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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로 서울 지도를 그리다 - 강남 vs 강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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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 map – 음악으로 그린 서울 지도] ① 한강, 노래를 가르다

'Sound map – 음악으로 그린 서울 지도'

 

노래란 것은 참 흥미롭다.

샌프란시스코에선 왠지 머리에 꽃을 꽂아야 할 것 같고, 동백꽃 피는 4월마다 선운사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다. 청량리역 지날 때면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음악은, 그 스스로 지도를 그려낸다. 장소는 음악을 낳고, 또 그 음악 때문에 그 지역은 특정한 이미지를 사람들 머릿 속에 심어놓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대중음악을 탄생시킨 도시는 서울이다. 우리는 음악으로 어떤 모양의 서울 지도를 만들어 놓았을까?

CBS 기획특집 'Sound map – 음악으로 그린 서울 지도'(표준FM 98.1MHz. 12월 17일~20일 오전 10시 30분~11시 30분)이 대중음악이라는 소리로 서울의 지도를 그려보는 작업을 시도했다. 이 지도를 만들면서, 장소가 어떻게 노래를 낳는지, 또 노래는 어떻게 장소를 담는지, 그 어우러짐의 모습을 만나보려는 시도다.

4부에 걸친 특집 중 제1부 ‘한강, 노래를 가르다 – 강남과 강북’는 “한강이 어떻게 노래를 갈랐는가”를 보여준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밤이 새면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를 떠나갈 거에요
오오 뚜룻뚜룻뚜 하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 혜은이 <제3한강교> (1979)

혜은이 '제3한강교' 앨범

 

한국전쟁 후 서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1968년 1.21 사태 후 안보 위기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경부고속도로 준공으로 시작됐던 서울 강남 개발이 6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비와 유흥문화의 핵심으로 떠오른 ‘강남’은 대중가요에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1979년에 발표된 혜은이의 <제3한강교>. 이 노래는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밤이 새면 첫 차를 타고 이를 모를 거리로 떠날 거에요”라는 가사 때문에 금지곡이 되는 소동을 겪었다. 어떻게 ‘처음 만나서 바로 하나가 되느냐’는 것이었다. 이 가사는 당시 당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원나잇 스탠드’로 비쳐졌다. 결국 이 가사에서 ‘처음’을 ‘다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를 ‘맹세를 하였습니다’로 가사를 바꾼 후에야 금지곡에서 풀리는 해프닝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이름 모를 거리’도 밝은 분위기의 ‘행복 어린 거리’로 가사가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전 '핑클'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 했을 때 다시 원래 가사대로 불렀다는 사실.

강남 개발의 시초가 됐던 제3한강교 즉 한남대교. 한남동과 강남 영동(영등포의 동쪽, 즉 지금의 ‘강남 3구’를 지칭하던 단어) 지구를 연결하면서 경부고속도로로 이어지던 제3한강교는 강남의 상징과도 같은 다리였다. 혜은이의 <제3한강교>는 이렇게 1970년대 말 화려한 향락가로 변모된 강남의 모습을 보여주는 노래였다.

1980년대 주현미의 노래는 이런 강남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1985년 <영동 부르스="">, <비 내리는="" 영동교="">를 지나, 1988년 <신사동 그="" 사람="">에 이르면, 불빛 아래 엉키는 눈길과 새벽까지 기다리는 여자라는 자극적인 내용으로 넘어간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마주치는 그 눈길 피할 수 없어
나도 몰래 사랑을 느끼며 만났던 그 사람
행여 오늘도 다시 만날까 그날 밤 그 자리에 기다리는데
그 사람 오지 않고 나를 울리네
시간은 자정 넘어 새벽으로 가는데
아아, 그날 밤 만났던 사람 나를 잊으셨나봐

-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1988)

주현미 '신사동 그 사람' 앨범

 

가사 분위기로 봐서, 화자는 ‘신사동 그 사람’의 이름이나 연락처 따위는 모르는 모양이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눈길이 마주쳤다니 둘이 만난 것은 술집이 분명한 듯하다. 이름도 연락처도 모르는 남자를 새벽까지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은 당시 강남 유흥가의 분위기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그 다음해에 발표된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는 한발 더 나간다.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사계절 모두 봄봄봄 웃음꽃이 피니까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한번쯤은 찾아오세요
아아아, 여기는 사랑을 꽃피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

- 문희옥 <사랑의 거리=""> (1989)


아무리 다른 방식으로 읽어주려해도 ‘호객 행위’로 읽히는 노래다. 게다가 문희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데뷔한 나이 어린 가수라, 소녀티가 남이 있는 목소리로 하는 ‘호객성 멘트’는 여러 가지 다른 연상을 가능할 정도였다.

