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5년 4월 14일 (화)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김장훈 (가수)
◇ 정관용> 내일모레 이틀 뒤면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됩니다. 지난 1년 동안 진도 또 안산 등지를 오가면서 세월호 가족들 곁에서 위로하고 또 트라우마 치료까지 도와주고 계신 분이 있죠, 가수 김장훈 씨.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 가수 김장훈 씨를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김장훈>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작년 7월인가 여기 나오셨죠?
◆ 김장훈> 네, 시간이 꽤 됐네요.
◇ 정관용> 그때 무슨 특별한 예고도 없이 누가 부르지 않아도 그냥 팽목항으로 간다, 일정 비면 간다, 가서 그냥 슬그머니 그 사람들 옆에 앉아있는다, 그러셨잖아요.
◆ 김장훈> 네.
◇ 정관용> 다 형, 동생 됐다면서요.
◆ 김장훈> 그냥 어디 가면 그냥 같이 껴안고 무슨 형, 장훈 형 이러면서 같이... 요즘에 또 ‘금요일에는 돌아오렴’이라는 어머니들 육성을 바탕으로 한 책이 나왔어요. 그래서 북콘서트가 전국투어로 열리는데 저도 개인투어가 있어서 주중에 하는 출판콘서트에는, 북 콘서트에는 서울, 부산 등 제가 다녔거든요. 거기에도 이제 와 계시고 갑자기 보면 울컥하죠.
◇ 정관용> 지금도 모두 몇 번쯤 가셨죠?
◆ 김장훈> 20번 정도 갔습니다.
◇ 정관용> 최근에 다녀오신 것은 얼마나?
◆ 김장훈> 꽤 됐습니다. 제가 마지막 갔을 때가 19번째인가 갔을 때 저는 이렇게 얘기를 한 적이 없거든요. 그냥 가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분들한테 어떤 위로가 되겠어요.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 이분들의 희망은 잠수사 같다, 잠수사가 한 명이라도 구해야 하니까, 한 명이라도. 그래서 잠수사들 두세 분 가서 얘기하고 먹을 것 전달하고 힘 좀 내주십시오... 그때도 느낀 게 사람들이 잠수사들은 또 스트레스가 100만원을 받네, 어쩌네 하여튼 말이 많잖아요. 제가 느낀 것은 1000만원을 줘도 못 들어갑니다, 슈퍼맨이 아니지 않습니까? 상황을 그려보면 생명줄 갖고 들어가서 그 죽어 있는 시신을 들고 오는 사람들이 그 트라우마가 없을까요? 그리고 저한테 방을 보여주더라고요. 형 저희 이렇게 살아요. 잠수사들이 오죽하면 일개 가수한테...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그냥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자원봉사자들 제가 오히려 좀 다독거리려고 노력했고 그랬는데 19번째인가 갔을 때 가족들이 저한테 긴히 논의하고 싶다고 처음으로 그래서 뭡니까 했더니 그때 인양에 대한 것을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냐고...
◇ 정관용> 그때는 실종자 수색을 더 더해야지, 인양 얘기 할 때가 아니다.
◆ 김장훈> 그때가 10명인가 9명인가 남았을 때예요. 그래서 제가 그냥 솔직하게 왜 접니까 그랬더니 여기 오면 많은 정치인들과 얘기하는데 김장훈 씨는 얘기도 안 하고 그냥 와서 앉아 있다가 가고 오히려 그런 게 좀 믿음이 있는 것 같고 상황을 전반적으로 보는 눈이 우리가 볼 때는 제일 정확한 것 같다, 인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해서 그것도 하나의 일종의 수습 수단이고 또 지금 상황으로는 몇 달째 나오지도 않고 있고 정부 의지도 확인할 수가 없고 사람들 시선도 있고 하니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그냥 제 생각을 말씀드렸고 그 이후에 꼭 그것 때문은 아니겠으나 가족들이 고귀한 뜻으로 그냥...
