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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심판관·장사꾼이 아니다…'세월호'에 응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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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기억법 <상>] 정신분석학자 맹정현 교수 "치유의 출발점은 애도"

304명의 소중한 삶이 속절없이 스러져갔습니다. 거대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무엇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른 뒤에야 '우리는 누구인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한 답으로 다가올 한국 사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서 있을까요. 그 길 위에서 '세월호'를 기록하고 기억하려는 간절한 목소리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정신분석학자 맹정현 교수 "치유의 출발점은 애도"
<하> '나쁜 나라' 김진열 감독 "청년세대 공감에 큰 희망"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교동 홍대입구역 앞에서 한 시민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얼굴이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정신분석학자인 맹정현(45) 한국프로이트라깡칼리지 상임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려는 국가에 대해 "주판알을 튕길 일이 아니다. 국가는 심판관, 장사꾼이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응답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말 정신분석학으로 세월호의 아픔을 풀어낸 책 '트라우마 이후의 삶'을 펴낸 맹 교수는 "세월호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벽으로 인해 우리는 삶의 수많은 가능성을 잃어 버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트라우마의 가장 부정적인 영향은 인간을 고립시킨다는 데 있어요.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면서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두는 것이죠. 트라우마로 인한 비참함은 무력한 상태에서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도 응답하지 않을 때 엄습합니다."

최근 서울 신사동에 있는 정신분석클리닉 혜윰에서 만난 그가 내놓은 치유책은 '국가의 응답'이었다. 치유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애도'의 절실함 또한 강조했다. "함께 있다는 느낌, 연결돼 있다는 예감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애도의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감추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외면해서는 안 돼요. 상실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는 있지만, 상실에 따른 감정적인 비용은 어디에서든 치르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 정신분석학을 알기 쉽게 설명해 달라.

=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1900년 '꿈의 해석'을 내놓으면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았고, 다양한 치료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심리 치료·상담의 대부분은 정신분석학 이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 이전에는 마음의 병조차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의 문제로 봤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사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만으로도 마음의 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셈이다.

정신분석학은 우리가 아는 심리 치료·상담보다 멀리 나간다. 심리치료는 현재의 문제로 시작해 의식적인 측면에서 해답을 찾는 반면, 정신분석학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심층적이다. 인간의 정신 속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름의 고유한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삶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 무의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무의식의 중요한 지점은 행복한 순간, 긍정적인 순간에 있지 않다. 우리 삶을 결정짓는 순간순간은 실패에 기반하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행복을 맛본 뒤 삶이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 실패가 삶을 결정짓는 원인인 셈이다. 행복의 순간은 되새김질하기 쉽지만, 불행의 순간은 외면하려 하지 않나.

그렇게 외면하고 생각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 삶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불행의 순간을 외면한다고 해서 그 불행이 잊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안에 남아 쌓여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현재의 우리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프로이트가 발견한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런 무의식적인 부분을 청소해 줄 필요가 있다.

맹정현 한국프로이트라깡칼리지 상임교수. 그는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려는 국가에 대해 "주판알을 튕길 일이 아니다. 국가는 심판관, 장사꾼이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응답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진=이진욱 기자/노컷뉴스)

 

▶ 프로이트는 성(性)적인 에너지를 삶의 동력으로 지목한 것으로 안다.

= 프로이트는 성이라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학문에 귀속시켰다.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성적인 관점과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가 왜 그토록 성을 중요시 여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는 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성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기에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임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점에 성의 핵심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삶을 가장 많이 변화시킬 수 있는 지점은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적인 쾌락이다. 프로이트는 쾌락이 우리 정신을 분열시킨다고 봤다. 우리가 쾌락을 추구하지만, 쾌락은 부끄러움, 수치심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많이 바뀌는 지점 중 하나가 사춘기다. 성장 과정에서 성적인 경험을 하면 그것이 단순한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나 타자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변화의 순간을 가져온다. 우리는 그러한 성적인 쾌락의 중요성을 간과하면서 살고 있다.

▶ 책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풀어내고자 마음 먹은 이유는.

