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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자들이 한시(漢詩)외교를 펼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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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0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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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등 중국 외교관들의 은유적 수사학

방한중인 시진핑 중국 주석이 4일 오전 서울대 글로벌공학센터 대강당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한시(漢詩) 외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중국의 정치·외교 인사들이 외교활동을 할 때 중국의 고전 시를 인용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한시 외교'라는 표현은 실제로 국내에서만 쓰이는 표현으로 중국 현지에서는 이에 대한 용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시를 대화에 인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 중국 지도자들이 고전을 자주 인용하는 이유는?

3일 중국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취임 후 북한에 앞서 한국을 먼저 단독으로 찾은 시진핑 주석은 이번 방한에서도 '순풍에 돛을 단다'(風好正揚帆)라는 의미로 한·중 관계에 순조로운 관계가 이어지길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 주석은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갔던 최치원의 한시(漢詩) '범해(泛海)를 인용해 '괘석부창해 장풍만리통(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 '푸른 바다에 배를 띄우니 긴 바람이 만리를 통하네'라고 언급, 우리 측 인사들의 공감을 얻어냈습니다.

또 '천리 멀리까지 보기 위해 다시 누각을 한 층 더 오르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라는 당(唐)대 시인 왕지환(王之渙)의 한시 '관작루에 올라(登觀雀樓)'에 나오는 구절을 읊으며 좀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더 먼 곳의 풍광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한·중 양국이 관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뜻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한시외교는 중국 최고위급 지도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요? 대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중국은 초등학생부터 교과서에 이백, 두보 등의 시를 실어 필수적으로 외우도록 하고 중·고 시절 논어 등을 가르쳐 고등학교 정도를 졸업한 보통사람이면 일상 대화에서도 심심찮게 고전 시나 논어의 한 대목을 쉽게 인용합니다.

◈ 중국에서 고등학교 졸업하면 당시(唐詩) 3백수, 논어 암기는 기본

중국의 초등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고문 작품만 70편을 기본적으로 외워야 하고 중학교 3년까지 포함해 중국의 의무교육 9년동안 외워야 하는 고전 작품만 120편이 된다고 합니다.

지난 2006년 4월 중국의 후진타오 전 주석이 미국을 방문할 당시 백악관 행사의 사회자가 그를 대만 총통으로 소개하고 미국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소매를 잡아 끌어 결례를 범하는 등 논란이 많았던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날 오후 후진타오는 부시 대통령이 주최한 오찬에서 두보의 시 <망악望嶽>의 한 구절을 읊었습니다.

"반드시 정상에 올라 더 낮은 산들을 둘러 보리라 (会当凌绝顶,一览众山小)"

이 의미심장한 구절은 그가 공식 행사에서 자신에게 치욕을 안긴 미국에게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때로는 직접적으로 화를 내는 것보다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상대를 더 아프게 하는 법입니다.

한국과의 일화도 존재합니다.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 당시 이명박 정부가 이를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사건 조사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천영우 당시 외교통상부 2차관에게 중국 외교부 추이톈카이 부부장은 다음과 같은 글귀를 액자에 담아 선사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천하에 크게 용기 있는 자는 갑자기 큰 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으며 이유 없이 당해도 놀라지 않는다. 이는 그 품은 바가 심히 크고 그 뜻이 심히 원대하기 때문이다 (天下有大勇者, 猝然臨之而不驚, 無故加之而不怒, 此其所挾持者甚大, 而其志甚遠也)"

소동파의 유후론(留侯論)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후 국내에서 여러 해석이 존재했습니다. 언론에서는 "한국 정부에게 인내와 절제를 당부하는 메시지"라는 의견과 네티즌 사이에서는 "중국이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다", "중국 외교에 한 방 먹었다"는 등의 의견이 분분했던 사건입니다.

◈ 중국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동서 고금의 역사와 배경 숙지
한국을 첫 국빈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오후 서울공항을 통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입국하고 있다. 시 주석의 이번 방한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북한 및 일본 방문보다 먼저 이뤄지는 것이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 국가주석의 한국 국빈방문은 1995년 11월 장쩌민 주석과 2005년 11월, 2008년 8월의 후진타오 주석에 이어 네번째다. (사진=윤성호 기자)

 


'한시, 마음을 움직이다'의 저자 이규일은 "중국인들의 언어와 사유 방식은 시의 원리와 유사한 면이 많고 전통 문화와 고전을 자랑스러워 해 의사전달에도 시를 자주 인용한다"며 "이러한 특징이 자연스럽게 외교에도 나타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중국에서 외교관이 되려면 상당한 수준의 고전 지식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외교관 교육과정에서는 예를 들어 한국과 중국 관계면 최근의 관계뿐만아니라 역사적으로 위로는 삼국시대부터 가까이는 근현대사까지 모든 협상문을 복기하고 의미와 배경까지 학습하게 한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고려시대 서희 장군이 거란(契丹)의 내침 때 소손녕과 담판을 벌인 조약 내용도 지금 외교관들이 들여다 본다는 얘기입니다.

반면 주중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우리의 일부 외교관의 경우 전문적으로 중국을 연구한 전문 외교관보다는 적당히 미국과 일본, 중국 공관을 경력관리차원에서 돌아다니는 '비지역전문외교관'들이 판을 쳐 중국어 한마디 못하고 중국 외교관들에게 당하는 경우를 목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부터 외무 고시가 폐지되고 국립외교원에서 배출된 사람들을 외교관으로 임명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곳에서 영어나 제2외국어도 중요하지만 제발 국사와 국어교육같은 기본을 충실하게 가르치는 교육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 한가지 우리 교육과 관련해서 중국의 교육에서 한가지 배울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한시는 중국 학생들의 교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아이들은 마치 우리들이 구구단을 외우듯 한시를 암송하게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학부모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덜 외울까 걱정하는 수준입니다.

일례로 2010년 중국의 한 신문에는 당시를 못 외워 엄마에게 맞아 죽은 5살 아이의 기사가 실렸을 정도입니다. 매우 극단적인 예지만 그만큼 중국이 한시 암송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으로 해석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인들은 '한시 외교'라며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를 오히려 이상하다고 여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이 자국문화에 대한 사랑과 자신감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히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 교류가 있을 때 먼저 중국 고전시의 구절을 준비해 사용하는 등 적극적인 '한시 외교'를 펼쳐 중국의 환심을 사고 있다. 자국의 문화를 타국에까지 전파시킨 것입니다.

◈ K-POP, 아이돌도 좋지만 우리 선조의 문화 유산 자랑스럽도록 만들어야

반면 제 학창시절 을 떠올려 보면 중학생들이 김소월의 시나 한시들을 외우도록 선생님들이 자주 과제를 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자녀들을 보면 영어단어외우기는 신경써도 시 한수 시조 한 대목 읊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K-POP, 아이돌도 좋지만 선조가 남겨준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을 평소에도 자연스레 사랑하고 아끼는 한국 국민에 대한 부러운 시선이 담긴 외신의 보도를 기대 해보는 것은 과연 무리일까요?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보면서 '한시 외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4일 오전 국회를 예방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황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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