반군에 납치되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 신앙을 비롯한 내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이야기를 진중하게 그렸다.

부산영화제가 열리던 현장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이 감독은 "18년 만에 복귀해 전부 낯선 사람들 뿐인 현장에서 스스로 데뷔작이라고 생각하며 찍었다"고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또한 "개인의 인기와 돈벌이를 위해 영화를 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그 변화의 첫 열매로 이 영화를 선보이게 됐는데 신앙이 밑받침됐다"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 1980년대 지금의 봉준호 감독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렸다.

"나이도 있고, 사람의 인생은 다 포물선이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데, 내리막길에 인생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걸 깨닫기까지 상당한 고통과 번민이 있겠으나 그 내리막길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본다. 간혹 그 의미를 찾기 전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아름다운 내리막길을 포기하는 것이다. "

- 연출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제 평생 직업이 영화감독이다. 그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한 관계로 영화 만들기에 게을렀다가 자연스럽게 다시 돌아왔다. 아직 건강하니까 나이가 들었다고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이 시대 젊은 감독과 내 역할은 다르다. 내 영화세계는 따로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시선을 기획하게 된 배경은

일본소설 '침묵'을 읽다가 순교와 배교에 대한 화두를 떠올렸다. 일본 개화기 시절 천주교가 처음 전파되면서 뒤따랐던 희생을 조선개화기로 바꿔 만들려고 했는데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2007년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과 결합해 지금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 신앙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뤘다.

"지난 18년간 내가 만든 영화를 떠올리며 개인의 인기와 돈벌이를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시선은 그런 반성에 따른 변화의 첫 열매로서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신앙은 무엇인가, 믿음의 문제를 다루면서 기독교적 메시지에 빠지지 않고 누구나 함께 볼 수 있는 보편적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 신을 믿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1980년 '바람불어 좋은 날'이 충무로 명보극장에 걸렸을 무렵 제 주변에서 수상한 징후가 나타났다. 김승옥 소설가, 고인이 된 하영종 목사 등 여러 사람이 나에게 하나님을 권했다. 어느 날 목사님 말씀을 듣다가 어머니가 영화 흥행하라고 넣어주신 부적이 부끄러워졌다. 그 영향으로 안요한 목사의 실화 '낮은데로 임하소서'를 연출했었고 '어둠의 자식들'이나 '바보선언'등 영화의 마지막에 찬송가를 삽입하기도 했었다."

- 사회비판적인 영화도 만들었는데...

"20대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었다. 다시 영혼의 문제로 돌아갔는데, 어릴 적부터 관심이 많았다. 비행기에서 땅을 보면 문명이 꼭 부스럼 자국 같지 않나. 인간이 어떻게 보면 세균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 세균으로 만족할 것인가,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동물처럼 먹고사는 문제만 생각할 것인가, 그런 반성을 하며, 보이지 않은 존재에 대한 사랑을 느낀다."

- 극중 선교그룹의 구성원들이 인상적이다. 매 맞는 아내에 불륜 커플, 세속적인 선교사 등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진 게 아니고 문제를 안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기존 기독교영화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보통사람을 설득하지 못하는, 종교적으로 과장돼있는 영화라고 느꼈다. 저는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는다. 리얼리즘이기에 사실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샘물교회 피랍사건에 대한 책도 여러 권 읽었는데, 그걸 참조해 피랍 생활상과 그들이 이슬람 반군과 교류하는 에피소드 등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극한의 상황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 출연배우들은 모두 기독교인인가.

"처음에는 신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오광록을 캐스팅하면서 크리스천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오광록은 기존 출연작을 보면서 중독성 있는 연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같이 작업하면서 존경심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비기독교인과 함께 만든 덕분에 좀 더 보편성을 가지게 된 것 같다."

- 학교 후배인 고 박용식 씨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고 박용식 씨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캄보디아에서 감염된 희귀 바이러스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그분은 젊은 배우들과 호흡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주셨다."

- 극중 신의 목소리를 여성의 목소리로 표현했다.

"하나님은 성별이 없다고 믿는다. 보통 남성으로 생각하나 그건 편견이다. 하나님은 남성적인 면도 있지만 여성적인 면도 강하다. 그래서 여성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 이슬람 반군이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며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장면이 오해를 살 소지가 될 수도 있을텐데.

"이슬람교를 폄하할 의도는 없었고, 여기서 반군은 종교를 이용하는 정치인이라고 봤다. 과격파는 항상 정치적 쟁점이 있지 않나. 그들은 종교를 정신무장용으로 이용한다."

- 차기작은 무엇인가

"제목이 '96.5'인데, 1985년 바다 한가운데를 떠돌면서 생사의 기로에 있던 베트남 난민인 보트피플 96명을 구해준 당시 원양어선 선장이었던 전제용 씨의 이야기다."

오광록이 연기한 조요한은 어떻게 보면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던 인물이다.

시선은 그런 그가 예상치 못한 역경에 부딪히면서 다시 신의 사랑을 느끼고 자신을 용서하게 되는 내면의 변화를 그렸다. 더불어 때로는 배교가 순교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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