= 처음에는 책이 아니라 강의로 준비했다. 참사가 터진 뒤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신문, 인터넷 등 무엇을 보건 온통 참사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어찌 보면 너무도 일관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라는 문제가 제기됐는데, 사건에 접근하는 방식이 획일적으로 다가왔다. 하나의 사건이 터졌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상처를 받았을 텐데…. 우리 모두가 상처를 받았고 그에 대한 해명이 필요했음에도, 대다수 이야기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 원인의 책임을 누구에게 할당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한 획인화된 관점 너머로 이 사건을 이야기해 보자는 고민이 강의로 이어졌고, 책으로 나오게 됐다. 세월호 참사를 보는 관점은 사회학, 철학 등 학문마다 다양한 관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고 봤다. 정신분석학자로서 문제의 핵심이 트라우마로 여겨졌다. 우리가 참사를 통해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면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지점에 무의식이 있었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저도, 제 동료들도, 수업을 듣던 학생들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상황, 모두가 무력했던 것이다. 트라우마가 정확히 그렇다. 꼼짝없이 어떠한 감정 속에 갇혀 버리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애도의 과정을 잃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신분적학을 도구로 그러한 분석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트라우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 트라우마가 개인적이냐, 사회적이냐라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모든 트라우마는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다. 트라우마는 우리의 신념, 관념, 생각, 언어가 깨지는 순간 경험하게 되는 충격이다. 우리의 모든 관념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타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로부터 빌려와 내것으로 만든 것'이다. 단적인 예로 언어를 보라. 결국 모든 관념은 타자의 관념, 곧 사회적인 관념이다. 그러한 믿음 덕에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생존하는 것이라면, 트라우마는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엄습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일차적으로 가족이라는 관념과 연결된다. 아이들이 위급한 상황에 놓이면 "엄마" "아빠"를 찾지 않나. 부모는 아이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그렇게 가족, 학교, 국가라는 관념이 우리를 지키는 타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인 가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교사와 학생, 국가와 국민이라는 관계가 현대 사회의 가치로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개인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가치인 것이다.

결국 트라우마는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 인류의 문명이 작동하지 않는 지점에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사회가 작동하지 않았기에 누구도 응답할 수 없었다. 나를 구원해 줄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 시점, 이런 안전장치로서 타자가 작동하지 않는 데 트라우마의 원인이 있다.

단원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린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 트라우마를 설명하는 두 축으로 '주체성'과 언어를 꼽았는데.

= 주체성과 언어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 어떻게 구축되느냐와 연관이 있다. 먼저 주체성은 '우리가 누구냐'라는 문제다. 트라우마가 발생되는 지점에서 '트라우마가 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미 설명했듯이 트라우마는 우리가 가진 근원적인 믿음, 환상, 혹은 안전장치가 파열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결국 우리의 주체성은 '관념의 복합체'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언어는 현실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 되느냐의 문제다.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실, 그러니까 현실의 맨얼굴은 언어를 통해 순화된다. 그렇게 사회 속에서 구성된 언어를 통해 나의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정체성은 내가 어떤 언어로 생각하고 소통하는지와 무관하지 않다. 이 점에서 현실은 결국 주체성과 언어 없이는 사유될 수 없다.

▶ 세월호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 우리는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경험하면 가장 먼저 수동적인 상황, 꼼짝없이 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것이 트라우마의 핵심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었다면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수동적인 상황을 점차 벗어나면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진실이 뭐냐'는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치유를 위한 자구책은 결국 '누가 책임을 져야 하나'라는 것이었다. 사실로서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에 대한 원인은 규명할 수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세월호 참사가 왜 트라우마가 됐냐'는 문제는 침몰의 원인과는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침몰 원인이 아무리 명백하더라도 트라우마의 원인은 불투명하게 남을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진실규명에 대한 요구는 결국 윤리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고, 이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배 안에 있던 희생자들과 가라앉는 배를 지켜봐야만 했던 사람들의 관계는 인간의 인식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과 교사는 그들이 쌓아 온 삶의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말로 형언할 수 없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규명' 요구를 윤리적인 문제와 연결짓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 의식적인 차원의 상처보다 심층적인 수준에서 트라우마는 작동한다. 진실규명은 사실 관계를 따지는 것이다. 배가 전복 돼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있다. 문제는 규명될 수 있는 사실 수준에서는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소중한 삶이 있었고, 그 삶들이 한순간에 스러져갔다. 그 삶과 연결돼 있던 또 다른 삶들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 결국 그 어떤 지식이나 수단을 통해 이 문제를 해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면 '국가가 왜 필요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해야만 한다.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트라우마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국가가 작동하지 않는 지점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는 개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해 달라는 사회적인 요청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국가는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가 무조건 세월호 참사를 책임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는 정치보다는 윤리 시스템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본다. 개개인의 상처, 그러니까 트라우마로 만들어진 구멍을 얼마나 잘 매우느냐에 국가의 존재 이유가 있는 셈이다. 우리가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사실 관계만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그 이상, 개개인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국가는 지금까지도 이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단원고 졸업식이 열린 지난 12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명예 3학년 교실을 찾아 희생자들의 자리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노컷뉴스)

