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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저작권을 가진 교과서로 집필과 수정·개편을 교육부장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교과서다. 대한민국 정부는 5년을 주기로 교체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한시적으로 책임지는 정부가 정해준 하나의 역사관으로 교과서가 편찬된다면, 학교 현장은 5년 단위로 혼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국정을 주장하는 분들은 여러 종류의 교과서로 배우면 학생들이 혼란스럽다고 하지만, 검정 교과서는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제작되기 때문에 교과서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대신 같은 내용을 다양하게 풀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설명이 많은 책, 이미지가 많은 책, 사료가 풍부한 책, 학생 활동을 풍부하게 담은 책 등이다. 때문에 역사 교사들은 다양한 교과서 중에서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특성과 관심사에 맞는 교과서를 골라 수업할 수 있다.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이 되어 한 권의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실질적인 수능 필수인 국어나 영어, 수학은 한국사 보다 교과서의 종류가 많다. 수능 시험은 모든 교과서에서 공통으로 다루는 내용을 출제하게 되어 있다. 오히려 한 종류의 교과서로 수능을 출제하게 되면 출제자들은 등급을 나누기 위해 지엽적이고 자잘한 내용을 출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수능이 더 어려워 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정제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현재 국정 역사 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북한과 베트남 정도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는 나라는 없다.
국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단'이라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국정화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특수성은 어느 나라나 있게 마련이다. 북한이 3대 세습 체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북한과 극소수 국가에서만 유지하는 국정제를 따라하자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통일 전 독일도 동독은 국정제, 서독은 검정제였는데, 서독이 중심이 되어 독일의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유지하며 포용력을 길렀기 때문이 아닐까.
유신과 함께 1974년에 처음 등장한 국정 교과서가 검정으로 제자리를 잡는데 40년 가까이 걸렸다. 걱정스러운 것은 40년전 국정을 도입할 때의 논리와 현재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국정교과서 도입 논리가 너무나 닮았다는 것이다. 국정에서 검정으로의 전환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같은 길을 걸어온 셈이다. 다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우리가 성취한 다양성을 부정하는 반민주적인 처사이며, 이를 되돌리는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교육부가 심사숙고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