◇ 정관용> 인양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 김장훈> 가족들은 가슴에 묻겠다. 그리고 국민들한테 더 이상 돈이 들어가면서 우리로 인해서 이렇게 계속 세금을 쓰면서 하는 것은 더 이상은 못하겠다, 우리가 미안해서. 자원봉사자한테 미안하다. 그만하겠다고 그래서 같이 울고...
◇ 정관용> 수색중단 선언한 그 시점 말이죠?
◆ 김장훈> (한숨) 그렇죠. 굉장히 저는 그 고귀한 뜻을 알았기 때문에 많이 울었죠, 같이.
◇ 정관용> 그런데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도 아직 인양 여부는 최종 결정나지 않았습니다, 대략 그쪽으로 갈 것 같은데.
◆ 김장훈> 참 그게 답답한 게 제가 외국에 크루즈 같은 것을 인양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봤거든요. 봤는데 지금 같은 경우는 어렵기는 하지만 사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외국의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 분명히 이것은 물론 돈이 들어가지만 어려운 작업은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을 하는 다큐멘터리들을 봤거든요. 그런데 뭐 돈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그 어떠한 것들을 아껴서라도 이것을 만약에 안 한다면 정말 진실이 침몰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흔한 얘기가 되지만 해야 되겠죠. 그리고 제발 빨리 해야 되겠죠.
◇ 정관용> 그런데 아무튼 결론이 안 났습니다.
◆ 김장훈> 계속 처음에는 한다고 했다가 이렇게 불합리한 점을 계속 얘기 내놓잖아요.
◇ 정관용> 벌써 1년입니다.
◆ 김장훈> 1년입니다.
◇ 정관용> 1년이란 게 느껴지세요?
◆ 김장훈> 정말 하루 이틀 같습니다, 그냥 꿈을 꾼 것 같아요. 아주 나쁜 꿈을 꾼 것 같은 그런데 그 꿈 뒤에 꿈을 깨서 아, 이게 꿈이었구나 했으면 좋겠는데 그 악몽이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는 게 저는 세월호 이후로 좌절, 절망 이런 단어를 저는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 전에. 무조건 저는 해야 한다 하는데...
◇ 정관용> 에너지의 대명사였는데.
◆ 김장훈> 그런데 정말 에너지를 많이 소진했고요, 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그리고 우울증이 걸렸어요, 지금. 그래서 되게 노력 중이고 심지어 공황장애도 조금은... 그런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뭐 된 게 없으니까 하나도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고요.
◇ 정관용> 왜 그렇게 아무것도 안 될까요?
◆ 김장훈> 일단 정부가 무능하고, 무능한 것보다 의지가 없고 어떤 컨트롤타워가 역시 이것은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는데 대통령이 정확한 노선을 정하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제가 볼 때는 제일 중요한 게 대통령이 공부를 해서 다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거는 뭐 리더는 원래 그런 게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지만 우리나라의 특성상으로 제가 볼 때는 어느 사안에 대해서는 공부를 해서, 한낮 가수도 다 다큐멘터리 찾아보면 공부하고 기사 검색하고 외국 사례 다 보고 일본의. 효고현 트라우마센터 갔다 오고 독일사례, 보스턴 회사들 다 보거든요, 보면 답이 어느 정도 나옵니다, 이거는. 그러니까 보고 그래야 밑의 사람들이 허언을 할 때 속지 않는 거죠. 그건 아니다, 다시 알아봐라. 이거는 이렇게 해야 한다,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정하지 않은 이상 일은 될 수 없는데 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이거를 총대를 메고 해수부장관? 누구? 총리? 못 합니다. 이 일은.
◇ 정관용> 왜 그 일을 안 하신다고 보세요? 모르기 때문에?
◆ 김장훈> (한숨) 그냥 어찌할 바를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냥 뭐...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마음까지는 그러니까 밑의 사람들이 알아서 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너무 엄청나서 손을 못 대는 건지 그 시기를 놓쳐서 그리고 중간에 너무 정치적으로... 이게 정치인들이 나눠놓는 바람에 손을 대기가 또... 제가 왜 좌빨입니까? 저는 그렇게 돼 있는 부분도 있거든요, 왜? 세월호에 관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 정관용> 거기에 관여하면 좌빨이 됩니까?
