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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 천우희, "가장 경계하는 것? 연기 나르시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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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인기나 비중은 부수적…주객전도 되고 싶지 않아"

영화 '곡성'에서 의문의 여인 무명 역을 맡은 배우 천우희. (사진='곡성' 스틸컷)

 

예쁘거나 아름답다는 수식어보다 이름 석자 만으로 충분한 배우. 향기로운 꽃보다는 뿌리깊은 나무가 더 어울리는 배우.

영화 '해어화'에 이어 '곡성'까지, 천우희는 그야말로 '천의 얼굴'을 가진 존재감 넘치는 배우다. 작품의 색과 비중은 전부 다르지만 그는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낼 줄 안다. 그래서 그 깊이감과 무게감을 쉬이 가늠하기 어렵다.

천우희라는 배우가 우리에게 각인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 2014년 다양성영화 '한공주'로 대종상영화제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는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소녀 '한공주' 역을 연기했다.

무대에 올라선 천우희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남긴 수상 소감은 깊은 울림을 안겼다.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도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겠습니다."

배우 천우희.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흘렀다. 그 중 1년 2개월을 천우희는 '해어화'와 '곡성'을 촬영하며 현장에서 살았다. '더 열심히 좋은 연기를 하겠다'는 각오를 저버리지 않은 셈이다.

"남들이 도전하기 꺼려 하거나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는 연기들을 깨어 나가보자는 생각이 있어요. 두려움이 분명히 있어도 좀 더 무모하게 해보자고 생각해요. 그러면 여성 배우들의 영역이 좀 더 넓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고요. '왜 이렇게 무모한 것을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하고 싶어요."

천우희에게는 고되거나 힘든 역할이 꽤 많이 주어진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지만 고정된 이미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원해서 그런 역할들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그런 작품들이 있어서 제게 맡겨지는 것일 수도 있어요. 물론 저도 다른 영역들이 욕심 나긴 하지만, 함께 영화를 했던 가까운 분들이 '네가 그만큼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맡겨지는 것'이라고 해주시니 하게 되는 거죠."

무슨 역이든 척척 해내는 천우희에게도 연기적인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연기는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는 철저히 혼자 고민하는 편이다.

"그 부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기적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얻을 수 있는게 제 해답밖에는 없더라고요. 스스로에게 굉장히 많이 물어봤어요.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답은 자기가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기대는 편은 아니에요."

영화 '손님'에서 미숙 역을 맡은 배우 천우희. (사진='손님' 스틸컷)

 

분명 국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우희는 주인공 자리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선택하는 작품의 기준이 오로지 시나리오의 흥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비중이 적거나 많은 건 상관이 없어요. 어차피 작품을 참여하면 그건 제 작품이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자부심이 있어야 하고, 최대치를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있다 보니까. 작품을 선택하고 난 다음에 머리가 터지는 거지 선택은 단순해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느냐. 와닿지 않으면 연기를 할 때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독의 느낌이 제일 중요하고, 제 직관만 가지고 봐요."

여우주연상 이전과 이후, 배우로서 천우희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들어오는 시나리오의 양부터 달라졌다. 그러면 꾸준히 주인공 자리에 서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일진대, 그는 고개를 내저을 뿐이다.

"예전과 다르게 찾아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감사하지만 여성이 주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이 극히 드문 건 맞아요. 그런 부분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일단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 '내 캐릭터가 중심'이라는 이유로 선택하지는 않아요. 욕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그게 1순위는 아니거든요. 상을 탄 이후에는 기대치도 크고, 요구되는 것도 많지만 조급해 하지는 않으려고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작품도 다 인연이에요. 제게 주어진 기회가 있는데 그 안에서 억지로 뭔가를 더 해내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본질적인 것을 잡고 싶고, 주객이 전도되고 싶지는 않아요."

비중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어도, 배우에 대한 욕심은 누구보다 많다. 정확히 말하면 '연기'에 있어서는 그렇다. 천우희에게 '연기' 외의 다른 것들은 어디까지나 '주'가 아니라 '부'에 머물러 있다. 배우가 가져야 할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함이다.

"꿈은 항상 커요. 연기를 잘하고 싶고, 이왕 연기하는 거, 정점을 찍어보자. 연기할 수 있는 한계를 두지 말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다해보자. 그런데 그게 제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죠. 광고나 이런데도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인데 그건 부가적으로 따라 오는게 아닐까요? 물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관심을 잃고 싶지는 않죠. 그래도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역시 연기라고 생각해요. 각자의 강점이 있으니까 이런 건 배우의 성향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해어화'에서 서연희 역을 맡은 배우 천우희. (사진='해어화' 스틸컷)

 

지금까지 필모그래피는 성공적이었고, 연기적으로도 수많은 칭찬을 받아왔다. 그러나 정작 '연기파 배우'로 통하는 당사자에게는 들뜬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외부가 아닌 자신의 중심에 집중하는 성격이 그대로 작용했다.

"그런 칭찬이 제 작은 실수를 감싸줄 수도 있고, 어쩔 때는 시험대에 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하죠. 그런데 사실 제가 저 스스로를 좀 힘들게 하는 편이에요.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게 없어질만큼 연기가 될 때까지 하고 싶거든요. 이전에 했던 작품을 촬영한 당시에 보면 정말 어색하고 민망하고 부족하고 끔찍한 부분이 있어요. 나중에 2~3년 뒤에 보니까 나름 괜찮더라고요. 그 땐 이상했는데, 뭔가 받아 들이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 촬영 현장에서 천우희는 연기할 때 외에는 최대한 힘쓰는 것을 자제하는 편이다. 일상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힘없이 수줍은 미소를 띠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돌변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됐다.

"세수하거나 밥 먹을 때도 계속 생각해요. 그런데 현장에 오는 순간에는 다 잊어요. 카메라 앞에 섰을 때는 상황을 계산했던 걸 생각하지 않아요. 바로 시동이 걸린다고 해야 될까요? 제가 평소에 기력이 없어서, 현장에서 다른 배우들도 걱정을 해주는데 겪어보면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고 하세요. 그렇게 모았던 에너지를 그냥 연기할 때만 쏟아내는 스타일인가봐요. 평소에도 아무것도 안해요. 기력이 없기 때문이죠. (웃음) 은둔형에 가까워요. 취미 생활은 마음이 동하면 하는데 굳이 오래 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연기에 쓸 기력만 모은다'는 말답게 천우희에게 연애는 아직 먼 이야기다. 특별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아 더욱 연애와 멀어지고 있다고.

"성격상 밀고 당기는 걸 잘 못해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거든요. 그나마 예전에는 좀 할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것도 다 귀찮아지더라고요. 포기가 좀 쉬워졌달까. 부질없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모임을 갖거나, 소개를 받거나 그런 성향이 아니에요. 일상에서 어딘가로 나가야 되는데 집에만 있으니 어느 정도 노력은 필요하겠다 싶네요."

그가 배우로 살아가면서 경계하는 것은 바로 '나르시시즘'. 스스로 자신의 연기에 도취되거나 빠지지 않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역량 발전에 지장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항상 조심하려고 해요. 저 자신에게 만족하는 순간 퇴보하거나 성장이 멈출 수도 있거든요. 물론 연기할 때는 자신감을 갖고 하죠. 그런데 자기 연기에 빠지는 건 다른 문제 같아요. 제 연기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눈을 갖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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