 

▶ 응답하지 않는 국가 탓에 한국 사회는 더욱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있는 모습이다.

= 트라우마는 우리 삶에 벽을 만들어낸다는 데 큰 폐해가 있다. 불행한 경험이 믿음을 깨뜨리면서 삶의 가능성을 좁히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우리는 상처를 경험하면서 그 폭을 조금씩 줄여가게 된다. 그렇게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소위 국가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기업이 잘 되고, 장사가 잘 돼야 한다고 말들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잘 돼야 하지 않나. 그러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교육 등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라는 트라우마를 경험하면서 삶의 수많은 가능성을 잃어 버렸다. 그것은 굉장히 큰 낭비다. 결국 지금의 형국은 국민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국가가 좁혀가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은 욕망해야 능력을 발휘한다. 그런데 국가가 나서서 마음의 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가의 응답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 국가는 어떠한 응답을 내놔야 할까.

= 윤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해 관계를 염두에 두고 주판알을 튕길 일이 아니다. 국가는 심판관, 장사꾼이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필요성을 국민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응답이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왜 국가가 책임지냐"고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개인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장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가를 인격체로 보는 것은 신경증적인 환상이다. 이는 '나'를 억압하는 잔혹한 타자를 상정하는 과정에서 국가를 잔혹한 타자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 트라우마 이후의 삶이 '비참함'으로 귀결 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 트라우마의 가장 부정적인 영향은 인간을 고립시킨다는 데 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끼면서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두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받으면 집단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 안에서 개인간 틈이 조금만 벌어져도 혼자 고립되기 마련이다. 비참함은 스스로 무력한 상태에서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누구도 응답하지 않을 때 찾아든다.

결국 스스로를 진창 속에 빠뜨리면서 끊임없이 고통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반복강박을 겪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지만, 더욱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다는 데 트라우마의 비참함이 있다. 그 비참함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타자의 응답이다. 함께 있다는 느낌, 연결돼 있다는 예감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발점이다.

▶ 무엇보다 '애도'를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왜 세월호 참사를 애도해야 하나.

= 애도는 상실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다. 우리는 상실의 경험을 통해 상처를 얻는다. 하지만 슬퍼하는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추억하면서 그것을 서서히 떠나보내고 있다. 장례식 역시 애도의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월호 참사를 남의 얘기처럼 말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그것은 결국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응답을 해야 하고, 국민적인 차원에서 성숙된 의식을 가져야 한다.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이 참사를 애도해야 한다는 공감대로 이어질 것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해 4월 1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 뒤로 해가 저물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애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오랜 기간에 걸쳐 공감대를 쌓고 재난 대책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서구와 달리, 우리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트라우마가 발생하는 지점은 개개인의 삶의 수준이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 등 개개인의 삶을 모두 포괄해 줄 수 있는 보편적인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국가의 응답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국가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공간으로서 작동해야 한다.

▶ 참사에 대한 애도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지.

= 애도의 과정에서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감추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상실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는 있지만, 상실에 따른 감정적인 비용은 어디서든 치르고 있기 마련이다. 애도는 결국 스스로를 대상이 아닌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행위다.

▶ 세월호 생존자, 유가족, 잠수부 등에 대한 치유책 역시 부재한 실정인데.

= 어떻게든 제도 안에서 현실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수준에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심리치료를 개인의 몫으로 돌릴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심리치료사를 발굴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치유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대 사회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치유책 역시 개별화, 세분화된 제도를 통해 마련돼야 할 것이다.

▶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정신분석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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