강남 개발이 속도전으로 전개될 이 당시, 고속터미널과 명문학교뿐 아니라 유흥업소도 강남 이전 대상이었다. 정부는 강북 도심에 유흥업소 허가를 금지하고, 경부고속도로 주변 땅을 유흥업소들에게 팔았다. 고속도로 옆 신사역 주변에 유흥가는 이렇게 형성됐다. 1972년부터 신사동에 집중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유흥업소들이 80년대에는 압구정동으로 번져갔다. 대중가요의 공간도 ‘안개낀 장충단공원’, ‘돌아가는 삼각지’가 아닌, ‘제3한강교’나 ‘비 내리는 영동교’, ‘신사동 그 사람’, ‘사랑의 거리’로 그렇게 변해갔다.

그리고 강남 개발 초기 신사동을 중심으로 한 성인 신흥 유흥문화는 주현미, 현철, 문희옥 등으로 대표되는 신트롯트를 탄생시켰고, 80년대 중후반 우리 대중가요계에 ‘신트롯트’ 열풍은 그렇게 불어닥쳤다.

‘강남’은 유흥가와 소비의 중심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아파트 열풍의 진원지가 바로 강남이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 윤수일 <아파트> (1984)


‘다리를 건너’와 ‘갈대 숲’이라는 배경이, 밀집 주거를 가능케 하는 아파트와 묘하게 부조화하다고 따질 필요는 없다. 바로 그것이 1980년대 한강 건너에 있는 아파트촌 풍경이었으니까. 매력적인 그녀가 사는 곳, 그녀와 연애를 나눴던 곳, 그러나 이제는 나를 만나주지 않는 그녀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곳은 바로 ‘강남의 아파트’였다. 80년대 초 이미 아파트가 동경의 대상이자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노래가 바로 윤수일의 <아파트>다.

1990년대 신세대문화가 새로운 화두가 되었을 때에 강남은 대중가요에서 다시 한 번 부상한다. 이른바 ‘압구정동 오렌지족’, ‘야타족’이라는 말의 근거지가 바로 강남이었고, 돈 많고 소비적인 젊은이들의 공간으로 떠오른 것이다. 신성우의 이라는 희한한 제목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강남은 미국화된 소비문화, 과시적 욕망의 공간으로 표상되었다.


거리를 나서면 나를 바라보는 많은 시선들 (그건 착각이야, 그건 착각이야)
그래서 무대 위를 걷는 기분으로 걷는다 (그건 착각이야, 그건 착각이야)
거리엔 모두 텅빈 눈으로 오만한 미소를 짓는 공주뿐이야
내용 없는 자존심 값싼 유행을 따르는 건 결코 진실은 될 수 없잖아
(중략)
구두굽 높이만큼 솟아있는 자존심
이만하면 킹카라고 내 자신은 생각한다
쇼윈도엔 항상 내 얼굴이 비치고 있어
마주 걷는 여자의 액세서리 무언의 눈싸움
(하략)

- 신성우 (1994)


신세대 유행 문화의 아지트가 된 압구정. 강남 유흥 문화의 중심은 이렇게, 80년대 신사역 주변의 직장인에서, 90년대에는 강남역과 압구정역 주변의 신세대로 바뀌었다. 강남 유흥의 주인공이 달라졌으니 강남이 낳은 음악의 장르도 달라진다.


(후렴)
그 어느 날 너와 내가 심하게 다툰 그날 이후로
너와 내 친구는 연락도 없고 날 피하는 것 같아
그제 서야 난 느낀 거야 모든 것이 잘못돼 있는 걸
너와 내 친구는 어느새 다정한 연인이 돼있었지

- 김건모 <잘못된 만남=""> (1995)


성공회대학교 신현준 교수는 강남역 나이트클럽의 DJ들이 가요 음반 작곡자와 프로듀서로 나서면서 90년대를 풍미한 인기 댄스곡들을 만들어내는 지점에 주목한다. 그들이 90년대 댄스가요 전성기의 마이다스 손으로 떠오르며 90년대 댄스 가요의 전성기의 한 축이 여기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 공전의 히트를 친 김건모 3집의 노래 대부분을 작곡한 김창완, Ref의 최민혁, ‘철이와 미애’의 신철 등도 강남역 나이트클럽 DJ 출신들이었다.

