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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소치 레터]'변기물이 펄펄' 54조 원, 대체 어디로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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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2-0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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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취재진의 눈물겨운 분투

'웰컴 투 러시아' 소치 공항 입국장에서 각국 선수단과 취재진에게 환영 인사를 보내고 있는 자원 봉사자들. 그러나 이들의 친절한 환대에도 숙소 등 대회 시설 미비에 따른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소치=임종률 기자)

 

전 세계 동계스포츠 대축제 러시아 소치올림픽이 드디어 오늘(현지 시각 7일 20시 14분, 한국 시각 8일 01시 14분) 막을 올립니다. 전 세계 88개 국가 2873명 선수가 참가하는 역대 동계올림픽 최대 규모 대회가 될 전망입니다.

러시아는 이번 대회를 위해 500억 달러(약 54조 원)의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고 하죠.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역대 최고 금액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의 부흥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야심이 그대로 발현될 대회라는 평가입니다.

동계올림픽 현장 취재가 처음인 저도 부푼 기대를 안고 지난 4일(한국 시각) 오전 장도에 올랐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아침 비행기로 출국해 12시간 비행 끝에 터키 이스탄불에 도착, 8시간을 경유한 뒤 현지 시각으로 5일 새벽 소치 아들레르 공항에 내리기까지 꼬박 하루의 일정.

여기에 지루한 입국 심사까지 몸은 고단했지만 입국장에서 밝은 미소로 반겨주는 러시아 자원 봉사자들의 환대에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듯했습니다. 이들이 밝게 웃으며 외친 "웰컴 투 러시아!"가 비로소 올림픽 개막을 실감케 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 환영 인사가 앞으로 다가올 악몽을 예고한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취재가 아닌 생존을 위한 사투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였던 것입니다.

▲'물 받아놓고 식혀야 하는 욕실'

'이 방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소치올림픽 미디어 숙소는 가구와 침대, 카페트 등 아무런 시설도 갖춰지지 않은 의문이 방이 있다. 20만 원에 가까운 하루 숙박비가 무색할 지경이다.(소치=임종률 기자)

 

약 1시간 만에 수하물을 찾고 취재 ID카드를 발급받은 뒤 지친 몸을 이끌고 취재진 숙소로 오니 현지 시각은 새벽 6시. 프런트에서 역시 1시간의 기다림 끝에 방을 배정받은 저는 따뜻한 샤워로 피로를 씻어내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대충 여장을 풀고 욕실에서 물을 트니 온수가 콸콸 쏟아졌습니다. 먼저 소치에 도착한 몇몇 기자들로부터 들었던 "냉수만 나온다"는 불평이 무색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제 방의 욕실에서는 냉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수도 꼭지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도무지 뜨거운 물만 철철 넘쳤습니다. 그것도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의 고온이었습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불길한 예감에 일단 프런트가 있는 건물로 돌아가 방의 문제점을 얘기했습니다. 직원은 수리공을 부를 테니 방에서 기다리라는 답을 내놨습니다. 피곤을 이기지 못해 침대 위에 쓰러졌다 깨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더군요. 기다리던 수리공은 오지 않았고, 수온의 변화는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1시간 정도 식기를 기다린 뒤 대충 샤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녁까지는 고쳐놓겠다는 프런트 직원의 다짐을 받은 뒤에야 취재를 나섰습니다.

