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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한국시간) 멕시코의 멕시코 아레나에서 열린 'UFC 180' 대회 헤비급 잠정타이틀전의 승자는 파브리시우 베우둠(37, 브라질)이었다. 베우둠은 마크 헌트(40, 뉴질랜드)를 2라운드 중반 플라잉니킥에 이은 파운딩TKO로 꺾었다. 그러나 격투기팬들은 '승자' 베우둠 못잖게 '패자' 헌트에게도 많은 박수를 보냈다. 늘 그렇듯 헌트는 이날도 격투가의 미덕을 잘 보여줬다.
헌트에게 이번 경기 출전은 다소 무리인 듯 싶었다. 당초 이 경기는 챔피언 케인 벨라스케즈(32, 미국)와 베우둠의 헤비급 타이틀전으로 치러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벨라스케즈가 훈련 도중 무릎부상을 당해 출전이 어려워지자 UFC측은 헌트에게 대체출전을 요청했다. 시합을 한 달 여 앞둔 시점이었다.
경기가 치러진 멕시코 아레나는 해발 2,250m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베우둠은 대회 두 달 전부터 멕시코에서 합숙훈련을 하며 고산지대 적응을 마친 반면, 헌트에게 주어진 시간은 3주 남짓에 불과했다. 더구나 시합장소는 적지나 마찬가지인 멕시코.
어느 것 하나 자신에게 유리한 점이 없었지만 헌트는 주저없이 출전 제안을 받아들였다. 단순히 승패가 아니라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UFC 챔피언에 대한 열망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자를 만나도 쫄지 않는 두둑한 배짱과, 변명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헌트가 가진 최고의 미덕이다.
승자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은 그가 지닌 또 다른 미덕이다. 베우둠과의 시합 2라운드 중반 무렵, 심판이 경기 중단을 선언하자 헌트는 옥타곤 바닥을 내리치며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불혹의 나이에 맞은 타이틀전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타이틀전이 TKO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트는 심판이 공식 판정 결과를 발표하자 상대에게 진심어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옥타곤 위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쿨가이'답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차피 대체선수였어요. 베우둠의 행운을 빌어요." 그새 아쉬운 마음을 훌훌 털어내지는 못 했겠지만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존중하는 파이터의 모습에서 팬들이 존경심을 느낀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는 듯했다.
패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자세 역시 헌트가 박수를 받는 이유 중 하나다. 헌트는 상대를 펀치로 눕힌 후 추가로 펀치를 내뻗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년 3월 'UFC on FUEL TV 8'에서 스테판 스트루브(26, 네덜란드)를 왼손 훅 한 방으로 제압했을 때도, 지난 9월 'UFC in JAPAN' 대회에서 로이 넬슨(38, 미국)을 오른손 어퍼컷으로 KO시켰을 때도 그는 '확인사살'을 하지 않았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쿨하게 돌아섰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