특히 90년대 후반에는 강남 청담동에 기를 쓰고 들어간 대형엔터테인먼트사를 중심으로 시작된 아이돌 음악의 시대가 꽃을 피운다.


사실은 오늘 너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싶어
널 만날 거야 이런 날 이해해
어렵게 맘 정한 거라 네게 말할 거지만
사실 오늘 아침에 그냥 나 생각한 거야

햇살에 일어나 보니 너무나 눈부셔
모든게 다 변한거야 널 향한 마음도
그렇지만 널 사랑않는 게 아냐 이제는 나를 변화시킬 테니까
(후략)

- HOT <캔디> (1996)


90년대 압구정동 청담동이 문화의 주류로 부상하고 주류 엔터테인먼트사도 이곳으로 오게 되면서 주류 엔터테인먼트와 관련된 시설들도 이곳에 집결했다. 아이돌을 키워내기 위한 디자이너샵, 성형외과 등이 주변에 포진해있는 곳이 강남의 청담동 주변이었다. 연예지망생들이 강남으로 모이면서 강남은 결국 주류 가요의 메카로 부상하게 됐다는 것이 신현준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 문화의 주류가 되면서 대중가요에도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온 강남. 한없는 동경의 대상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날선 비판의 대상이던 90년대 최고의 핫플레이스 강남.

2000년대에는 강남을 노래하는 분위기에 변화가 온다.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강남을 대단하게 여기지도 않고 특별히 힘을 줄 필요도 없어진 강남 키드들이 부상하게 된 것. 싸이가 그 대표격이었다. <강남 스타일="">은 바로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있다. 클럽에서의 부킹 상황을 연상하게 하는 이 노래의 가사는, 육체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강남을 노래한다. 그러나 바로 싸이의 기괴하고 코믹한 말춤이 보여주듯, 이 노래는 육체적 욕망의 부박함과 유치함을 미화하지 않고 가식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강남의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까지 노래의 동조자로 끌어들였다.


(상략)
Eh- Sexy Lady
오빤 강남스타일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hey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You know what I’m saying

오빤 강남스타일
(하략)

- 싸이 <강남스타일> (2012)

싸이 '강남스타일' 앨범

 

하지만 여전히 강남의 바깥에 사는 사람들은 강남 혹은 압구정동을 넘어서지 못하는 벽 같은 것으로 느끼곤 하는데, 그들의 부러움과 위화감은 노래 속에 이렇게 표현됐다.


강을 건너보니 여긴 딴 세상이야
만만한 사람 많아 적을 볼 수가 없어
이 동네 분위기도 정말 장난 아닐 걸
모두가 똑같은 얼굴 똑같은 메이커야 그게 뭐야
여기저기 둘러봐도 내가 제일 약해보이네
난 괜찮아 절대 기죽지 않아
(하략)

- 왁스 <강북에 산다=""> (2001)


(상략)
메리 크리스마스 되면 과연 화양리에도 눈이 내릴까 모두 궁금해해
남들은 날 무시해 흥 화양리에 산다고
하지만 난 보여주겠어 우리 동네에도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걸
산타 할아버지랑 손잡고 압구정동으로
(하략)

- DJ DOC <메리 크리스마스=""> (2000)


이런 압구정동의 다른 모습을 포착한 가수가 바로 정태춘이다. 동호대교 위에서 압구정동을 바라보며, 그 화려한 아파트촌 바로 밑, 한강변 둔치에 나와, 일당 얼마 벌이로 취로사업을 하는 가난한 노인들을 그려낸다.


동호대교 위론 바다 갈매기가 날고
철로 위론 전철이 지나가고
강물 위로, 고요한 그 수면 위로
유람선이 휘, 지나가고
강변도로 질주하는 자동차들
가파른 강둑 풀을 뽑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압구정은 어디, 압구정은 어디
(하략)

- 정태춘, 박은옥 <압구정은 어디=""> (2002)


이렇게, 앵글을 조금만 바꾸면, 다른 것이 보인다.

그리고 이제 강남의 역사도 40년이 넘었다. 심지어 ‘강남 좌파’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강남의 이미지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경희대 이택광 교수의 분석처럼, 강남 2세들 즉 미국 유학 세대들이 기성세대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이후다. 미국 대도시의 개방적이고 일부 진보적인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온 이들이 강남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브라운아이즈의 <비 오는="" 압구정="">을 들으면 느껴지듯, 압구정동에도 순정적인 사랑과 그리움이 있다. 땅장사로 개발된 도시, 부박하고 영혼 없는 도시, 압구정동 오렌지족이나 신사동 룸살롱 말고, 이렇게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강남이 어떤 이미지의 도시로 발전할지, 어쩌면 지금 강남은, 그 기로에 서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90년대 이후 강북 그리고 이를 담은 노래들은 어떻게 흘러왔을까?

