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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정우성에게 왜 아직도 '멜로'가 유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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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잘 짜여진 판 기다리지 말고, 선배가 솔선수범해야"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정우성이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40대에 접어 들면서 더욱 깊어진 분위기와 함께.

대세를 이루는 대작 액션 영화에 몰두할 법도 한데 그는 이번에 '멜로'를 선택했다. 김하늘과 함께 한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는 제작자로도 함께 해 그에게는 더욱 의미있는 영화다.

소위 '스타'로 불리는 충무로 남자 배우들 중, 정우성은 '멜로'를 저버리지 않은 몇 안 되는 배우다. 여전히 정우성을 떠올리면 '멜로'가 자연스럽게 연상될 정도로 그는 꾸준히 인간의 사랑을 그려왔다.

40대의 정우성에게는 더 이상 그를 스타덤에 올려 놓았던 영화 '비트'의 '이민'은 없었지만 사람을 꿰뚫어보는 정직한 눈빛만은 여전했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부단히 깎아내 온 탓일까. 변함없이 잘생긴 얼굴 속에는 곧은 신념이 감춰져 있었다. 고뇌하던 청춘 '이민'이 만약 끝내 살아 남았다면 분명 그와 닮아 있었을 것이다.

나이에 맞는 몫을 다하기 위해 다른 길에 도전하는 배우, 정우성과의 일문일답.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주연배우 정우성.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나를 잊지 말아요'에 제작자로 참여해서 더욱 느낌이 남달랐을 것 같다.

- 제작자보다는 선배로서 영화 하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기대를 했었다. 선배가 어느 정도 잘 이끌어서 영화가 완성이 됐다는 만족감을 주고 싶었는데 성공한 것 같다. 저는 많이 힘들지 않았던 거 같다. 현장에서는 감독님과 김하늘 씨가 잘 소통을 하고 있나 보면서 약간 티나지 않게 눈치를 본 정도? (김)하늘 씨 필모그래피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큰 흥행은 아니더라도 손해는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데뷔 후 처음 맞추는 김하늘과의 멜로 호흡은 어땠나?

- (김)하늘 씨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도 많이 해서 그런지 표현의 폭이 굉장히 넓더라. 리액션 역시 정형화되어 있지 않았다. 진영이라는 캐릭터가 무거운 아픔을 직시하고 있어, 수위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걸 가볍게 해줬다.

▶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대사만큼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어색하지는 않았는지?

- 목소리를 좋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제가 맡은 석원 캐릭터는 기억을 도려내면서 그 기억 속에 있던 사람과 소통이 단절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내레이션이 가장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할 필요도 없고, 적당하면서도 함축된 말을 많이 찾았다. 후반 작업에서도 단어를 수정해가면서 다시 녹음을 하기도 했고.

▶ 사실 남녀 간의 사랑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 점도 그렇고, 국내에서 접하기 쉬운 타입의 멜로 영화는 아니다.

- 감독님이 신인이기도 하고, 관객들에게 안정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해 온 기성 영화인들에게는 모험이 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살짝 일본 텍스트와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저는 그런 새로운 점을 살려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의 개성이자 단점일 수도 있다. 기승전결에 맞춰서 설명하지 않은 것을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뭐라고 항변할 수 없기도 하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함께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데 설정을 갖고 우리끼리 노는 건 안되지 않나. 그래서 그런 부분을 많이 걷어내려고 했다.

▶ 스포일러를 최대한 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하자면 결국 이 영화는 반전을 거치면서 그 성격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키를 쥐고 있는 이가 바로 진영이다.

-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진영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진영은 후회를 후회로 끝내지 않고 다시 한 번 극복해내려는 용기를 가진다. 석원과 진영은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는 다른 두 가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의 강인한 모습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대변하는 것이 진영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만약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그리려고 했다면 '내 머릿속의 지우개'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사랑의 변화와 그 과정 속에서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사랑에 대한 무게와 책임 의식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담겨 있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주연배우 정우성.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원래 현장에서는 개그도 많이 하고, 굉장히 웃음을 주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라던데.

- 유머러스한 스타일인 것은 맞다. 작업은 진지하게 하되, 현장에서 웃음을 나누는 것이 좋다. 가끔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는데 제가 세뇌 시켜서 그거에 중독되면 그런 개그를 바라게 된다. (웃음) 아무래도 선배이기 때문에 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도 신경을 써야 하고, 때로는 진지함을 강요할 필요도 있고, 화기애애하게 만들 필요도 있고.

▶ 석원은 아픈 사랑에 대한 기억을 지우게 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납득을 했나?

- 원래 사람 기억이 스스로 편의에 의해 편집 되는데 사랑에 대한 기억들이 특히 그렇다. 똑같은 시간을 보내도 각자 다른 기억으로 남을 때도 있고, 어떤 사랑은 아팠기 때문에 지워야 할 기억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 진심이라 아팠을 뿐이지 지워야 할 기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꾸 외면하려고 하지만 아팠기 때문에 더 성숙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진영은 그것을 감내하고 이겨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석원을 안아줄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억을 바르게 가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 기억을 잃고 다시 한 번 똑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 가능할까?

- 강한 사랑의 기억이 남아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기억을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도 없고, 잠재의식 속에서 어떤 기억은 아프지만 다른 잔상들은 소중한 것이다.

▶ 영화를 보면 석원이 '지나간 시간보다는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과거를 계속해서 곱씹거나 미련을 두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다.

- 반성은 중요하지만 그것에 연연하거나 미련에 얽매이면 안된다. 결국 지나간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나 역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다. 상황을 돌아보고 감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에 연연해서 현재와 미래의 시간조차 온전히 보내지 못하는 건 얽매인 것 뿐이다.

▶ 필모그래피를 보면 남자 배우들뿐 아니라 많은 여자 배우들과 함께했다. 멜로가 고프다는 남자 배우들이 많은데 40대가 된 지금까지도 '멜로'라는 장르가 여전히 어울리는 비결이 있다면?

- 주변에서 많이 부러워한다. (웃음) 고프면 스스로 찾아서 시도하고 노력하면 된다. 아주 잘 짜여진 판을 기다리다 보면 계속 부럽고, 고플 것이다. 자기 것을 함께 나누면서 만들어가는, 공동 작업자 입장으로 접근하고 시도하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작품들도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선배들이 솔선수범해서 해야 하는 역할인 거다. 유능하고 인정받는 감독들과만 하려고 하면 어떻게 다양성을 찾느냐.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현방식이나 개성들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주연배우 정우성.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배우 정우성으로도 활동하지만 감독 정우성으로도 작품을 만들었다.

- 저를 보고 한결같이 어떤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스스로는 위태로운 순간도 있었다. 배우인 저를 더 어필해야 하는 시기도 있었고, 본분이 배우이니까 배우의 자리에 더 충실하려는 욕심이 컸던 시간도 있었다. 감독은 제 꿈이고, 영화와 관련된 또 다른 작업의 연장선이다. 그렇지만 배우 정우성에게는 절실한 건 아니다.

▶ 감독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 사랑이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써놓은 것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폭이 넓어졌다. 한 가정의 어른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싶다. 대한민국 사회에 어른이 없는데, 어른이 부재한 사회를 보면서 영화 안에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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