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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 조선을 팔아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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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상의 역사산책 91]매국노를 선각자로 가르친 중·고교 교과서

◈ 이인직, 신소설로 포장한 연재소설로 일본을 찬양하다

이인직의 소설 <혈의 누>

 

우리가 중·고교 시절에 교과서에서 배운 <혈의 누="">라는 작품이 있다.

이인직이라는 인물이 쓴 최초의 신소설이라고 배웠다.

그 내용은 이렇다.

"1894년 청일전쟁이 평양 일대를 휩쓸었을 때, 7살 난 여주인공 옥련은 피난길에서 부모를 잃고 부상을 당하지만, 일본군에 의해 구출되어 이노우에 군의관의 도움으로 일본에 건너가 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이 소설이 <만세보>에 연재되기 시작할 때가 1906년 7월 22일이다.

그 네 달 전인 3월 2일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제국의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조선의 행정권을 장악했다.

이런 시기에 이인직이 '시련에 빠진 여주인공을 일본군이 구출한다'는 내용의 소설을 연재한 의도가 무엇일까?

쉽게 얘기하면 "일본이여~ 빨리 우리를 구출해달라", "일본의 점령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라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이인직이 선각자이고, 최초의 신소설을 썼다는 사실을 다 알아도 그가 이완용과 함께 조선을 팔아먹은 주역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고 데라우치 마사타케 육군대장이 3대 통감으로 부임하자, 총리 이완용은 비서인 이인직을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에게 몰래 보낸다.

첫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

 

1910년 8월 4일 밤 11시였다.

조선을 팔아먹는 비밀 협상을 하기 위해서다.

고마쓰는 24년 후 조선총독부 기관지에 이때의 일화를 소개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연재물이다.

이 협상에서 이인직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사실에서 보면 일한 병합이라는 것은 결국 종주국이었던 중국으로부터 일전하여 일본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운을 뗀 이인직은 은밀하게 이완용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물었다.

나라를 팔아먹는데 따른 댓가였다.

고마쓰는 "병합 후 조선의 원수는 일본 왕족의 대우를 받으며 언제나 그 위치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세비를 받는다. 내각의 여러 대신은 물론 다른 대관으로서 병합 실행에 기여하거나 혹은 이에 관계하지 않은 자까지도 비위의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 자는 모두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의 영작을 수여받고 세습 재산도 받게 된다"고 답했다.

귀가 솔깃해진 이인직은 "귀하께서 말씀하신 바가 일본 정부의 대체적인 방침이라고 한다면 대단히 관대한 조건이기 때문에 이완용 총리가 걱정하는 정도의 어려운 조건이 아니라고 본다"고 고마와했다.

나라를 팔아먹는 대가로 귀족의 작위와 은사금을 주겠다고 하자 '대단히 관대한 조건'이라고 좋아하고 있다.

이인직의 보고를 받은 이완용은 매국을 결심하고 데라우치를 만난다.

◈ 이완용과 이인직, 작위와 은사금을 댓가로 조선을 팔아먹다

내각총리대신 이완용(맨 왼쪽)과 친일파 고관들. 이완용 옆으로 임선준, 이병무, 송병준이 나란히 앉아 있다.

 

1910년 8월 16일 노론의 영수 이완용은 통감 저택을 방문해 데라우치를 만났다.

나라를 팔아넘기는 거대한 협상이 불과 30분만에 끝났다.

중요한 사안은 이미 이인직과 고마쓰 사이에 다 합의를 봤기 때문이다.

이런 악질 친일파 이인직을 해방 이후 우리 국사와 국어 교과서는 선각자로, <혈의 누="">를 '자주 독립· 신교육 사상'이 담긴 신소설의 효시로 가르쳐 왔다.

이런 파렴치한 교과서 집필을 주도한 인물들은 누구일까?

일제 하에서 식민사관을 개발하고 해방 후 이를 보급한 이병도와 신석호와 같은 조선사편수회 출신의 친일사학자 말고 또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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