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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오늘 뭐했지?]세계챔피언 유명우의 15차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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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적수가 없었습니다." 현역 시절 유명우.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마국)와 매니 파퀴아오(필리핀)의 대결 덕분에 전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몇 차례 맞대결이 무산된 끝에 드디어 성사가 됐는데요. 무패의 챔피언과 복싱 역사상 최초로 8체급을 석권한 필리핀 영웅의 맞대결. 국내에서도 복싱이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것은 정말 오랜 만인 것 같습니다.

사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복싱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메이웨더나 파퀴아오처럼 세계챔피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 등 복싱 강국이 기피하던 경량급이 주를 이뤘지만 말이죠.

유명우도 그 중 하나인데요.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4월29일에는 유명우의 WBA 주니어플라이급 15차 방어전이 열린 날입니다.

장소는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 특설링이었습니다. 상대는 동급 1위이자 1988년 김봉준을 꺾고 미니플라이급 초대 챔피언에 올랐던 레오 가메스(베네수엘라)였습니다. 가메스는 체급을 올려 챔피언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유명우는 33전 전승(13KO), 가메스는 20전 전승(14KO)을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무패 복서들의 맞대결이었죠.

그런데 당시 유명우의 상황은 썩 좋지 못했습니다.

데뷔 후 처음으로 괌 전지훈련을 떠나기도 했지만, 한 달을 앞두고 한계 체중에 5kg이나 초과해 "어렵다"는 예상도 나왔습니다. 또 프로모터와 대전료를 두고 언쟁을 펼치다 3월 잠시 글러브를 내려놓기도 했습니다(결국 1억원의 대전료를 받았습니다). 15일에서 29일로 방어전이 연기된 이유입니다. 덕분에 "유명우가 가메스를 기피한다"는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유명우는 종반 KO를 노리는 전략으로 링에 올랐습니다. 가메스가 상대 동작을 역이용하는 카운터 블로에 능하다는 판단이었죠.

권투위원회 사무총장 시절 유명우. (자료사진)

 

쉽지 않았습니다. 초반 가메스의 왼손 잽에 고전했습니다. 코피까지 터지는 등 어려운 경기를 펼쳤습니다. 하지만 8회 가메스의 왼쪽 눈 아래가 찢어졌고, 10회에는 오른쪽 뺨에도 출혈이 생겼습니다. 승부가 유명우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습니다.

결국 유명우는 2-1 판정승을 거뒀습니다. 미국 심판 2명은 유명우의 손을 들어줬고, 베네수엘라와 같은 남미 지역의 파나마 심판은 가메스에게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유명우는 15차 방어전 성공으로 전 WBC 라이트플라이급(WBA 주니어플라이급과 동급) 챔피언 장정구가 보유한 최다 방어전 기록과 타이를 이룹니다. 물론 1985년 12월 챔피언에 오른 뒤 국내에서만 방어전을 치러 '안방 챔피언'이라는 타이틀도 따라다녔지만, 대단한 기록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이후 유명우는 기록을 위해 16차 방어전을 치른 뒤 새 도전에 나설 계획을 세웠는데요. WBC 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 움베르토 곤잘레스(멕시코)와 통합 타이틀전이냐, 아니면 플라이급으로 체급을 올려 두 체급 석권에 나서느냐라는 새로운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물론 두 가지 도전 모두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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