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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수업'까지 갑질 논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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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갑을 계약의 정석?' 일선 학교에서 진행 중인 '방과 후 학교' 업체와 강사의 계약서. 수강료의 70%를 지급하는 조항은 수수료를 30% 떼간다는 뜻이다.(자료사진=강사 제공)

 

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방과 후 학교'. 이런 가운데 불공정한 계약이 굳어질 수 있는 위험 소지가 있는 법안이 제출돼 억울한 '을'의 피해가 늘어날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설훈을 비롯해 인재근, 도종환 등 의원 10명이 발의한 '방과 후 학교 운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다. 지난 4월 발의한 이 법안은 이달 임시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이 법안의 제안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방과 후 학교'의 법적 근거가 미흡하고 교원들의 업무 가중 및 교육의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개선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라 체계적인 운영을 통해 교원 및 학생의 권리를 보호하도록 운영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제정하려는 것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이 법안은 갑질 논란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민간 위탁업체를 양성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이 법안 9조는 '교육감이 방과 후 학교 지원센터를 설립 · 운영하거나 교육관련 법인 또는 단체를 지원센터로 지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힘 없는 강사들의 부담이 가중돼 결국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학생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는 이유다.

'방과 후 학교'에는 축구, 농구 등 스포츠 관련 수업이 적지 않다. 학생들의 체육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방과 후 학교'의 갑질 논란의 배경과 해결책을 살펴본다.

▲2008년부터 민간업체가 '방과 후' 장악

'방과 후 학교'는 초·중·고교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체육과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즐기는 일종의 '과외' 수업이다. 막대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입시 위주의 교육을 탈피하기 위해 정부가 학교 안에서 과외를 인정한 셈이다. 2006년부터 시행돼온 '방과 후 학교'는 학생들이 저렴한 수업료로 교과 이외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호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시행 10년째를 맞으면서 부작용도 발생했다. 특히 '방과 후 학교' 강사 선임에 제 3자, 위탁업체가 끼어들면서 본래의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위 '브로커'가 학교와 강사 중간에서 폭리를 취하며 배를 불리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힘없는 강사들이 '수수료 갑질 행태'에 피해를 보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실력 있는 강사들이 수수료 부담에 '방과 후 학교'를 이탈하면 무자격 강사 등이 빈자리를 메워 수업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당초 '방과 후 학교'는 일선 학교가 강사를 선별하고 계약을 맺는 게 원칙이었다. 그러나 담당 교사의 업무가 늘고, 수업과 강사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을 학교가 져야 하는 부담감 속에 제 3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추진계획'에 따라 민간업체가 강사들과 계약을 맺어 학교에 공급하게 된 것이다.

위탁업체는 학교에서 받는 수강료에서 일정 수수료를 뗀 뒤 강사에게 지급한다. 이 수수료가 30% 이상이 되는 경우가 많아 강사들은 금전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학교와 직접 계약했지만 위탁업체가 기승을 부리면서 업체를 통하지 않고는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할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수수료를 떼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강사 A 씨는 "그동안 '방과 후 학교'를 잘 해오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업체가 학교와 계약을 맺고 들어왔다"면서 "업체가 계약을 맺지 않으면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에는 수업료가 한 달 100만 원이었다면 지금은 7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면서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사들은 수수료 외에 소득세와 학교시설 이용료까지 내야 한다.

▲무자격 강사, 질 낮은 교재 등 부작용

이러니 능력 있는 강사들은 업체가 '입점'한 학교를 떠나게 된다. 업체와 계약하지 않은 학교를 찾는 것이다. 그 빈자리는 업체와 계약을 맺은 다른 강사들이 메우게 되는데 무자격, 심지어 일반 대학생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수업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업체는 수수료에 대해 수업 교재나 재료, 프로그램 연구 등에 투입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교자재가 쓰이지 않는 경우가 적잖다. 강사 B 씨는 "한 위탁업체는 강사에게 자기 회사의 교재, 재료를 쓰지 않으면 나가라고 해서 썼더니 너무 조잡해서 학생들이 수강을 취소했다"면서 "다시 학교와 상의해 기존에 쓰던 교재로 바꿨다"고 털어놨다.

위탁업체들이 수업보다는 계약 유지를 위해 학교나 학부모운영위원회를 더 신경 쓴다는 것이다. 이러니 수업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강사 C 씨는 "위탁업체는 일종의 기업"이라면서 "이윤을 내야 하고 계약을 유지시켜야 하기 때문에 로비가 더 큰 부분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송재형 의원(새누리당)이 교육부에서 입수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2월 기준, 서울시 597개 초등학교 중 65%에 이르는 387개 학교가 '방과 후 학교'를 외부기관에 위탁하여 개설했다. 송재형 의원은 "학교에서는 위탁을 하면 알아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니 편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결과적으로 과도한 수수료가 수업의 질적 하락 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업 관리까지 맡는 위탁업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강사만 파견하는 '송출업체'는 수수료가 더 세진다. 강사 A 씨는 "나는 그나마 낫다. 수수료 40~50%를 떼이는 강사들도 있다"면서 "그래도 업체가 아니면 수업을 할 수가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사회적 기업이 해법? 속내는 다르다

설훈 의원 등 발의자들은 기존에 난립한 위탁업체를 정비하자는 입장이다. 악덕 위탁업체를 양성화하자는 게 아니라 법을 정해 비영리 단체, 사회적 기업 등 '착한 업체'를 인정하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비영리, 사회적 기업도 허울만 좋은 업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잖은 위탁업체의 대표는 전직 교장 출신이 맡고 있다. 교장 출신이다 보니 일선 학교의 교장이나 교감, 담당 교사 등과 친분을 업고 '방과 후 학교' 계약을 따낸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사회적 기업, 비영리 단체로 포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위탁업체들과 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제보가 잇따른다. 강사들은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교육 연수 중 학교장과 교감, 방과 후 학교 담당 부장들에게 사회적 기업 등에 위탁하면 좋다는 소개와 함께 공문이 온다"면서 "이것 역시 학교장 출신 업체 대표의 압력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퇴역한 장성 출신 인사들이 차린 일부 기업들이 군과 결탁해 방산 비리가 발생하는 경우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군피아'처럼 '방과 후 학교'에도 '교피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업체들은 업체들 나름대로 수수료에 이유가 있다고 항변한다. 교재와 출석부 등 '방과 후 학교' 전반에 걸쳐 관리를 하는 만큼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강사들은 "실제로 짜임새 있는 수업 커리큘럼과 양심적인 수수료 등 이상적인 위탁업체도 많다"고 말한다.

여기에 학교와 일선 교사들의 하소연도 일리가 있다. 가뜩이나 과중한 잡무에 시달리는데 '방과 후 학교'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본업인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것도 이유다. 여기에 '방과 후 학교'에서 사고 등 문제가 생길 경우 학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위탁업체를 선호하는 배경이 된다.

하지만 학생들의 질 높은 수업이 보장돼야 하는 게 '방과 후 학교'의 첫 번째 목표다. 교육 당국과 학교의 책임 회피 속에 수업을 담당할 1차 책임자인 강사들은 업체들의 횡포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부 학교는 여기에 위탁업체 대신 학부모가 수업과 강사를 관리하는 '코디 맘' 제도를 도입하기도 한다. 또 아예 갑질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위탁업체 소속 강사를 뽑지 않는 학교도 있다. '방과 후 학교'가 본래의 취지를 살려 학생들의 다양한 수업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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