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영 충남대 교수
오길영 충남대 영문과 교수가 "신경숙 표절 문제에는 창비와 문동(문학동네)라는 한국문학계의 권력집단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공생관계가 깔려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오 교수는 17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신경숙과 문학권력'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현재의 표절논란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된 문장은 명백한 표절이다. 우연에 의해 저런 정도의 유사성을 지닌 문장을 쓸 수 없다는 건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작가와 창비의 대응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렇게 변명한다고 가려질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특히 한국문학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해온 창비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창비가 이번 표절에 대해 내놓은 글을 보면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창비마저도 문학의 시장논리에 굴복하는구나 싶다. 자본주의 현실에서 출판사도 살아남아야 하다는 시장논리를 무시하는게 아니다. 시장논리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문제란 뜻이다."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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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창비와 문동의 편집진, 편집위원들에게도 '작금의 표절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분명히 답하라'고 촉구했다.
오 교수는 "이번에도 양 잡지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들이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문학적 안목과 태도에 대해 어떤 기대도 앞으로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기서 '신중함' 운운 하는 태도는 교묘한 자기변명이기 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일도 유야무야 된다면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한국문학은 그 신뢰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한국문학에 마지막 남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독자로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끝을 맺었다.
오길영 교수의 동의를 얻어 '신경숙과 문학권력'이라는 글 전문을 아래에 싣는다.
▣ 신경숙과 문학권력
신경숙의 표절 문제가 불거졌다. 작가나 출판사에서는 이번에도 대충 수습하려고 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이번에는 대충 뭉개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렇게 된다면 그건 작가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불행이라고 판단한다. 나는 수년전에 베스트셀러 작가인 신경숙을 싸고 도는 출판사의 태도, 그리고 그에 대한 비평계의 무관심과 무능력을 비판한 적이 있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65516 참조)
그 글을 발표하고 나서 '문학권력'으로서 신경숙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나로서는 금시초문이었고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다. 그 얘기를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다.
수년이 지났지만 유감스럽게도 상황은 더 악화된 걸로 보인다. 작가나 비평가들은 문학 '밖'의 정치와 권력에 대해 말한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한다. 한동안 쟁점이 되었던 '문학과 정치'에 관한 논의들이 그렇다. 그러나 문학인들은 문학(혹은 문단) '밖'의 정치와 권력를 말하기전에, 먼저 문학 '안'의 정치와 권력을 말해야 한다. 남 얘기를 하기전에, 자기 안에 작동하는 권력욕을 고발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작가나 비평가라면, 글쓰는 이라면 특히 해야 한다.
현재의 표절논란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 논란이 된 문장은 명백한 표절이다. 우연에 의해 저런 정도의 유사성을 지닌 문장을 쓸 수 없다는 건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와 창비의 대응은 매우 실망스럽다. 그렇게 변명한다고 가려질 일이 아니다.
- 불거진 것은 표절 문제지만 여기에는 창비와 문동이라는 한국문학계의 권력집단과 베스트셀러 작가의 공생관계가 깔려 있다.
- 때로 베스트셀러가 뛰어난 작품인 경우도 있지만, 많이 팔리다는 것(대중성)과 작품의 질(예술성)은 같은 게 아니다. 신경숙을 옹호하는 창비와 문동의 입장은 결국 자신들의 매출을 올려주는 유력한 상품을 무조건적으로 지키려는 안간힘이다.
- 표절여부와 별개로 신경숙의 근작들은 작품의 질적 수준만을 놓고 볼 때 뛰어난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런데 유력한 '문학상품'인 신경숙이라는 상품을 지켜야 하는 출판사들에서 내는 문예지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온당하게 비평하는 글을 찾기 힘들다. 아니라면 알려주시라. [외딴 방] 이후의 신경숙 작품이 과연 어떤 의미에서 좋은 작품인지 설득력있게 설명하는 글을 나는 읽지 못했다.
- 무엇보다 한국문학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해온 창비가 이번 표절에 대해 내놓은 글을 보면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창비마저도 문학의 시장논리에 굴복하는구나 싶다. 자본주의 현실에서 출판사도 살아남아야 하다는 시장논리를 무시하는게 아니다. 시장논리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문제란 뜻이다.
- 내가 아는 어떤 뛰어난 작가도 권력과 체제에 순응한 이는 없다. 더욱이 스스로 '문학권력'이 되어 그걸 누렸던 작가나 비평가는 없다. 작가, 비평가, 글쟁이가 권력의 단맛에 매혹되면 그걸로 끝이다. 나는 작가나 창비나 그들이 지녔던 초심을 망각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본다. 어느 순간부턴가 이들이 문학공간 안의 '상징권력'을 즐기게 되었고, 그에 대한 냉철한 성찰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창비와 문동의 편집진, 편집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작금의 표절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돌려 말하지 말자. 표절인가, 아닌가. 신경숙 작품은 정말로 대중성과 예술성의 행복한 결합을 이룬 드문 사례인가. 이번에도 양 잡지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들이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들의 문학적 안목과 태도에 대해 어떤 기대도 앞으로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기서 '신중함 ' 운운 하는 태도는 교묘한 자기변명이기 쉽다.
- 비평은 곧 비판이며, 그 비판의 대상에서 비평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출판사와 잡지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초래될 고립과 배제가 두렵다면, 비평을 해서는 안된다. 임화가 말했듯이, 원래 비평가는 고독한 법이다.
- 이번 일도 유야무야 된다면 가뜩이나 침체에 빠진 한국문학은 그 신뢰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한국문학에 마지막 남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독자로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