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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밉도록 노련한 두산, 진지해서 답답한 넥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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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 감독, 미안해?'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으로 앞서 가고 있는 두산 김태형 감독(왼쪽)과 벼랑에 몰린 넥센 염경엽 감독.(자료사진=두산, 넥센)

 

두산과 넥센은 야구를 잘 하는 팀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두 팀은 리그 정상을 지속적으로 두드려왔다. 지난해까지 번갈아 2년 동안 한국시리즈(KS)에 진출했다. 두산은 최근 10년 동안 7번이나, 넥센은 최근 3년 연속 포스트시즌(PS)에 나섰다.

하지만 두 팀의 잘 하는 야구는 스타일이 다르다. 두산은 가장 잘 알려진 슬로건 '허슬두'로 대표되는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와 끈끈한 팀 워크, 탄탄한 수비, 짜임새 있는 공격 등 팀원 전체가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이에 비해 넥센은 탁월한 기량을 가진 몇몇 스타급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팀을 이끌고, 나머지가 뒤를 받치는 양상이다.

넥센은 우직하고, 선이 굵게 힘으로 밀고 나간다고 할까. 괴력의 박병호를 필두로 유한준, 김민성, 서건창 등 막강 타선에 손승락, 한현희, 조상우 등 강속구 필승조들이 대표적이다. 우월한 초인 집단의 영화 '어벤져스'를 빗댄 '넥벤져스'라는 별칭이 이를 입증한다.

이에 비해 두산은 정면승부는 물론 세밀한 수 싸움에도 능하다. 김현수, 양의지, 민병헌 등 주포들과 오재원, 정수빈, 허경민, 김재호 등 작전에 익숙한 주축들이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최주환, 박건우, 고영민, 오재일, 최재훈 등 야구를 잘 알고 하는 주전급 백업 자원도 풍성하다. 팀 상징인 '화수분 야구'는 물론 최근 스테디 셀러 자동차 모델의 광고 문구인 '슈퍼 노멀(Normal)'이 떠오른다. 초인 부럽지 않은 강한 일반의 팀이다.

▲역시 승부는 경험의 차이?

이들의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정규시즌은 8승8패 호각을 이뤘다. 그러나 가을야구 준플레이오프(PO)에서는 두산이 넥센에 2연승으로 앞서 있다. 넥센은 1패만 하면 PS를 접어야 할 위기에 놓였다. 지난 2013년 준PO 때도 넥센은 2승 3패로 두산에 시리즈를 내줬다.

가을야구에서 보인 두산의 강세와 넥센의 열세, 그 차이는 경험이다. 2013년 준PO 당시 넥센은 창단 첫 PS 진출이었다. 두산은 앞서 언급한 대로 최근 10년 동안 7번, 지난해를 기준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2013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당시 넥센과 두산 감독, 선수들의 모습. 왼쪽부터 두산 유희관, 홍성흔 선수, 김진욱 감독, 넥센 염경엽 감독, 이택근, 박병호.(자료사진=윤성호 기자)

 

넥센도 당시 PS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없진 않았지만 박병호, 강정호(현 피츠버그), 서건창 등 주축들은 처음이었다. 이택근과 유한준 등은 예전 현대 시절 2006년이 마지막 가을야구였다. 결국 넥센은 두산에 먼저 2승을 거두고도 내리 3연패, 리버스 스윕을 당했다. 염경엽 감독과 서건창 등 넥센 선수단은 "처음 PS에 진출한 데 만족하는 마음이 강해서 진 것 같다"고 돌아봤다.

올해 준PO 역시 경험에서 승패가 갈리는 모양새다. 넥센도 2013년 실패를 딛고 지난해 KS까지 진출하는 등 PS 전적이 쌓였지만 아직은 두산의 긴 역사에는 미치지 못한다. 넥센의 경험이 쌓였다고는 하나 두산의 경험은 한층 더 두텁게 축적돼 업그레이드까지 됐다.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실패의 두려움에 대처하는 자세가 다르다. 넥센은 2013년 실패의 원인을 다소 안이했던 마음가짐으로 꼽고 지난해 절치부심, 가을야구에 나섰다. 그러나 넥센이 펼친 절실함의 PS는 선전했으나 최강 삼성의 높은 벽을 넘지는 못했다.

마지막 6차전 뒤 끝내 눈물을 흘린 염 감독과 넥센은 다시 절실함을 키워드로 올해 가을야구에 나섰다. 일단 SK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넘었다. 정규리그 승률 5할4푼5리의 넥센은 8.5경기 차 아래 4할8푼6리의 SK와 대결은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접전 끝에 이겼다.

