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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져 가는 라디오 스타에 중년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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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치면 '스마트폰'쯤 될까?

1980년대 초중반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세대에게 '라디오'는 지금의 '스마트폰'이다. 당시 라디오는 최신 팝송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플레이어였고 또래들의 고민을 공유하는 '카페'였으며 최신 정보를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포털'이기도 했다. 최신 유행과 엔터테인먼트를 24시간 제한없이(당시 TV는 밤 12시면 끝났다)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었다. 라디오는 당시 청소년들의 24시간과 떨어질 수 없었다. 그 수요에 맞춰 나온 '아이폰'적 제품이 소니의 '워크맨'이었고 그 짝퉁 비스무리한 것이 삼성의 '마이마이'였다.

'행동파'를 강조한 삼성전자의 포터블 오디오 플레이어 '마이마이'와 원조격인 소니사의 '워크맨'(작은 사진)

 

청소년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당시 라디오의 선두에는 팝송 프로그램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트로트가 주도하는 국내 대중가요는 10대들의 충만한 감수성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MBC '2시의 데이트' , 동시간대 경쟁 프로였던 KBS '팝스 다이얼', 밤시간대 조금 묵직한 프로였던 MBC '밤의 디스크쇼', KBS '황인용의 영팝스' 등은 청소년들을 라디오 앞으로 불러모았다. 이들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김기덕,김광한,이종환,황인용은 명DJ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7,80년대 라디오를 주름잡았던 명DJ 김광한,김기덕,이종환(왼쪽부터)

 

시그널 음악이 깔리기 시작하면 선경 스매트 공테이프를 라디오에 장전한 채 녹음 버튼과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다. 좋아하는 팝송이 나올 때면 재빨리 일시정지 버튼을 풀어 녹음을 시작하는 것이 당시 청소년들의 일과였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튠스로 다운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끔가다 DJ의 멘트가 섞이거나 CM이 섞이면 테이프를 되돌려 덮어쓰기를 준비한다. 이렇게 해서60분짜리 공테이프에 채워진 팝송들을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곤했다. 아니면 정성스럽게 꾸며 여자친구에게 수줍게 내밀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는 팝송 순위 차트인 '빌보트 차트'라는 것이 있고 이게 세계 팝시장의 척도이며 미국 주도권에 반발해 유럽 국가들이 '유러비전송 콘테스트'를 해마다 열어 견제하고 있다는 '거시담론'부터 '링 마이 벨'을 부른 애니타 워드가 사실은 수학교사 출신의 재원이고 '퀸'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는 기타를 직접 만들 정도로 재능이 있다는 시시콜콜한 뒷얘기까지 얻을 수 있었다.

'I was made for dancing'이라는 곡으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 아이돌 가수 레이프 개릿의 10대 때 모습(왼쪽)과 2013년 CBS라디오 김광한의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당시 레이프 개릿.

 

원조 꽃미남 아이돌 '리프 가렛'은 사실 미국에서는 '레이프 개릿'으로 발음하며 헐리우드 배우 출신인 '리건'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으로 부르는게 맞다는 정보도 이들 팝송 프로그램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팝송 잡지를 통해서 조금 더 전문적인 팝송 정보를 얻기도 했다. 이런 류의 팝송 잡지가 상당히 많았다. 대부분 영어 가사를 한글로 그대로 옮긴 '명곡'코너도 있었고 맨 뒷페이지에는 '펜팔'란이 자리잡고 있어 청춘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없었으니 신곡이 나오면 PD들이 미국 출장을 가서 음반을 직접 사와야 들을 수 있었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PD출장' 소식을 공지하며 청취자들의 기대감을 높이며 사세을 뽐내기도 했다. 물론 다른 통로를 통해 신곡의 목마름을 부분적으로 채울 수도 있었다. AFKN(당시 서울에서는 TV채널 4번이었다)의 '소울트레인'(SOUL TRAIN)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소울트레인의 진행자 돈 코넬리어스

 

흑인 사회자의 진행으로 끈적거리는 소울음악을 주로 소개하며 이에 맞춰 흑인 방청객들과 무희들이 춤을 추는 이국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낮선 소울음악에 육감적인 춤사위를 부모님이 볼까 맘 졸이며 소울트레인을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인터넷이 없다고 해서 일방통행이었던 것은 아니다. 엽서를 통해 신청곡과 사연을 올리고 자신의 이름이 라디오를 통해 불려지기를 기다리는 그 두근거림은 알만한 사람은 안다. 지금처럼 '1234'님처럼 번호로 불리는 익명이 아니라 '00동에 사시는 000님'으로 불리던 '실명의 시대'였다. MBC의 경우 라디오 프로그램에 들어온 엽서 가운데 예쁜 장식을 한 엽서만을 골라 '예쁜 엽서전'이라는 전시회를 해마다 열었고, 전시회는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4,50대의 청소년 시절을 고스란히 가져갔던 명 DJ 김광한이 9일 세상을 떴다. 이종환은 이미 갔으니 그 시절 DJ는 김기덕, 황인용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소울트레인의 명진행자 돈 코넬리어스도 2012년 사망했다. 중년의 추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DJ들이 스러져 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다.

P.S: 중년의 추억이 아이들에게는 악몽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 동영상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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