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도가 출발한 지 15년이 지났다. 하지만 사외이사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사진=더스쿠프 제공)
사외이사 제도는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을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그로부터 15년. 사외이사 제도가 훌륭한 취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외환위기가 터진 1997년. 외환보유액은 바닥을 드러냈고, 기업의 자금줄은 꽉 막혔다. 매달릴 만한 동아줄은 단 하나. 해외 자금조달뿐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외국계 투자가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가 형편없다"며 투자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 한국식 지배구조 개편을 권고했다. 말이 권고였지 실제론 압박이었다. '투자를 받고 싶다면'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손사래를 쳤지만 학계는 찬성했다. 소수지분을 가진 기업 오너가 그룹 전체를 좌우하는 한국식 지배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비뚤어진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경영통제 장치인 이사회를 손봐야 한다. 사외이사제도는 이런 배경에서 도입됐다. 이사회 개혁을 위해 외부 전문가(사외이사)를 참여시키기로 한 것이다. 사외이사제도가 도입된 지 15년이 흐른 지금. 이 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달라진 게 많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너십 경영에 면죄부를 주는 제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사진=더스쿠프 제공)
거수기, 고무도장, 꿔다 놓은 보릿자루 등 사외이사를 비꼬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많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이제 15년째 접어든 사외이사제도를 둘러싸고 비슷비슷한 논란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기업 오너 또는 경영진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밀실경영에 익숙한 기업 경영진에 '외부인이 내 기업을 들여다보는 것'은 마뜩잖을 게 뻔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상장사 250개사 사외이사 908명 중 28.71%인 260명이 경영진 혹은 지배주주와 직·간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까진 약과다. 일부 기업은 여전히 사외이사에 능력 미달인 '친정부 인사'를 앉히기 바쁘다.
기업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 스코어가 국내 30대 그룹 185개 상장계열사의 사외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총 609명의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은 240명으로 전체의 39.4%에 달했다. 학계, 재계, 법조계, 언론, 회계 등 다른 분야를 압도했다.
사외이사를 두고 방패막이니 로비스트니 하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외이사의 의무는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에 칼을 대는 것이다. '불가근 불가원'이라는 말이 이들 세계에서 법칙으로 통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외이사는 독립성을 보장 받지 못한다.
사외이사제도는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의 첫 단추다. 사외이사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용되면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주가 상승률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곤자가 대학 K.힉맨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기업인수 시 이사회가 독립적인 성격을 갖는다면 주주 가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공공경제학자 졸리 넬슨은 "1980~95년 1721개 기업에 대한 데이터 연구결과, 성과가 좋지 않은 기업의 이사회일수록 독소조항처럼 주주들의 이익을 저해할 수 있는 지배구조로 변경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