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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경찰수뇌부의 강경대응이 독자적 판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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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정권 코드맞추기 행보…국민들은 '공권력 피로감'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경찰청장 (사진=자료사진)

 

일요일이었던 지난 15일 오후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통상 검찰이나 경찰을 출입하는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는 권력기관 장(長)의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부당한 공권력 행사나 내부 직원들의 각종 비위 등 기자들이 송곳같이 쏟아내는 질문에 당황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겉으로는 아닌채 해도 속으로는 기자간담회를 반기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달랐다. 구은수 서울청장은 당일 오후 3시에 기자들을 직접 불러모아 전날 있었던 '민중총궐기'에 대해 설명하겠다고 했다. 일부 시위대가 서울 광화문광장 부근에서 경찰들에게 위해를 가한 것에 대해 엄단 기조를 밝히고 경찰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는 농민 백남기(68)씨에게 유감을 표명하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나왔다.

전날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가장 큰 대규모 집회였다는 '민중총궐기'대회를 하루종일 취재했던 기자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요일 오후 기자실로 모였다. 그런데 갑자기 기자간담회를 조금 늦추자는 요구가 나왔다. 명확한 설명은 없었다.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뒤인 오후 4시에 김현웅 법무부장관의 담화발표와 시간을 맞추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우려는 적중했다. 구은수 서울청장은 "농민이 다친 것은 안타깝지만 경찰의 물리력 행사는 정당했다"는 취지의 답을 준비했다. 또 "살수차 운용지침이 있다. (백씨를 위중하게 한) 살수차 사용은 규정에 위반되지는 않았다"며 과잉진압 논란을 피해갔다. 대신 "경찰 입장은 민중총궐기가 불법 폭력집회였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전원 책임을 묻겠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이례적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했다 간담회 시간을 갑자기 늦춘 구 청장이 기자들을 만나자마자 건넨 첫마디는 이랬다. "자료 검토하면서 결정할 부분도 있고 해서 늦어졌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간담회를 자청해놓고 갑자기 시간까지 늦추며 뒤늦게 검토하고 결정해야 할 사안은 무엇이었을까?

14일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서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전남 보성군 농민회 백남기(69) 씨에게 경찰이 멈추지 않고 물대포를 쐈다. (사진=윤성호 기자)

 

김현웅 법무장관이 오후 4시 발표한 담화를 보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김 장관은 "서울 도심에서 과격 폭력시위가 또다시 발생",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화", "공권력에 대한 중대 도전", "폭력행위자 끝까지 추적해 엄벌" 등의 강경 발언을 토해냈다. 경찰 물대포에 칠순 노인이 쓰러졌고 그 위로 20초 동안 물세례가 계속된 사실과 집회 참가자 수백명이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맞아 치료를 받는 등 과잉진압 논란에 대한 언급은 쏙 뺐다.

이런 내용의 담화문은 한 시간 일찍 법무부 출입기자들에게 전달됐고 경찰들도 받아봤을 터.

결국 불법 집회 강경 대응이라는 정부의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농민에 대한 염려 등 법무부와 다른 엇박자를 행보가 나올까 우려해 기자간담회를 연기해가면서까지 자료를 검토하고 발언의 수위를 결정한 셈이다.

경찰 안팎에서는 청와대에서 강경 드라이브를 걸었고 뒤늦게 검찰과 경찰이 행보를 맞추려 했다는 뒷얘기도 나왔다.

구은수 청장의 강경 기조는 16일 기자간담회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인 2800rpm의 세기로 20m쯤 떨어져있던 백남기씨를 물대포로 조준사격했음에도 '살수차 운용지침'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시위대가 20m 거리에 있을 때는 2000rpm 이내로 살수'하라는 운용지침은 "예시나 권고사항일 뿐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라고 빠져나갔다. 또 "백씨를 겨냥해 쏜 게 아니라 불법행동을 하는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쏘다가 불상사가 생겼다", "살수차는 외부 카메라 화면을 보고 운용하기 때문에 사람이 쓰러진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장비를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책임을 장비 탓으로 떠넘기기도 했다.

불법 폭력 시위로 의사를 전달하려는 시대는 종식됐다.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내린 '차벽'을 경찰이 자의적으로 '위험이 급박한 상황'으로 해석해 집회장 원천봉쇄에 나서도, 공권력을 상대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는 행위는 여론의 힘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폭력 시위에 가담한 집회 참가자들이 사법처리를 받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경찰의 과잉진압이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얻으려면 중태에 빠진 농민 백씨에게 따뜻하고 진솔한 사과를 해야한다. 다친 집회참가자를 옮기는 구급차에 물대포 세례를 퍼부은 것에 대해서도 깨끗하게 사과해야한다.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다", "장비를 개선해야 한다" "불법 폭력 시위를 엄단하겠다"는 등의 책임 떠넘기기와 정권 코드맞추기 행보에서 국민들은 공권력에 피로감을 느낄 뿐이다.

"농민 부상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안타깝지만 그것이 불법 폭력시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 강신명 경찰청장이 16일 전국 경찰지휘부 화상회의에서 밝힌 당부의 말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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