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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류승완도 피할 수 없다…감독 권리 '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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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아니면 도, 대박 아니면 쪽박. 대개 감독과 영화는 운명을 같이 한다. 영화가 대박이면 감독도 명성을 드높이고 영화가 쪽박을 차면 그 다음 작품을 기약하기 어렵다. 영화 한 편에 많은 자본과 이권이 투입되는 만큼, 누구나 공정하게 또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DGK)이 이런 감독들의 제작 및 노동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23일 두 시간 반에 걸친 공청회에서 이들이 발표한 표준연출계약서 그리고 녹록지 않은 영화 제작 환경 현실을 보도한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봉준호 감독, 이준익 감독, 류승완 감독. (사진=자료사진)

 

"사실 저 같은 기성 감독들은 괜찮아요.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 감독들이 이 계약서를 잘 썼으면 하는 바람이죠." (이준익 감독)

영화 '사도'가 200만 관객을 넘긴 날. DGK 대표 이준익 감독은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영화감독 표준연출계약서에 관한 공청회'에서 뜻 깊은 자리를 가졌다. 3년 간 '감독 표준계약서 팀'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 '괴물' 봉준호 감독, '베테랑' 류승완 감독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들도 조합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는 100년 동안 계약서가 있었지만 시장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잔재가 남아있는 계약서가 지금도 쓰이고 있다"면서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 발전의 지속적 미래를 위해 계약서 양식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그 작업을 추진해왔다"고 배경을 밝혔다.

표준연출계약서는 기획단계와 제작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기획단계 계약서는 프로젝트 제작 관련 기획 및 개발 단계에서 감독의 독자적이고 주도적인 지위와 역할을 인정하고 이에 따른 제작사와 감독의 권리 및 의무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제작단계 계약서는 극장용 장편영화의 연출에 관한 제작사와 감독의 권리 그리고 의무 및 제반 사항을 명확히 하고자 함이다.

계약서는 감독과 제작사 중 어느 한 쪽이 갑이나 을이 아닌 '동반자' 관계임을 명시하고 있다. 양측을 동등한 협력 관계로 규정하면서 감독과 제작사 사이에 종종 벌어졌던 불미스러운 갈등 또한 개선될 여지가 있다.

먼저 기획단계 계약서의 '기획원안자'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독과 제작사는 서로 협의해서 기획원안자를 지정할 수 있다. 기획원안자는 시놉시스(원안)를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사전등록한 자로, 시나리오 작가의 권리를 제외하면 이 과정에서 산출된 유·무형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을 가진다. 감독들이 시놉시스 작업에 참여하는 한국 영화의 특성상 기획원안자는 감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완성된 시나리오가 시놉시스와 상이하다고 판단할 경우, 제작사는 감독에게 내용증명 우편을 보내거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제작단계 계약서는 제작 전반부터 연출료 지급까지 실질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이중 1차 편집권과 2차적 저작물 부분이 주목할 만하다.

'일단 1차 편집권을 얻어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는 DGK 부대표 한지승 감독의 말처럼 편집권은 감독의 연출 의도를 지켜내는 중요한 권리다. 계약서는 1차 편집본의 편집권은 감독에게 있다는 조항과 함께, 감독이 편집 과정 전반을 주재하고 감독 관여 없이 편집은 진행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영화는 공동작업의 결과물이다. 때문에 계약서는 감독이 영화에 대한 단독 저작권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감독이 제공한 모든 용역의 결과물에 따른 지적재산권 및 제반 권리의 이용은 현행 저작권법에 따른다.

제작사는 2차적 저작물, 전편이나 속편 제작 등을 하려면 감독과 협의를 거쳐야 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도 보장 받을 수 있다.

이 감독은 "자본의 끊임없는 재생산에 우리 생산자들이 많이 기여했지만 그 기여에 비해 나눔이 부족했다"면서 "생산자가 자본가에게 제품을 납품하는 OEM 방식 제작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영화 감독은 그저 공장장 역할일 뿐이며 영화에 대한 기본적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개선이 필요한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꼬집었다.

류승완 감독은 애매모호한 영화 크레디트 기준과 주인이 사라진 저작권 문제를 짚었다.

그는 "국내 영화에는 크레디트 기준이 없다. 감독이 기준이 되어야 다른 헤드 스태프들이나 아티스트들의 크레디트 명기도 기준이 세워진다. 어떤 영화에는 감독 이름이 두 번 나오고, 배우 뒤에 나오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다르다. 그 기준을 세워야 되지 않나 싶다"고 이야기했다.

류 감독은 저작권을 가진 제작사가 사라져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를 영상자료원에서 꺼내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제작자가 사라져서 제 영화를 꺼내올 수가 없었다. 원안 등 감독에 대한 권리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단순히 수익 문제가 아니라 제가 연출한 창작물을 비영리적 목적으로 상영하고 싶어도 그 권리를 갖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고백했다.

젊은 감독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환경 변화가 곧 생존과 직결되는 이들은, 계약서가 현실에 가져올 파장을 여러 각도로 예측·분석했다.

임필성 감독은 "투자사가 슈퍼 '갑'인 입장에서 투자사와 원활하게 협의해 감독의 권리를 보장하고 개입을 제한해 줄 수 있는 제작사가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라면서 "최근 제 동료나 후배 감독들이 벌이는 분쟁의 핵심은 블라인드 시사의 폐해와 편집권 제한 등이다. 상업적 방향성 때문에 모니터 점수제로 운명이 왔다 갔다 하고, 평점 3.0을 못 넘기면 개봉도 못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베테랑' 같은 엄청난 상업 영화도 필요하지만 독특한 지점에 있는 또 다른 영화들도 필요하다. 그렇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유전자가 없어지고 있다. 다양한 개성이 있기 때문에 큰 영역을 나눠서 논의를 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영화의 다양성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환경에 대해 언급했다.

또 다른 조합원이자 감독은 오히려 이 같은 계약서가 영화산업을 보수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부당대우를 받는 신인 감독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계약서대로라면 투자 받기 전까지는 제작사에서 감독에게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을까. 돈 없으면 구상도, 고민도 하지 말라는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반면 다른 신인 감독은 계약서를 적극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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