이미 30~40대의 나이로 진입한 386세대나 장년층들이 가졌던 ‘강북’에 대한 느낌은 ‘강남’에 대한 부러움이나 소외감과는 차원이 다른 추억과 그리움의 애틋함이었다.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

- 이문세 <광화문 연가=""> (1989)


모두 세월을 따라 변하였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 그것이 바로 서울 옛 도심 ‘강북’이 갖는 이미지였다.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어릴 적 함께 꿈꾸던 부푼 세상을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언젠가 돌아오는 날 활짝 웃으며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좁은 골목길에
다정한 옛 친구 나를 반겨 달려오는데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 동물원 <혜화동> (1989)

동물원 '혜화동' 앨범

 

1960년대 초중반 혜화동에서 태어나 그 한옥 사이사이 골목길에서 뛰어놀았을 이들.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관악산으로 옮겨갈 때쯤, 아마 이들도 강남으로 혹은 여의도로 이사를 갔을 것이다. 옛 친구들은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 ‘고향 혜화동’에 모였다. 마치 시골 출신들이 향우회를 하듯, 이들 역시 고향에 다시 모인 것이다. ‘아주 멀리’ 간다는 말로 보아 외국 유학을 떠나는 느낌이 강하다. 1960년대 서울 중상류층에 태어나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사하고 다시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하는, 고학력 아이들의 행보가 고스란히 읽혀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들은 강남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학창시절을 다 보내고 이제 아련한 그리움의 장소이자 고향으로서의 ‘강북’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원의 <혜화동>은 바로 이런 이들의 ‘강북’에 대한 심리를 대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강북’은 더 이상 강남에 대한 부러움과 소외감이라는 반사적 이미지가 아닌, 혹은 그저 ‘그리움과 추억’의 공간만도 아닌,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강북’ 특히 서울 옛 도심이 강남 못지않은 세련됨을 지니면서도 그보다 좀 더 운치 있고 느리고 소박한 이미지를 입어가는 분위기가 맥을 같이 한다.


우리 두 손 마주잡고 걷던 서울 하늘 동네
좁은 이화동 골목길 여긴 아직 그대로야

그늘 곁에 그림들은 다시 웃어 보여줬고
하늘 가까이 오르니 그대 모습이 떠올라

아름답게 눈이 부시던
그 해 오월 햇살
푸르게 빛나던 나뭇잎까지
혹시 잊어버렸었니?
우리 함께 했던 날들 어떻게 잊겠니?
(하략)

- 에피톤 프로젝트 & 한희정 <이화동> (2010)


루시드 폴의 <삼청동>(2005) 역시, 삼청동을 쉴 곳 잃어 지칠 때 아무 말 없이 걸어갈 수 있는 곳, 바람이 지나가 버린 채 조금도 변하지 않은 곳, 소란함 없이 가만히 생각하고 관조할 수 있는 곳으로 느끼고 이를 노래에 담았다. 그리고 그 느낌은 김연우의 2집 앨범 [연인]에 수록된 경음악 <몇해전 삼청동="" 거리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2004)에도 은은하게 담긴다. 강북의 새로운 분위기가 이렇듯 젊은 뮤지션들의 노래들에 담겨 흐르고 있다. 강남과 강북은 그렇게 각자의 결을 새롭게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넓디 넓은 한강은 도도히 흘러간다. 그 양 옆에서 터잡고 살아온 강북과 강남의 삶도 그렇게 결을 달리해 흘러가고 있다. 한강이 머물지 않는 것처럼, 소울시티 강북과 개발도시 강남의 삶도, 그리고 그것을 담은 노래도, 이렇게 한 시대를 흘러가며 변화하고 있다.

2013 기획 특집 제1부 ‘한강, 노래를 가르다 – 강남과 강북’(기획 취재 이진성 박재철PD, 구성 이영미, 나레이션 한영애)은 12월 17일(화) 10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표준FM 98.1MHz에서 방송된다. 18일(수)는 제2부, ‘청계천, 노래 사이로 흐르다 – 북촌 종로와 남촌 명동’이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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