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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영화 '귀향' 만든 이유? 소녀들 위한 진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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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조정래 감독 "日 할머니 소감, 아베가 봐야 하는 영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 의 조정래 감독이 18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무려 14년의 기다림이었다. 저 먼 타향 땅에서 돌아오지 못한 '위안부' 피해 소녀들이 영화로나마 조국으로 '귀향'하기까지. 메가폰을 잡은 조정래 감독은 끝내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영화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조정래 감독은 부쩍 피곤한 모습이었다. 일본에서 열린 후원시사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눈을 못 붙였단다.

"재일교포 후원자 분들을 따라온 일본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위안부'가 강제적이지 않고, 증거가 없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있던 관객들도 그랬습니다. 이 영화를 일본 국민들이 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한 일본 할머니께서는 소녀상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꼭 일본에서 이 영화가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이 영화를 봐야 된다고도 하셨죠."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나서 꼭 14년이 흘러 영화가 완성됐다. 실제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드느냐'고 질문 받는 것은 기본, 간신히 들어 오기로 한 투자가 무산된 적도 있었다. 그 때 함께해왔던 이들이 조 감독 곁을 떠났고, 조 감독도 많이 울었다고. 흥행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이 정도면 제작을 포기했을 법도 한데 어떻게 기다림을 감내했던 것일까.

"영화로나마 돌아오시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고향으로 모셔오고 싶었어요. 제사상 위의 따뜻한 밥 한 술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실 제게는 14년이라는 시간이 '길다'는 개념이 없어요. 할머니들은 70년 넘게 이 문제를 외치고, 고통받고 계신데 감히 그 분들 앞에서 그럴 수가 없죠."

그에게 '귀향'은 '기적'이다. 영화를 준비하는 하루 하루가 그랬다. '이 영화를 꼭 찍어야겠다'는 배우들이 오디션에 나타나 재능 기부를 하는가 하면, '크라우드 펀딩'을 하자마자 세 시간 만에 1천만 원이 모였다. 배우 섭외와 투자가 매번 거절당하던 시절에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예산이 없어 먼저 찍었던 티저가 뜨거운 반향을 몰고 왔고,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한 달 동안 2억이 넘는 제작비가 모였어요. 재능기부를 한 배우들은 연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스태프 숫자가 모자라서 자기 촬영분이 끝나면 청소부터 허드렛일까지 마다하지 않았어요. 막내 스태프로 일한 셈이죠. 손숙 선생님은 정말 단돈 1만 원도 받지 않고 출연하셨습니다. 너무나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고 느꼈습니다. 소녀들의 영령들이 이 영화를 만들고 있구나, 정말 고향으로 돌아오시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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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감독은 '귀향'이 자신의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7만5천 명의 후원자들, 재능 기부한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만든 영화라는 이야기다. 돌이켜보면 투자사들이 '대중적이지 않다', '누가 그런 아픈 영화를 보겠느냐'며 퇴짜를 놓았던 것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결국 투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동참한 기적적인 영화가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진정성에 공감한 분들이 7만5천 명이나 되었고, 그 분들과 온 힘을 다해 함께 만들어 간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모두가 주인이고 감독인, 그런 의미가 생기게 된거죠. 저뿐만이 아니라 뮤지컬, 연극, 드라마 등 많은 감독님들과 연출가님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만드셨으면 해요. 그래서 이 문제가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고, 현재진행형임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봉사활동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고, 그 인연이 영화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절판되어 구하기도 힘든 증언집을 통해 조정래 감독은 평균 나이 16세에 불과한 소녀들이 겪었던 끔찍한 참상을 접했다. 가슴이 들끓고 동시에 미어졌다.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그는 '귀향'을 만들면서 자신이 남성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와 죄의식을 경험했다.

"남자인 제가 어떻게 하면 이해하고,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때마다 많은 스태프들과 제 아내가 도움을 줬습니다. 한 여성 관객분이 제게 여성 감독처럼 느껴질만큼, 영화가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고, 고통과 아픔을 전하면서도 조심하려고 하는 모습이 고마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은 14년 전보다 도리어 후퇴를 반복하고 있다. 왜곡된 역사 미화 교육이 벌어지고, 아베 신조 총리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우경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양국 정부 간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합의문이 채택됐지만, 일본은 이후에도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정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를 보면 우리 영화에 대해 '아베 총리의 우경화 행보가 이 영화 제작에 가속도를 붙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럽고 안타깝죠. '위안부'는 명백한 전쟁 범죄고, 성노예를 국가에서 제도화시킨 끔찍한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뻔뻔하게도 자신들이 했던 전쟁에 '잘못이 없었다'고 미화하고 있는 거죠. 일본은 아시아 각국의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또 히로시마 원폭 등 자국민들을 전쟁의 구렁텅이에 몰아 넣은 것도 사과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선진국의 일원으로 나아가려면 역사 문제를 제대로 반성하고 확립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일본에서도 꼭 개봉됐으면 좋겠어요. 한 관객이라도 '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문제를 알게 된다면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일본 정부의 잘못은 잘못일 뿐, 그렇다고 해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영화는 아니다. 실제로 영화에는 살육을 괴로워하며 '위안부' 피해 여성과 인간 대 인간으로 교감하는 일본 군인도 등장한다.