◆ 김장훈> 네, 그렇게 돼 있더라고요.
◇ 정관용> (웃음)
◆ 김장훈> 소위 말하는 우빨도 아니죠. 소위 우익이든 좌익이든 다 나라를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는 하는 겁니다. 다만 극단적이고 상식적이지 않을 때 욕을 먹겠죠. 그런데 이거는 우익도 아니고 뭐도 아니고 그냥 너저분한 어떤 단체에서 공격을 하고 그런 것들은 상관 없습니다. 그렇게 이 일로 인해서 진짜 국론이 분열된 상황이 너무 코미디 같아서 그런 게 저로 하여금 좌절감, 절망감...
◇ 정관용> 사고 수습 대처, 이것도 그렇습니다마는 또 1년 전, 1년 전은 아니죠. 불과 한 몇 달 전만 해도 이걸 통해서 우리 사회가 안전불감증에서 극복되고 또 관피아 다 척결하고.
◆ 김장훈> 적폐 타파하네 뭐...
◇ 정관용> 적폐 타파, 이런 많은 얘기들이 있었는데 그것도 별 진척이 없잖아요, 현재로서는.
◆ 김장훈> 전혀 아직도 관피아들의 사례가 계속 뉴스를 통해 나오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혼자 생각할 때는 그중에서 하나만 빠지면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진전이.
◇ 정관용> 하나요?
◆ 김장훈> 네.
◇ 정관용> 뭐요?
◆ 김장훈> 적폐 타파요.
◇ 정관용> 그거라도?
◆ 김장훈> 아니요, 적폐를 타파한다고 하면 지금 성완종 리스트에서 나오지만 적폐에 해당되지 않는 관리들, 정치인들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만약에 좀 지혜롭다면, 그런 생각을 혼자 해봤습니다. 이게 왜 이렇게 안 될까 생각해서 적폐에 대한 것은 시스템의 폐해로 인정하고 일단 최소한의 선에서 정리하고 앞으로 미래를 보고 가자, 대통령이 이런 것들을 해야 되는 거죠.
◇ 정관용> 지난 일은 묻지 않겠다, 이런 식으로?
◆ 김장훈> 약간 일단 지난 일은 묻지 않겠다, 그것은 시스템의 폐해고 오류가 쌓여온 진짜 말 그대로 시스템의 적폐다. 앞으로 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이 진상규명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하자라고 했더라면... 예를 들어서 잘 아시겠지만 적폐를 타파하겠다고 장관, 차관 밑으로 내리면 밑에 실무선에서 자료 안 주고 버티면 막말로 2년만 버티면 레임덕이야, 2년만 있으면 됩니다. 안 주면 못 캡니다, 그거. 누가 봐도 국민들 다 아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아마 그 부분에 있어서 말은 멋있었으나 세월호의 진상조사에서 철저한 규명, 책임자 처벌, 적폐 타파 그리고 관피아 척결을 통한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 멋있죠? 멋있으나 그걸 실현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아니면 진짜로 진짜로 내가 대통령 관두고 페이스오프 해서라도 외국 가서 내가 살더라도 이걸 내가 하겠다라고 용단을 내리던가. 어쨌든 우리나라는 꼭 법적으로 의원제가 아니라 대통령 직선제다 이런 것을 떠나서 대통령의 권한이 워낙 강력하고 오죽하면 얼마 전에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정해 주니까 수사를 했다가 이상 없다, 검찰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대통령이 정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나서서 이걸 하지 않는 한, 이 일은 해결될 수 없다고 저는... 이거를 누가 봐도 총리도 바꾸고 해양수산부 장관도 바꾸고, 안 됩니다.
◇ 정관용> 별로 한 일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이렇게 수시로 진도로 안산으로 또 각종 콘서트를 통해서 특별법 제정 관련해서 스스로 24일 단식도 하시고.
◆ 김장훈> 네.
◇ 정관용> 그리고 트라우마 센터 같은 것도 만들어서 저희 방송에 나오셨을 때도 피해자 돕기 프로젝트, 우리 프로젝트도 이런 것도 하시고 또 이번에 계획도 짜시고.