하지만 넥센의 기세는 두산에는 지금까지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두산 역시 절실하다. "매 경기가 전쟁"이라는 생각은 넥센과 같다. 그러나 그 절실함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여유가 포함돼 있다. 잇딴 가을야구 좌절이 가져다 준 초연함이다. 김현수와 유희관 등 주축들은 "너무 잘 하려고, 절실하게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면서 "실패했던 예전을 생각하지 말고 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경직된 넥센, 웃는 두산' 지난 9일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선전을 다짐하는 넥센 조상우, 서건창, 염경엽 감독과 두산 김태형 감독, 김현수, 유희관(왼쪽부터). 두 팀의 표정이 대조를 이룬다.(자료사진=넥센)

 

반면 넥센은 올해 가을야구가 절박하다. 사실상 우승의 최적기로 봤던 지난 시즌 정상 등극이 무산된 데다 올해 이후 언제 다시 PS에 진출할지 모르는 까닭이다. 지난 시즌 뒤 강정호에 이어 올 시즌 뒤 박병호의 미국 진출이 기정사실화한 데다 유한준, 손승락 등 FA(자유계약선수)들도 많아 내년 이후 넥벤져스의 전력을 기약하지 어렵다. 때문에 넥센은 올해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넥센이 강조한 절실함은 경기에서 조급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감함을 넘어 무리한 주루 플레이나 필승조의 조기 투입 등에서 넥센의 조급증이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절실함의 무게와 부담감에 눌린 선수들도 아직은 제 기량이 나오지 않고 있다.

▲넥센, 1차전만 잡았더라면...

사실 넥센의 절실함은 파죽지세로 승화될 기회가 있었다. 만약 두산과 준PO1차전을 잡았다면 그랬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다 잡았던 1차전을 놓치면서 절실함은 그만 조급함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것은 '하늘의 뜻'이었다. 1차전 9회말 석연찮은 판정이 넥센 연패의 씨앗이었다. 당시 제구가 흔들린 필승 카드 조상우의 4구째가 두산 김재호의 몸쪽으로 갔고, 몸에 맞는 공 판정이 났다. 김재호는 구심에게 사구가 맞는지 확인한 뒤 1루로 향했다. 그러나 중계 화면에서는 공이 몸에 맞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에 더 흔들린 조상우는 볼넷 3개를 잇따라 내주며 3-3 동점 밀어내기 실점했고, 넥센은 연장 10회 끝내기 패배를 안았다.

10일 넥센과 준플레이오프 1차전 끝내기 안타를 때려낸 두산 박건우.(자료사진=두산)

 

2차전에 앞서 염 감독은 "김재호는 잘못한 게 없다"면서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두둔했다. 그러나 "시즌 뒤 선수협회 쪽에 얘기해서 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며 쓰라린 속내를 드러냈다.

1차전의 여파인지 넥센은 2차전에서도 2-3, 1점 차 패배를 안았다. 8회 1사 만루, 동점을 넘어 역전할 수 있는 천금의 기회를 잡았으나 무산됐다. 승부처라는 중압감에 주장 이택근이 타석에서 소극적으로 임하다 유격수 뜬공으로 물러났고, 유한준이 외야 뜬공을 쳤으나 이미 3루 주자가 뛸 수 있는 1사가 아니라 2사였다.

▲'미련한 곰?' 그건 잘못된 상식이다

반면 두산은 준PO를 노련하게 치르고 있다. 1차전 전날 열린 미디어데이 때부터 이미 예고된 부분이었다. 김현수, 유희관 등 두산 선수들은 실패했던 지난 가을야구에 대해 먼저 농담을 하는 등 대수롭지 않게 돌아보며 당면한 준PO에만 집중할 자세를 보였다.

특히 김태형 감독은 초보 사령탑답지 않은 입담으로 선수를 쳤다. SK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3이닝 49구 무실점 역투한 조상우에 대해 "굉장히 좋은 선수고 어린데 저렇게 많이 던져도 되나 걱정이 된다. (염경엽) 감독이 선수의 미래도 생각을 해야 한다"면서 "어리니까 아무 것도 모르고 감독이 시키니까 죽어라고 던지는데 나중에 아마 후회할 거야. 무리하지 말라"며 농담을 던졌다.

