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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흑인은 외친다 "손들었으니 쏘지마…경찰은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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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8-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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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국제공항에서 차로 15분이면 닿는 소도시 퍼거슨시(市).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이 백인 경관 대런 윌슨(28)의 총격에 최소 6발 이상 맞아 무참히 숨진 지 열흘째인 19일 오전(현지시간) 퍼거슨 하늘에 잠시 빗줄기가 흩날렸다.

세인트루이스 광역권을 이루는 위성도시인 퍼거슨의 아침 일상은 평화롭고 고요한 여타 소도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지만 시내 초입에 있는 퍼거슨시 경찰서에 이르면 최근 달라진 이 도시의 분위기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다.

차도를 사이에 두고 경찰서 맞은 편에 자리한 한 무리가 이방인을 맞이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켓을 들고 브라운의 죽음을 항의하는 이들의 세력은 늘어갔다.

경찰서와 시위대 사이를 지나는 차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적을 두 차례씩 울리며 시위대를 응원했다.

'손들었으니 쏘지마'라는 피켓을 든 이 지역 흑인 여대생 브라이언 레키샤(22)는 "이 지역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사건으로 사회 소수자인 흑인을 무시한 경찰의 행동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경찰은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밝히지 않고 우리에게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만 한다"며 "이 사실이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한다"고 집회 참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전날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시위 참가를 위해 홀로 날아왔다던 백인 남성 파커 잭스(25)가 끼어들어 "평화로운 집회를 막는 세력은 경찰"이라며 "어젯밤 시위 때 보니 다친 사람이 많은 데 구급차 한 대 준비하지 않았다"며 시위대 체포에만 열을 올리는 경찰 당국을 비판했다.

잭스는 "이번 사건은 인종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중무장한 경찰과 군대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성토했다.

브라운 총격 사망 사건을 바라보는 흑인과 백인의 시각은 확연히 갈린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전날 발표한 내용을 보면, 흑인의 3분의 2가 경찰의 대응이 지나치다고 본 반면 백인 중에서는 3분의 1만 이 의견에 동조했다.

하지만 퍼거슨 경찰서 앞 시위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인종 갈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접한 일리노이주에서 차를 몰고 3시간을 달려온 백인 여대생 브리타(21)는 "인종 갈등과 경제 불평등은 결국은 일맥상통하는 말"이라며 "미국 사회의 해묵은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평했다.

시위대 사이를 열심히 뛰어다니며 열심히 독려하던 백인 중년 남성 앤드루(52)는 "백인 경관이 흑인 10대 청년을 정말 동물처럼 쏴죽였다"며 "나흘 전 경찰이 5달러짜리 시가 담배를 훔쳐 나오던 브라운을 절도 용의자로 추정한 TV 화면을 섣불리 공개해 일을 그르쳤다"라고 혀를 찼다.

그는 "자식을 키우는 처지에서 10대 때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애들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 뒤 "설령 절도의 대가로 총격을 받고 인간답지 못하게 죽어야 한다는 게 과연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을 쏜 경관의 이름만 공개했을 뿐 진실을 숨기는 경찰을 향해 시위대는 목청껏 성토했지만 굳게 닫힌 경찰서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교차로 3개를 건너 오른쪽으로 꺾으면 드디어 문제의 웨스트 플로리샌트 거리가 나타난다.

브라운의 사망 다음날인 10일 밤부터 시위대와 경찰이 연일 대치하는 장소이자 일부 시위대의 약탈로 피해를 본 상점이 밀집한 지역이다.

거리 왼쪽의 주유소는 완전히 전소했고 거리 양쪽은 깨진 유리창을 나무로 막은 상점들로 가득했다. 창문은 깨졌지만 영업 중이라는 표시를 해둔 가게도 적지 않았다.

약 1㎞ 이상 쭉 뻗은 이 거리에 있는 한인 운영 휴대전화 상점과 미용 전문 상점은 일탈한 시위대로부터 완전히 털려 한동안 문을 닫는다고 고객에게 알렸다.

한인 주인은 '고객의 사랑에 감사한다'면서도 '폭력은 안 된다'며 더는 약탈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조원구(68) 세인트루이스 한인회장은 "이 주변에서 흑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미용 전문 한인 상점이 20군데 있다"며 "그 중 3곳이 완전히 털렸다"고 상황을 전했다.

거리 중간마다 삼삼오오 모인 시위대는 민주당 소속 제이 닉슨 주지사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책임을 그에게 돌렸다.

닉슨 주지사 얼굴에 M.I.A(Miss In Action)라는 글귀를 쓴 피켓을 든 한 흑인 남성은 "닉슨 주지사는 '그라운드 제로'인 이곳에 한 번도 오지 않고 바깥에서만 사태 해결을 떠들고 있다"며 "그는 제때에 행동하지 않은 무책임한 정치인"이라고 비난했다.

다른 한인 피해 상점으로 가던 중 웨스트 플로리샌트 거리에서 차로 약 5분 떨어진 대형 쇼핑몰을 점거한 주방위군이 눈에 띄었다.

이번 사태 진압을 진두지휘하는 군·경 합동 지휘통제소가 마련된 곳으로, 주방위군, 세인트루이스 메트로폴리탄 경찰,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 경찰기동대(SWAT)팀 등이 모두 집결했다.

전날 이곳에 진을 친 주방위군은 중화기를 무장하지 않았으나 소형 군용트럭 험비로 지휘통제소 앞뒤를 가로막고 차량 출입을 통제했다.

생수를 빌딩 안으로 실어 나르는 등 방위군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싸움을 길게 대비하는 듯했다.

세인트루이스 토박이로 퍼거슨 지역에서는 40년 이상을 살았다는 흑인 셸리(74) 할머니는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라며 "길거리에서 지키다가 흑인이 모는 아주 좋은 자동차만 골라서 잡는 백인 경찰의 인종 문제가 이번 일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거리에서 만난 흑인 남고생 존(17)도 "흑인만 골라 쏘고, 흑인만 골라잡는 경찰의 이런 짓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분노의 눈길을 보냈다.

브라운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외할머니 집은 웨스트 플로리샌트 거리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빌라 단지에 있다.

그가 쓰러진 자리에는 추모 꽃다발과 인형이 산더미를 이뤘고, 뒤쪽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십자가가 추모객을 반겼다.

흑인 인권 단체는 이번 사건을 취재하러 온 취재진에 식수를 나눠주고 큰길까지 차를 태워주는 등 친절한 행동을 보이며 "평화적인 시위를 중무장한 경찰이 과잉 진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퍼거슨 경찰은 오후 5시가 되자 약탈을 막겠다며 웨스트 플로리샌트 거리 1㎞ 전후방을 차로 막았다.

차는 봉쇄된 이 지역을 우회했지만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누군가가 '핸즈 업(손들었다)'이라고 선창하자 모두가 '돈 슛(쏘지마)'이라고 받아치며 이들은 밤에 벌어질 10일째 대치를 앞두고 전열을 정비했다.

인구 2만 명이 갓 넘은 이 지역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65%. 그러나 백인 경찰의 비율은 94%로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구조다.

오랜 세월 비정상에 따른 차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흑인 공동체는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처음으로 폭발했고, 이런 흑인의 저항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경찰 당국이 소 잡는 칼을 닭 잡을 때 쓰는 돌이키기 어려운 악수를 두면서 사태는 매일 점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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