◆ 김장훈> 그게 우리 프로젝트의 앞으로 나아갈 길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전환된 것인데요. 우리 프로젝트의 다른 식의 접근인데 제가 해보니까 우리 프로젝트에서 정신과 의사들이나 사회 각계각층들이 모여서 한다, 말은 좋았지만 가족들한테 실제적으로 접근해서 이런 것들을 다가기에는 이거는 의학적인 것보다는 사회학적으로 스킨십으로 다가가면 마땅하다. 그런데 저는 그래도 스킨십을 많이 한 편이었어요. 저한테 전화가 다 와요, 얼마 전에도 우리 아이 생일인데 떠난 아이, 무한도전 멤버들을 좋아하니 무한도전 사인과 김장훈 씨 사인을 생일상에, 그런 그게 도움이 됩니까 그랬더니 굉장히 마음이 치유가 된대요, 우리 아이가 좋아할 거래요.
◇ 정관용> 받아다 달라?
◆ 김장훈> 그전에 뭐 엑소도 있었고 비스트 사인도 있었고 소녀시대 사인, 다 또 연락을 해요, 제가 기획사에 그러면 해 주시죠.
◇ 정관용> 받아다 줘요?
◆ 김장훈> 제가 그런 역할을 했는데 아, 이런 게 오히려 되는구나 해서 이번에 세월호 전 유가족 소망 들어주기 콘서트 프로젝트를 하는데.
◇ 정관용> 아니 그러니까 의학적인 접근도 필요하죠, 필요한데 그것만 갖고 되는 건 아니고?
◆ 김장훈> 예를 들어 그런데 지금 누구나 다 의학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는데 정부에서 그냥 센터를 만들어놓고 가서 받아라, 안 받습니다.
◇ 정관용> 안 가요?
◆ 김장훈> 안 가죠, 안 갑니다. 그때마다 찾아가서 정신과 치료 받을래? 우리나라는 굉장히 그거에 대해서 조금 족쇄 같은 것이 있어서...
◇ 정관용> 그래도 어느 정도 심리치유센터에 좀 드나드시고 가족처럼 지내고 그런 분도 있다고 들었는데.
◆ 김장훈> 있는데.
◇ 정관용> 몇 분 안 되나요?
◆ 김장훈> 몇 분 안 되고요. 설령 300명 내 가족 중에 단 한 가족이 그 혜택을 못 받더라도 그것은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평하게 해야죠. 그래서 제가 모든 가족들의 소망 들어주기 콘서트를 하는 이유도 예슬이 같은 경우 전시회 하고 제가 봄 양과 함께 봄이 아버지의 요청으로 꿈을 이루어주었지 않았습니까?
◇ 정관용> 노래를 같이 부르셨죠.
◆ 김장훈> 네, 그러면 다른 가족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 있는 겁니다.
◇ 정관용> 그렇죠.
◆ 김장훈> 내 가족도 있는데.
◇ 정관용> 박예슬 양은 디자이너를 꿈꾸어서 구두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전시도 했고.
◆ 김장훈> 네.
◇ 정관용> 박봄 양은 우리 노래를 같이 불렀고.
◆ 김장훈> 그러니까 예를 들어 소망이라는 게 물론 대학생 봉사대를 만들어서 제 계획은 찾아가서 그 어머님과 아버님과 그 떠난 가족의 흔적을 찾는 거죠. 그래서 꿈을 우리가 추적을 하는 거죠. 그런데 단순히 우리 아이가 뭐를 좋아했으니까 이것 받아다가 생일상, 이것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많이 미리 리서치를 했어요, 그랬더니 떠난 아이 형이 작곡을 하는데 그러면 그 형이 작곡을 해서 그 친구를 위한 곡을 만들고 그 노래를 이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부르고 이 학교에 있는 노래 동아리가 반주를 하고 이렇게 해서 그 친구들과 트라우마에 걸려 있는 친구들이 참여를 하고 오히려 가족들이 참여를 함으로써 내가 뭔가 떠난 자를 위해서 해 줬다는 성취감에서 힐링이 되고 이 스킨십을 하면서 의학적으로 치유가 필요한 경우에는 잘 설득을 해서.
