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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리우 레터]브라질 천사가 보여준 '지옥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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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이 3일(현지 시각) 대회 취재를 위해 입국한 기자들의 미디어 등록을 도운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리우=노컷뉴스)

 

리우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습니다. 지난 2일 아침 집을 나선 뒤 땅과 하늘에서 거의 이틀을 지새우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현지 취재진 숙소에 발을 디딘 일정. 그 어느 국제대회 출장보다 먼 여정이었습니다.

출국 준비를 하고 다시 몸을 씻기까지 걸린 시간이 꼬박 46시간 정도 되더군요. 제 평생에 군 생활을 빼고 이렇게 오랫동안 몸에 물기가 닿지 않은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깔끔한 편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간단한 세면, 세수만으로는 씻어낼 수 없는 찝찝함을 이렇게나 오래 견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인천을 떠나 런던까지 11시간30분을 날아간 뒤 약 6시간을 공항에서 경유, 또 브라질 상파울루까지 11시간 넘게 대륙 사이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이전 대회인 런던과 소치동계올림픽과 비교하면 이런 장시간 비행이 꼭 2배인 셈입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상파울루 공항에서 리우까지 가는 비행이 한번 더 남아 있었습니다.

상파울루 공항에서 대기 시간은 약 7시간. 어지간한 국제선을 넘어서는 시간입니다. 같은 브라질 내에서 이동인 데다 리우까지 겨우(?) 1시간 비행거리임을 감안하면 경유 시간이 엄청났습니다.

'입국 지옥' 3일(현지 시각) 리우올림픽이 열리는 브라질에 도착한 세계 각국 입국자들이 상파울루 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위해 기다리는 모습. 한 시간 반이 넘는 대기에 어린 백인 자매들(오른쪽)이 주저앉는 등 지친 모습이다.(상파울루=노컷뉴스)

 

이 7시간은 약 이틀이 걸린 리우행 여정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습니다. 앞선 11시간이 넘는 두 차례의 장거리 비행은 차라리 수월하게 넘겼다고 할 만큼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번 리우올림픽 전체의 성격을 규정할 만한 여정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웰컴 투 헬(지옥으로 온 걸 환영합니다)'이라는 팻말을 공항에서 들었던 지난 6월 리우 경찰들의 경고가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고 해야 할까요? 그 7시간은 순간 리우 경찰들의 파업 시위를 절로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브라질 전체를 죄다 지옥이라고 매도하기에는 어려운 의미있는 경험도 했습니다. 마치 지옥 속의 천사라고 할 만한 브라질 사람의 친절은 지친 심신에 활력을 주기도 했습니다. 과연 리우올림픽은 지옥일까요, 천국일까요? '임종률의 리우 레터' 그 첫 번째 편지를 띄웁니다.

▲'지옥 맞네' 입국 수속 대기만 1시간 반

런던을 경유해 약 30시간 가까운 비행과 대기 시간 끝에 CBS노컷뉴스 취재팀은 3일 오전 05시 30분(이하 현지 시각)쯤 브라질 상파울루 과룰류스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를 비롯한 각국 취재진과 올림픽 자원봉사자, 관광객 등이 속속 입국했습니다. 다들 오랜 비행으로 지쳐 보였지만 브라질 땅을 밟은 설렘도 얼굴에 비쳤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분도 잠시. 지리한 기다림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입국 심사였습니다. 인파가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입국장은 긴 줄로 가득찼습니다. 올림픽에 나설 선수들이나 취재진 등은 따로 줄이 만들어졌지만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CBS노컷뉴스 취재팀은 3명 중 1명이 올림픽 아이디 카드가 없어 일반 입국자들과 같은 줄에 섰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기둥에 기대 주저앉아 있는 어린 백인 자매가 보였습니다. 부모가 줄을 따라가는 사이 자매는 잠시 휴식을 취한 겁니다. 영국 출신 올림픽 자원봉사자 아니루스 퍼스 씨는 "이렇게 입국 심사가 긴 건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올림픽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현지 보도를 절절히 실감할 수 있던 대기였습니다.

족히 한 시간 반은 넘어서야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심사 직원은 "평소에는 이렇지 않은데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정말 바빠졌다"면서 "오늘은 비행기 4대가 한꺼번에 내리면서 1000명이 넘게 몰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기까지 약 2시간이 넘어서야 상파울루의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흡연자인 다른 2명의 CBS노컷뉴스 취재 기자는 서둘러 흡연 구역을 찾아서야 비로소 살 것 같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들은 인천 런던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이 마지막 흡연이었습니다. 런던을 경유하는 6시간 동안은 미처 흡연 구역을 찾지 못했던 겁니다. 한 동료 기자는 "흡연을 시작한 이후 30시간 넘게 참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끽연을 만끽했습니다.

▲브라질 시민의 친절한 안내

천국과도 같았던 휴식은 짧았습니다. 리우행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한 여정이 만만치 않았던 겁니다. 상파울루 공항에서 대기 시간은 약 7시간, 왜 이렇게 대기 시간이 긴가 했지만 결코 여유있는 일정이 아니었습니다.

리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과률루스 공항에서 콩고냐스 공항으로 이동을 해야 했습니다. 이를테면 국제노선이 이뤄지는 인천공항과 국내선이 주를 이루는 김포공항인 셈입니다. 셔틀버스로 약 50분 거리의 이동이었습니다.

과률루스 공항은 남미의 주요 거점 공항으로 규모가 인천공항 못지 않았습니다.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공항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걸음을 옮겨도 선뜻 행선지가 나오지 않아 당황하던 차였습니다. 포르투갈어권 국가라 영어도 잘 통하지 않은 데다 오랜 비행과 시차로 정신까지 몽롱해질 즈음, 구원자가 나타났습니다.

