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도로에서 '박근혜 사퇴, 특검 실시'를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인 채 숨진 고(故) 이남종(41) 씨의 유서 가운데 일부가 세상에 공개됐다.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라며 시작되는 고인의 유서가 공개되자,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경찰이 이 씨의 죽음을 개인의 비관사로 단정해 사건을 왜곡·은폐하려 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민주투사 고 이남종 열사 시민 장례위원회'(이하 시민장례위)는 2일 오후 1시 유가족이 경찰로부터 이 씨가 남긴 유서를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시민장례위는 이날 오후 이 씨의 빈소가 차려진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씨가 남긴 7통의 유서 가운데 국민에게 남긴 2통의 유서를 공개했다.
공개된 유서에는 "빚이나 어머니 병환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등 경찰이 주장한 신상 비관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장례위는 "유가족의 참고인 조사 도중 경찰 보도자료가 나갔고 유가족의 공식적인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경찰이 유서를 날조해 보도자료를 냈다"고 주장했다.
또 "분신 일주일 전 가입한 보험 수급자를 동생 명의로 바꿨다는 경찰의 발표도 모두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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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지난해 11월 24일 운전자보험에 가입해 12월 말 동생에게 보험을 승계해 이어받아 쓰게 했을 뿐, 매달 2만 7000원 가량을 납입하는 운전자 보험을 마치 보험사기인 것처럼 발표한 것은 '경찰의 조작'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유서 등 유류품을 처음에는 보여주지도 않았고 유서 사진촬영조차 못하게 했다"며 "유서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지연시키려 한 것"이라고 은폐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경찰 측으로부터 유서를 직접 확인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도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한 바 있다.
박 변호사는 "경찰이 유가족들의 정식 의견 청취가 끝나기도 전에 일부 사실에만 근거해서 경황이 없을 때 '왜곡 보도자료'를 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경찰에 '유서 등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경찰이 거부했다고 얘기하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서 없다던 유류품을 보여주겠다고 말을 바꿨다"고도 지적했다.
경찰이 보도자료를 발표한 것은 1일 오전 11시쯤이며, 유가족들의 정식 의견 청취는 이날 오후 2시 40분쯤부터 6시쯤까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먼저 이 씨의 동생으로부터만 진술을 듣고 보도자료를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숨진 이 씨가 졌다고 알려진 채무빚 역시 함께 사는 큰형이 7~8년전에 진 3000만 원 상당의 카드빚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공개된 유서에는 "박근혜 정부는 총칼 없이 이룬 자유 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라며 "원칙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 원칙의 잣대를 왜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것이냐"고 적혀 있다.
또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일어나십시오"라고 적힌 호소문도 있었다.
공개된 유서 외에 가족과 지인에게 남기는 유서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사랑해" 등 개인적인 내용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 씨의 유서가 공개되자, 이 씨의 뜻에 공감하는 일반 시민들이 나서서 서울역 광장 야외에 분향소를 차리고 추모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씨는 1973년 전남 광주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나 1991년 조선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해 대학시절을 보냈다.
이후 2002년 학사장교로 전역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어머니와 아르바이트 및 택시기사 등으로 일하며 생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의 빈소는 서울 영등포동 한강성심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시민사회장(4일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오는 4일 오전 9시 30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영결식 뒤 이 씨는 고향인 광주로 돌아가 망월동 구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