◇ 정관용> 또 의사한테 보내고?
◆ 김장훈> 네, 이거는 삼촌이 볼 때, 저한테 다 삼촌이라고 부르거든요. 삼촌이 볼 때 너는 하니까 삼촌도 정신과 치료 받아, 약 먹고 우리 같이 하고 해서...
◇ 정관용> 구체적으로 봅시다. 그러니까 온 가족분들의 소망, 이런 것을 접수받고 계시다고요?
◆ 김장훈> 지금 ‘304wish@naver.com’으로 가족들의 소망과 서울, 경기 인근 대학생들. 왜냐하면 그 피해자들 지역이 서울 안산으로 주로 되었으니까 효율을 위해서 그렇게 해서 두 분야에 접수를 받고 있고요, 3일 됐고요.
◇ 정관용> 대학생들은 자원봉사로 참여하실 사람들?
◆ 김장훈>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 유가족 분들은 본인의 소망, 희망하는 바?
◆ 김장훈> 그런데 제가 이미 유가족들한테는 구두와 여러 가지 가족 네트워크를 통해서 누구엄마나 주영이 엄마 다 아니까 엄마들 통해서 그쪽으로...
◇ 정관용> 선전을 해놓으셨고?
◆ 김장훈> 네.
◇ 정관용> 그래서 그런 게 접수가 되면 어떻게 하신다고요, 구체적으로?
◆ 김장훈> 일단 동별로 제가 할 건데요. 구나
◇ 정관용> 안산의 각 동별로?
◆ 김장훈> 그러니까 안산이 트라우마 지역이다, 안산 전체를 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시청광장에서 추모집회를 한다, 그건 단발성으로 크게 와 닿는 힐링은 아닙니다, 가족들한테.
◇ 정관용> 그분들한테는?
◆ 김장훈> 그래서 동으로 하면 예를 들어서 10명이 그 마을에서 희생자가 있다면 쉽게 생각하면 가족친지 한 100명? 그러나 외국의 예를 봐도 이웃집 할아버지, 누구누구, 담임선생님, 과외선생님, 편의점 누나.. 그 마을 전체가 트라우마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그 마을이 없어집니다.
◇ 정관용> 그런 경우도 있어요?
◆ 김장훈> 이주를 해버립니다, 참사가 난 경우에. 그래서 동별로 묶어서 다 찾아서 스토리텔링을 해서 10명이면 10명, 세 명이면 세 명 같이 해서 동네주민들과 그 떠난 식구들의 남은 가족들, 친구들이 다 참여해서 그들이 만드는 겁니다.
◇ 정관용> 아, 김장훈 씨가 혼자 공연해 주는 게 아니고 그들과 함께?
◆ 김장훈> 함께. 그래서 우리 아이는 꿈이 과학자였어요 그러면 뭐 있어요 그랬더니 프라모델 만들어 놓은 게 그렇게 많대요. 아, 그러면 이것을 전시를 하고 친구들이 이 친구를 과학자로 멋있게 그려서 이 친구를 과학자로 해서 꿈을 이뤄주자 해서 그래서 열 몇 명이 같이 하고 날 좋을 때 그걸 통해서 아름다운 꽃밭에 동민 전체가 모여서 같이 꿈을 이뤄주고 우리가 함께 이 이웃을 위해서, 떠난 가족들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일했다 하는 게 치유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대학생들이 남은, 특히 아이들 같은 경우에 물론 어머님들도 있지만 자매결연, 스킨십을 통해서.
◇ 정관용> 아이들이라면?
◆ 김장훈> 떠난 자의 남은...
◇ 정관용> 아, 동생이나 오빠나 형이나 이런?
◆ 김장훈> 언니나 오빠 있잖아요. 제가 보면 그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공부는 거의 못하고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지경인데 그것이 트라우마 센터에 가라고 한다고 가지 않거든요, 아이들은요. 그냥 방황하고 모든 것들이 망가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대학생 언니들이 형, 동생도 맺고 저런 삼촌이 되어 주고 제가 또 다 못하니까.