'브라질 그렇게 위험한 나라 아닙니다' 브라질 라탐항공 직원인 파울로 마르셀로 씨가 공항 연결 셔틀버스 정류장을 직접 안내한 뒤 CBS노컷뉴스 취재 기자와 기념촬영을 한 모습.(상파울루=노컷뉴스)

 

공항에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저희 취재진을 본 한 브라질 남성이 다가왔습니다. 제가 든 손의 티켓을 본 그 남성은 자신을 따라오라며 앞장을 섰습니다. 알고 보니 그 남성은 리우행 비행기 항공사의 직원이었습니다. 유니폼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라 저희가 긴가민가 하는 동안 그 남성은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워낙 브라질의 치안이 좋지 않고, 여기저기 강도와 절도 사건이 들려온 터였습니다. 엘리베이터를 실내를 빠져나가는 등 10여 분을 걷는 동안 사실 '어디 으슥한 데로 끌고 가는 건 아닐까' 은근한 걱정도 들었습니다. 출국 전 외교부에서 올림픽 취재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에서 본 절도 동영상이 불현듯 떠오른 것은 왜였을까요?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그 남성은 정말로 항공사 직원이었고, 마침내 셔틀버스 정류장까지 저희를 안내했습니다. 버스 시간표까지 친절하게 알아봐준 그 남성은 파울로 마르셀로 씨. 그는 "콩고냐스 공항까지 50분 정도 걸리지만 출근시간이라 그 이상이 걸릴 수 있다"면서 "승객들이 많은데 8시 반에 이어 9시 반 버스까지 타지 못한다면 유료 공항버스를 이용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즐기되, 조심하라" 의미심장한 조언

마르셀로 씨의 친절함은 입국 심사 과정에서 겪은 브라질에 대한 인상을 상당 부분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리우까지 어머니를 자동차로 모셔 드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마르셀로 씨는 "시간이 많지 않아 이제 가봐야 한다"면서 오히려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10여 분을 걸어와 직접 정류장까지 저희를 안내했고, 시간까지 알아봐준 것이었습니다.

사실 마르셀로 씨는 올림픽 준비가 덜 돼 있다는 전 세계 언론들의 보도가 적잖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습니다. 한국 취재진이라는 말을 듣더니 마르셀로 씨는 "브라질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기꺼이 정류장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브라질이 그렇게까지 형편없는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몸소 실천해 보인 겁니다.

'브라질, 따봉!' 브라질 경찰들이 올림픽 관련 차량만이 운행이 가능하도록 차로를 통제하는 모습(위)과 도로에서 물건을 파는 브라질 시민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한 모습.(리우=노컷뉴스)

 

이번 올림픽은 이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브라질과 리우의 재정 악화로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호주 선수단이 브라질 선수단조차 선수촌 입촌을 거부할 정도로 엉망인 선수촌 시설에 분개해 외부 호텔을 잡았다는 소식, 또 다시 입촌했지만 화재가 발생했고, 그 사이 노트북 등 귀중품이 사라진 황당한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여기에 각종 강도와 절도 사건, 폭동까지 불안한 브라질의 치안도 이번 올림픽의 뇌관입니다. 지난 6월 임금 체불과 힘든 근무 여건에 리우 경찰들이 공항에서 파업 시위를 하면서 '웰컴 투 헬' 팻말을 든 것은 브라질의 현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낸 표현일 겁니다.

그처럼 친절한 태도로 브라질에 대한 인상을 바꿔준 마르셀로 씨 역시 걱정인 듯했습니다. 그가 남긴 충고는 의미심장했습니다. 어쩌면 이번 리우올림픽을 규정할 만한 조언이었습니다.

마르셀로 씨는 저희 취재진에게 "올림픽을 취재하는 동안 충분히 브라질을 즐기라"고 했습니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그러면서 곧바로 "그러나 가방들을 잃어리지 않도록 부디 조심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불안한 조국의 현 상황에 대한 걱정일 겁니다. 뜨거운 악수를 나눈 마르셀로 씨는 총총히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즐기되, 조심하라." 굳이 브라질이 아니더라도 새겨야 할 말일 겁니다. 하지만 이 간단한 조언은 이틀이 걸린 여정 끝에 밟은 브라질의 현실을 실감한 가운데 그 어떤 뉴스보다 깊숙히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옥과 천국을 오갔던 7시간의 대기 시간, 리우올림픽이 이제 막 시작합니다.

'브라질, 살 만해요'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3일(현지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공항에서 미디어 등록과 숙소까지 교통편 안내를 도운 자원봉사자들과 포즈를 취한 모습.(리우=노컷뉴스)

 

p.s-리우올림픽에 대한 걱정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수촌에 이어 취재진 숙소 역시 이런저런 문제들로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온수 대신 냉수만 나오는 일이 다반사인 데다 귀중품을 보관할 금고는 작동 불능입니다.

부엌 창은 문이 없이 방충만만 덩그러니 달려 있다는 전언은 사실이었습니다. 밤새 바깥 소음이 그대로 들리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입니다. 공식 매점은 메인미디어센터처럼 영수증 발급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관계자들의 친절함은 이런 걱정을 잠시나마 덜어줍니다. 세계 각 나라에서 모인 리우공항의 자원봉사자들은 취재진을 대신해 택시비를 흥정해 깎아낸 뒤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합니다.

처음 발을 디딘 이역만리의 땅이 지옥 같을 때도 있지만 브라질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올림픽을 취재하는 동안 조심해서 브라질의 참모습을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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