"'일본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일본인들의 성품 자체가 극악무도하다'는 말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다만 전쟁이라는 폭력적 상황에 처하게 됐을 때 인간이 얼마나 극단적인 선택과 극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죠. 실제로 그런 일본 군인들이 할머니들의 증언집에 나옵니다. 어린 군인이 와서 이야기 좀 하자면서 본인이 있는 시간 동안 울다 간 이야기도 있고 그래요. 짐승 같은 잔혹 무도한 일본군이 있는가 하면, 영혼이 파괴된 듯한 일본 군인을 보면서 '불쌍하다'고 하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전까지, 소녀들은 가슴 속에 상처를 묻고 할머니가 되었다. 성범죄에 노출된 피해자가 배려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위안부'는 알려야 할 피해 사실이 아니라 평생 숨겨야 할 '수치'로 여겨졌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차피 전쟁이 나면 여성이나 어린 아이들은 그렇게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런 한국 사람들도 있었어요. 굉장히 폭력적인 이야기지만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더라고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두고 자발적 매춘부니,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 분들에게 티켓을 사드리고 이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 번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귀향' 스틸컷(사진=와우픽쳐스 제공)

 

개인적으로 기자는 '귀향'을 보면서 계속 두통이 왔다. 눈물이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른대는 소녀들의 얼굴과 함께 머리로 피가 쏠렸다. 우리가 말로 아는 '위안부'와 직접 보는 '위안부'는 달랐다. 어쩌면 그 참상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조 감독에 따르면 영화는 증언집에 나온 이야기들의 강도에 비해 100분의 1 정도도 되지 않는다. 소녀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겪어왔다. 그래서 할머니가 된 이들에게 일본에 대한 분노만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할머니들이 '위안부'로 끌려 갔을 때는 다들 평균 16세 밖에 되지 않는 나이였기 때문에 성행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성징에 대한 변화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시 16세는 지금으로치면 10대 초반과 비슷한 수준이죠. 해방선을 타고 귀국한 소녀들 중에서는 부산항을 보고 '고향땅에 다왔다'고 눈물 지으면서 자살한 분들도 계세요. 지금 살아계신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너무 미안하다'고. 살아남은 자가 가지는 죄의식인거죠. 본인들이 피해자이고 너무도 괴로운 고통을 겪었는데도 실제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지배하는 정서는 분노나 고통이 아니라 미안함입니다."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는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서였다. 아직도 조정래 감독의 눈에는 일본군 칼에 베인 상처를 보여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또 다른 할머니는 직접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조 감독을 격려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 7일. 그 날이 할머니들께 영화를 보여 드리는 날이었는데 가장 중요하고 긴장되는 날이었어요. 이 영화를 할머니들께 보여드린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끝까지 보시고 많이 우시더라고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랬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시고요. 극장에도 와서 봐주셨어요. 극장은 조명도 어둡고, 스크린도 크고, 사운드도 더 사실적이죠. 그런 곳으로 '귀향'을 보시러 온다는 게 참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괴로웠습니다. 영화가 다 끝난 후에 할머니가 제 손을 붙잡고 '내가 더 고맙다. 정말 수고했다'고 하셨습니다."

조정래 감독(사진=황진환 기자/노컷뉴스)

 

제 아무리 좋은 영화도 관객들이 많이 보지 않으면 그 의미가 널리 알려지지 못하고 만다. '귀향'의 상영관은 18일 기준 51개가 확보됐다. 대형 상업영화들에 비하면 많은 스크린수는 아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고 있어, 아직 상영관 추이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조정래 감독은 '귀향'을 배급하겠다고 선뜻 나선 배급사와 잠재적 관객들에게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

"아무도 손 내밀지 않았을 때, 한 배급사가 저희 배급을 맡아 주셨어요. 지금도 밤에 잠 못자면서 열심히 마케팅을 하고, 상영관을 잡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보수와 진보를 따질 수 있는 영화가 아니고, 지지하거나 후원한 분들도 정치적 색이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평범한 영화 중의 하나로 봐주시고, 그 열망만큼만 극장을 열어주시면 감사하죠. 영화가 너무 힘들고 슬플까봐 망설이는 관객들이 계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할머니들께서 겪은 아픔에 공감하고 있는 겁니다. 그 분들의 마음을 저도 공감하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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