▲48시간 지나도 해결 안 되는 구조

'화려하게 지어진 경기장, 그러나 그 내부는?' 소치올림픽 경기장은 번듯하게 지어져 역대 최대 규모 대회라는 전망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숙소 시설 준비 미흡에 대한 문제점이 끊이지 않고 있다.(소치=대한체육회)

 

메인 프레스 센터(MPC)의 웅장한 건물을 보니 막대한 돈을 쏟아부은 사실이 비로소 실감이 나더군요. 경기장도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한국 선수단의 입촌식을 취재하고, 기사 마감을 한 뒤 다시 기대감을 안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물은 뜨거웠고, 제 머리도 뜨겁게 달궈졌습니다. 하루가 지났지만 어떤 변화도 없었던 겁니다. 냉장고 안을 들여다 보니 설치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더군요. 방 하나는 아예 공사조차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프런트에 항의하니 오늘 밤 안으로는 무조건 고쳐놓겠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돼도 기다리던 냉수는 감감무소식. 더욱 황당한 것은 변기 물이 담긴 용기까지 뜨끈뜨끈하게 데워져 있다는 겁니다. 아예 냉수가 나오지 않는 방이었던 겁니다.

둘째 날도 취재를 마친 뒤 돌아와 보니 반기는 것은 고온수뿐이었습니다. 재차 항의를 해서 겨우 냉수가 나오는가 싶었지만 이번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도 아니면 모, 온수 아니면 냉수인 방. 지난해 지어졌다는 신축 건물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결국 방을 바꿔 간신히 냉온 조절이 가능한 욕실을 얻었습니다. 소치 입국 뒤 48시간 만에 제대로 샤워할 수 있는 방을 얻은 겁니다. 하지만 먼저 머물던 방은 다른 한국 취재진이 써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2명 기자가 침대가 1개뿐인 방에서 머물다가 하루를 꼬박 기다린 끝에 나온 방이 바로 제 방이었던 겁니다.

▲각국 불평 난무에도 러 당국 "문제 없다"

'비데까지 있으면 어쩔 뻔했어' 소치올림픽 미디어 숙소는 냉수만 나오거나 온수만 나오는 방이 적잖다. 온수만 나오는 방은 변기물까지 뜨거워 용기까지 뜨끈뜨끈하게 데워진다.(소치=임종률 기자)

 

이번 대회는 경기 자체보다 대회 시설과 관련해 미흡한 준비에 대한 지적이 유난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란 수돗물과 벽 없이 나란히 설치된 양변기 등은 이미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외에도 물건이 널브러져 아수라장인 호텔, 천장에 달린 거울 등 미비한 시설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출국 전까지만 해도 이런 문제들은 남의 얘기로만 들렸습니다. 그러나 이틀 동안 오로지 샤워할 수 있는 방을 얻기 위한 사투를 겪고 보니 소치올림픽의 준비 상황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취재진 숙소 프런트에는 밤새 욕실 물 온도와 침대 부족 등 항의하는 각국 기자들로 북적이더군요. 5층 건물에 고장난 엘리베이터는 그냥 참고 다닌다는 사진기자들도 있습니다. 무거운 장비를 들고 다녀야 하는 사진기자들로서는 고역이지만 그나마도 감지덕지하다는 겁니다.

대회 개막 당일에서야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진 방을 얻은 소치올림픽의 현실. 원래 제가 머물던 방을 쓰게 된 취재진은 냉수만 나오던 욕실에서 다시 온수만 쏟아진다고 하네요. 변기에 비데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막 당일인 오늘도 방을 바꾸려고 한답니다. 벌써 4번째라고 합니다.

'소치의 녹물 수돗물' 한 미국 여기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된 소치올림픽 숙소의 수돗물.(자료사진)

 

그럼에도 러시아 당국은 부실 준비 논란에 대해 신경을 거의 쓰고 있지 않는 모습입니다. 코작 부총리는 "10만 명의 손님 중 공식 항의는 103건이었고, 모두 해결됐다"는 주장까지 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런 준비 상황에서 소치올림픽이 제대로 치러질 수 있을까요. 대회 개막 이틀 동안 방을 구하는 데 진이 빠진 저로서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P.S-경기장과 미디어 숙소 등 러시아 현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스파시바!(спаси́бо)" 처음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한국말로 된 욕을 하나 싶어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감사의 인사라고 하더군요. "웰컴 투 러시아!"라는 환영 인사를 받고 입국한 지 사흘째. '고맙습니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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