◇ 정관용> 그건 또 구조된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 김장훈> 그렇죠, 그 트라우마는...
◇ 정관용> 그 당시 1, 3학년이었던 선후배들, 그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 김장훈> 다, 모든 친구들을 다 같이 해서 만나야 됩니다. 그런데 그 만나기에는 아무래도 연예인이 가장 제가 그동안 고등학생 강연도 가고 학교폭력, 왕따 여러 가지 다녔는데 가장 좀 쉽게 다가갈 수 있고요.
◇ 정관용> 일단은 호기심에서라도 더 쭈뼛쭈뼛함 없이 찾아올 수 있고.
◆ 김장훈> 그래서 지금 아나운서 협회나 많은 연예인들한테 신화의 김동완 군도 SNS를 통해서 보상도 좋지만 더 따뜻한 인간적인 도움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라는 발언을 했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을 모아서. 그래서 그 진행을 한 후에 그 소망콘서트는 제가 준비를 해야 되겠죠, 기획적인 면은 뭐 도시락과 이런 것들은 협찬도 좀 받고.
◇ 정관용> 하나하나의 콘서트가 유가족분들이나 어쨌든 그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분들의 소망을 다 받아서 기획을 해야 되니까 만만치 않은데요.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 짜야 되잖아요.
◆ 김장훈> 짜야 되고 하지만 그것들을 저는 어떻게 하느냐면 대학생들이...
◇ 정관용> 자원봉사를 해서?
◆ 김장훈> 자원봉사할 때 조별로 만들어서 조장을 정하고 지역별로 단장을 뽑아서.
◇ 정관용> 아...
◆ 김장훈> 일단 너희들이 한번 꾸며봐라.
◇ 정관용> 어떤 공연기획팀을 만드는 군요.
◆ 김장훈> 네.
◇ 정관용> 자기들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유가족이나 이런 분들을 만나면서?
◆ 김장훈> 그렇죠, 저는 코치만 하는 거죠. 이 경우는 이렇게 이렇게 하면 그 대학생들한테도 어떠한 이런 것들에 뛰어들면서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청년들 많이 규합해서 우리 광복70년으로 독도 행사도 하고 있는데 대학생들과 함께할 것이고요. 역시 청년들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대학생들이 효율적으로 방학도 있고 그래서 여러 가지를 융합적으로 제가 생각을 해서...
◇ 정관용> 그러니까 첫 콘서트가 언제 열릴 수 있을지 또...
◆ 김장훈> 6월 초에 반드시 제가 해야 됩니다.
◇ 정관용> 6월 초?
◆ 김장훈> 해야 됩니다, 그때는 시작을 해야... 주로 야외 공연으로 하고 싶어요.
◇ 정관용> 그래야 되겠죠.
◆ 김장훈> 분위기적으로.
◇ 정관용> 오래 걸리겠네요, 전체 다 하려면?
◆ 김장훈> 잘은 모르겠으나 한 2년, 3년 정도 러프하게 제가 계획을 짜 보니까 생각하는 대로 넘어갈 수도 있고요. 또 그렇게 되는 것이 뒤에 오는 가족들한테는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이 일은 사실은 지금 세월호 얘기만 꺼내도 아직도 정치색이 묻어있고 사람들이 잊지는 않고 분명히 아파하나, 이 얘기를 꺼내는 자체가 아파서 아우성치는 소수들의 의견이 큰 것처럼 느껴지나 침묵하는 다수가 분명히 아파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 정관용> 물론이죠.
◆ 김장훈>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겁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나 이 일들이 자칫 계속 정치권에서 희석시킬 수가 있기 때문에 계속 이 일을 이끌어가야 된다라는 면에서 저는 오히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다음 정부까지 끌고 가서 잊히지 않아야, 이 일이 이번 정부에서 해결이 나겠습니까?
