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경찰이 현직 장관 3명의 아들과 유명 기업인 등 37명을 비리혐의로 전격적으로 체포해 파문이 일고 있다.
현지 언론 등은 이번 사건이 집권층의 양대 세력인 정의개발당(AKP)과 페툴라 귤렌 지지층 간의 최근 갈등과 관련된 것으로 내분이 격화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터키 일간지 휴리예트는 경찰이 17일(현지시간) 오전 6시를 전후해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여 37명을 입찰 비리와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체포된 용의자에는 무암메르 귤레를 내무부 장관과 자페르 차을라얀 경제부 장관, 에르도안 바이락타르 환경도시부 장관의 아들 3명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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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건설업계의 거물인 알리 아아올루와 국책은행인 할크방크의 슐레이만 아슬란 행장, 아제르바이잔 출신 기업가인 레자 자라브, 이스탄불 파티흐구의 무스타파 데미르 구청장 등도 연행됐다.
휴세인 아브니 무툴루 이스탄불 주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검거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법적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논평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경찰을 총괄하는 귤레르 장관은 이날 아들이 체포되자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열리는 국경검문소 설립 기념식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으며 차을라얀 장관 역시 예정된 공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휴리예트는 이번 작전이 1년 정도 준비한 것이라며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도 이날 작전을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고 검거 이후에 알게 됐다고 보도했다.
관영 아나돌루통신은 검찰이 국책사업 입찰과 관련한 뇌물 수수 등 비리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들이 이번 작전이 에르도안 총리 지지층과 귤렌 지지층 간의 다툼과 연관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슬람 사상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페툴라 귤렌을 지지하는 세력은 정계와 법조계, 재계, 언론계 등 곳곳에 진출해 정의개발당과 함께 터키를 움직이는 양대 세력이며 특히 경찰 조직에 대거 포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귤렌은 1999년 당뇨병 등을 치료하고자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지금까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살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와 귤렌은 이슬람교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한때 세속주의 세력과 공동 대응했으나 최근 들어 갈등을 빚기 시작했고 지난달 정부의 입시학원 폐지 방침을 계기로 전면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날 중부도시 콘야 방문에서 "법적 절차가 끝나기 전에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비리 수사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다만 그는 구체적으로 귤렌 지지층을 언급하는 대신 "어떤 사람들이 어둠의 세력과 갱, 미디어, 자본가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비난하고 "그들은 터키의 앞날을 좌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터키는 '바나나 리퍼블릭'이나 삼류 부족국가가 아니다"라며 정권을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내년 3월에 예정된 지방선거에 참여하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누구도 이 나라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없을 것"이라며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스탄불에 본사를 둔 글로벌소스파트너스의 아틸라 예실라다 분석가는 WSJ과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으로 정치적 불안이 커질 것"이라며 "지금 정의개발당이 분열되고 있고 보수집권층에 대한 신화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날 이스탄불 증시는 개장 초부터 정국 불안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급락세를 탔으며 대표 지수인 BIST100은 5.21% 폭락으로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