능청스러운 우스갯소리였지만 뼈가 있었다. 올해 KBO 리그의 최대 화두였던 혹사 논란을 연상시키며 염 감독의 넥센을 흔들 만한 발언이었다. 당시 염 감독과 조상우는 웃었지만 결과적으로 1차전에서 두산은 조상우 때문에 이겼다.

11일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6회 삼진을 당한 넥센 박병호가 억울함을 큰 소리로 표현하는 모습.(자료사진=넥센)

 

여기에 운까지 두산에 따르고 있다. 두산은 1차전 석연찮은 사구 판정의 수혜를 입었고, 2차전에서도 6회 상대 강타자 박병호가 역시 난해한 볼 판정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에 박병호가 구심에 강하게 불만을 드러내는 등 넥센은 심리적으로 동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 비가 넥센 쪽에 흐름을 가져다 줄 수는 있었다. 넥센이 2-3으로 뒤진 8회 공격 박동원 타석 때 빗방울이 굵어져 33분 동안 경기가 중단됐다. 이런 시간이면 투수의 어깨가 식는 수비 쪽이 불리하기 마련. 과연 잘 던지던 두산 불펜 노경은은 박동원을 볼넷으로 내보냈다. 이후 고종욱의 내야 안타와 서건창의 희생번트로 1사 2, 3루. 분위기는 넥센 쪽으로 흘렀다.

하지만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서건창의 희생번트 때 나온 그라운드 대치 상황이었다. 두산 2루수 오재원이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는 과정에서 타자 주자 서건창과 충돌할 뻔한 게 원인이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부상 경력이 있던 서건창이 불만을 드러냈고, 오재원이 반응하면서 두 팀 선수들이 벤치에서 뛰어나왔다.

큰 갈등 없이 경기가 재개됐지만 빠르게 넥센으로 기울던 흐름이 진정세에 들었다. 결국 두산은 박병호를 거르고, 이택근과 유한준을 뜬공 처리해 1점 차를 지켰다. 결과적으로 두산은 벤치 클리어링으로 정신을 집중할 시간을 벌었고,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이에 대해 오재원은 지난 사례까지 떠올리며 벤치 클리어링 유발자로 지목한 팬들의 비난 속에 '밉상'으로 찍혔지만 어쨌든 두산은 승리를 지켰다.

▲폭발한 넥센과 차분한 두산

'의도된 벤클?' 11일 두산-넥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양 팀 선수들이 8회 그라운드 대치 상황을 벌이는 모습.(자료사진=두산)

 

결국 넥센 염 감독은 폭발했다. 엄동의 고송처럼 절실한 심경과 진지했던 자세가 상대의 노련함과 잇딴 불운에 따른 피해 의식에 마침내 부러져버린 형국이었다.

염 감독은 "깨끗하게 경기하고 싶은데 두산에서 계속 자극을 한다"고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이어 "(서)건창도 그렇고, 조명 점등과 관련해서도 공격인 우리에 우선권이 있는데 심판이 공정하게 하겠다면서 두산의 수비 방해 요청을 들어줬다"고 서운함을 드러냈다. 8회 우천 중단 뒤 속개된 이후 꺼진 라이트를 켜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이에 두산은 차분하게 반응했다. 김 감독은 염 감독의 역정에 "너무 예민해져 있어 서로 조심해야 할 것 같다"면서 "선수들에게도 주의를 주겠다"고 확전을 경계했다. 또 이날 경기 MVP였던 민병헌도 "(자극하는 부분은) 절대 없고 경기하다 보면 작은 오해가 있을 것"이라면서 "악감정은 절대 없고 조그만 신경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진화에 나섰다. 대나무처럼 휘어져 받아넘기는 모양새였다.

넥센은 주력 선수들의 의존도가 높은 팀이다. 때문에 주축들에 대한 집중도와 부담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잘 풀리면 파괴력도 크지만 주력들이 침묵하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두산은 선수들 전원이 고른 기량을 갖춰 그만큼 유연한 기용이 가능하다. 누구 한 명에 집중되지 않아도 여유가 있다.

가을야구 단골팀답게 익숙하고, 또 능수능란하게 준PO를 치르고 있는 두산과 최근 잇딴 PS 좌절에 대한 설욕과 절실함을 곱씹으며 나선 넥센. 과연 두 팀의 시리즈 승자는 누가 될까. 염 감독도 "2년 전 리버스 스윕을 갚아주고 싶다"고 이를 앙다물면서도 2차전에 앞서 "하늘의 뜻이 그러면 어쩔 수 없다"면서 초연의 자세로 차츰 변화될 조짐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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