◇ 정관용> 그러니까 공연만 빨리빨리 조직하면 더 빨리 할 수도 있지만 좀 장기간을 두고 우리 사회 전체가 잊지 않는 그런 또 계기로 삼자?
◆ 김장훈> 그리고 일의 특성상 굉장히 어려워서 2주 간격으로 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 정관용> 물론이죠.
◆ 김장훈> 그러면 봄과 가을에 한다고 치면...
◇ 정관용> 하긴 한여름, 한겨울에는 못하죠.
◆ 김장훈> 네, 못하니까.
◇ 정관용> 야외공연 같은 것은.
◆ 김장훈> 그런데 한 번할 때 대충 봐서 10명이라고 치면 1년에 한 7명에서 80명 정도를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304명이 다 하지는 않을 것 같고 한 200명이라고 치면 제가 볼 때는 한 3년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역으로 산술했을 때. 그런 생각이 들고 안타까운 게 지금 같은 경우도 세월호 1주기인데, 아직도 이것이 나누어져 있고 정치적으로 비쳐지고 있고 또 하나는 어떤 사건이 났을 때 성완종 전 경남회장 리스트 나면서 이 일은 아예 묻혀버렸는데,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하자고요. 집에 가장인데 아내가 있고 아이들이 세 명인데, 아내가 아프고 첫째가 수험생이고 둘째가 중학교, 셋째가 초등학생이면 갑자기 둘째가 사고가 났습니다. 그러면 사고 난 것을 가장이 가서 봐야하지만 첫째의 수험생활 할 수 있는 것도 돌봐야 되고 아내 아픈 것 돌봐야 하는데 지금 나라는...
◇ 정관용> 온통 한 군데로만 쏠려서.
◆ 김장훈> 이게 나면 다른 것들은 다 죽어버리면 정부 기능이 그냥 멈추어 버리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 김장훈> 이런 상황들이... 그래서 우울증 걸릴 정도로 좌절했으나 다시 희망감을 갖고.
◇ 정관용> 길게 보고?
◆ 김장훈> 길게 보고
◆ 김장훈> 뚜벅뚜벅 가자?
◆ 김장훈> 정말 힘듭니다, 정말 지쳤고 그리고 고맙습니다라는 얘기가 저는 제일 죄송한 게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데 뭐가 제가 고마울 거며...
◇ 정관용> 알겠습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어쨌든 자꾸만 잊혀져가고 있다. 또 말로는 번지르르하게 그분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가까이 그분들한테 다가가는 그런 것은 자꾸 뜸해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장훈 씨가 또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그들과 함께 만난다는 것. 그다음에 그냥 그분들한테 공연을 보여주거나 전문가 상담 받아라가 아니라 본인들이 참여해서 자기의 소망을 몸으로, 행동을 통해서 힐링하고 치유할 수 있게끔 참여시킨다는 것.
◆ 김장훈> 지금 항상 얘기하는 것은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잖아요. 그러니까 그 미안한 마음을 뭔가 얘기해 줌으로써 힐링이 되고 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필요하면 연결을 시켜주고 그리고 지속적으로 대학생들이 평생, 그 아이들과 부모들과... 가족이 여러 형태가 있지 않습니까?
◇ 정관용> 그렇죠.
◆ 김장훈> 저 피가 안 섞였지만 가족 많거든요. 그런 가족 형태를 만드는 쪽이 제가 6개월간 연구한 결과 실행에... 죄송합니다, 제가 뜻은 미리 먹었는데 너무 겁이 나서 발표하는 데 좀 주저하는 데 3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 정관용>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뚜벅뚜벅 조심스럽게.
◆ 김장훈> 소박하게.
◇ 정관용> 다가가 주시기 바랍니다.
◆ 김장훈> 그러겠습니다. 이 자리는 제가 그래서 그걸 선언하려고 약속을 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 정관용> 이제 안 하면 책임추궁 당하시니까.
◆ 김장훈> 당해야죠. 그리고 이렇게 관심 가져 주셔서 정말 제가 감사드립니다.
◇ 정관용> 네, 오늘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김장훈> 감사합니다.
◇ 정관용> 가수 김장훈 씨,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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