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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전설들의 장점만 모으면? 그게 케빈 가넷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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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고졸 신화의 선구자이자 아이콘 케빈 가넷 은퇴 선언

'영원한 늑대 대장' 케빈 가넷이 코트를 떠난다 (사진=미네소타 팀버울브스 SNS 캡처)

 

"NBA 전선들의 장점만 모아놓은 것 같은 선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1995년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 등장한 선수가 있었다. 그는 커리어 내내 선구자로 불렸다. 그가 없었다면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래디, 르브론 제임스의 NBA 경력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는 1995년 6월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5순위 지명권으로 만 19세의 젊은 선수를 선택했다. 그의 이름은 케빈 가넷.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유망주였다. 대학 무대를 밟지 않고 NBA에 직행한 선수가 등장한 것은 20년만에 처음이었다(1989년 데뷔한 숀 켐프는 대학에 진학했으나 경기에 뛰지 않고 NBA로 왔다).

당시 케빈 맥헤일 미네소타 단장의 선택은 파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리수가 아니냐는 우려도 적잖았다.

케빈 가넷은 데뷔 첫 시즌 평균 10.4점, 6.3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올리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이후 초고교급 선수의 NBA 직행은 유행이 됐다. 1996년 코비 브라이언트가 나왔고 1997년 트레이시 맥그래디가 나왔으며 2003년에는 르브론 제임스가 등장했다.

'고졸 신드롬'의 시작은 케빈 가넷이었다.

고등학교 스타의 NBA 직행이 꼭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훗날 NBA가 드래프트 참가자에 나이 제한을 걸기 전까지 매년 1명 이상의 초고교급 스타가 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던졌다.

케빈 가넷이 없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1989년 신생팀 자격으로 NBA에 합류한 미네소타가 비교적 빨리 농구 팬에게 존재감을 알린 계기는 케빈 가넷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미네소타는 1992년 미국 드림팀 출신의 크리스천 레트너를 중심으로 서서히 전력을 만들어가는 팀이었다. 케빈 가넷의 첫 시즌인 1995-1996시즌 중반 케빈 가넷의 멘토이자 스승으로 유명한 고(故) 플립 선더스 감독이 부임했고 레트너를 타 구단으로 이적시켰다. 케빈 가넷을 팀의 미래이자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210cm가 넘는 큰 키에 긴 팔다리, 삐쩍 마른 몸매의 케빈 가넷은 데뷔 초기 주로 스몰포워드로 뛰었다. 스몰포워드 치고는 너무 컸지만 그렇게 느리지는 않았다. 케빈 가넷은 파워포워드를 맡은 톰 구글리오타, 1996년 합류한 폭발적인 가드 스테판 마버리와 함께 미네소타 3인방 체제를 활짝 열었다.

미네소타는 1996-1997시즌 창단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았고 이때부터 8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임팩트는 약했다. 미네소타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1라운드 탈락 고배를 마셨다.

이 기간 마버리는 팀을 떠났고 조 스미스의 부정계약 파문에 팀이 흔들렸다. 그러나 케빈 가넷만큼은 흔들림없이 팀을 지켰다. 팬들은 그를 '외로운 늑대'라고 불렀다.

케빈 가넷은 2003-2003시즌 평균 24.2점, 13.9리바운드, 5.0어시스트, 1.5스틸, 2.2블록슛을 올리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미네소타는 지금까지 구단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는 58승24패(승률 70.7%)를 기록했고 서부컨퍼런스 결승까지 진출했다.

케빈 가넷은 2006-2007시즌을 끝으로 미네소타를 떠났다. 보스턴 셀틱스가 케빈 가넷, 폴 피어스, 레이 앨런으로 이어지는 슈퍼 3인방을 구축했고 케빈 가넷은 2007-2008시즌 이적하자마자 NBA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더이상 그는 '외로운 늑대'가 아니었다.

보스턴에서 6시즌을 뛴 케빈 가넷은 브루클린 네츠를 거쳐 2014-2015시즌 도중 미네소타로 복귀했다. 더이상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미네소타 경기장은 돌아온 늑대 대장을 보기 위한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케빈 가넷이 '외로운 늑대'로 한창 활약하던 시절 가슴에 그의 이름을 새기고 춤을 췄던 한 사내가 아버지가 돼 아들을 데리고 케빈 가넷이 돌아온 미네소타 경기장을 방문, 여전히 가슴에 'KG'를 새기고 춤을 춘 장면은 NBA 팬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하다.

미네소타는 케빈 가넷이 은퇴할 때까지 선수단의 어른이자 간판, 후배 선수들의 멘토가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케빈 가넷은 24일(한국시간)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케빈 가넷은 미네소타의 MVP(2003-2004)였고 보스턴의 최고 수비수(2007-2008시즌 올해의 수비수 수상)였다. 15번이나 올스타 무대에 출전할 정도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ALL-NBA 팀에 9번이나 이름을 올렸고 ALL-NBA 수비팀에는 12번이나 등재됐다.

NBA에서 총 21시즌을 뛰어 통산 17.8점, 10.0리바운드, 3.7어시스트를 기록함 케빈 가넷은 미네소타 농구 그 자체다. 미네소타 구단의 통산 출전경기(970회), 출전시간(3만6,189분), 득점(1만9,201점), 리바운드(1만718개), 블록슛(1,590개), 어시스트(4,216개), 스틸(1,315개), 더블더블(607회), 트리플더블(16회) 등 부문에서 1위에 올라있다.

NBA 역사에도 케빈 가넷은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NBA 통산 출전경기 5위(1,462회), 출전시간 3위(5만418분), 득점 17위(2만6,071점), 리바운드 9위(1만4,662개) 등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케빈 가넷은 누가 봐도 7피트(약 213cm)가 넘는 선수였다. 그러나 '7피트 거인'이라고 불리는 게 싫어 끝까지 자신의 신장이 6피트11인치(약 211cm)라고 우겼다.

케빈 가넷은 데뷔 초기 하킴 올라주원을 크로스오버 드리블로 제치고 덩크를 꽂았고 찰스 바클리를 높이에서 압도했으며 코비 브라이언트와의 미스매치에서도 밀리지 않고 수비를 해냈다. 그야말로 '토털 패키지'였다. 파워포워드로 정착한 이후에도 꾸준히 20득점-10리바운드 이상을 해냈고 경력이 쌓이면서 5개 이상의 어시스트도 꾸준히 해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선수로 성장했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NBA는 등번호 21번의 전성시대였다. 팀 던컨의 등번호이자 케빈 가넷을 상징하는 숫자다. 둘은 NBA를 대표하는 빅맨이자 라이벌로 주목을 받았다. 1999년 플레이오프를 압도적으로 제패한 팀 던컨의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서부컨퍼런스 시리즈에서 단 1패만을 당했는데 바로 그 경기가 케빈 가넷이 활약한 미네소타전이었다.

일부 팬들은 케빈 가넷이 '외로운 늑대'로 활약하던 시절 큰 경기 승부처에서 약하다며 '새가슴'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케빈 가넷은 코트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인 선수였고 공격과 수비에서 동시에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한 몇 안되는 선수였다. 또 트래시토크의 대가로서 상대팀 선수들은 가넷과 마찰을 겪기도 했다. 케빈 가넷은 어떤 부분에서도 상대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2016년 여름과 가을은 NBA가 새로운 페이지를 펴는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코비 브라이언트, 팀 던컨에 이어 케빈 가넷마저 은퇴를 선언하면서 마이클 조던의 시대 이후 NBA를 이끌어왔던 전선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이제 많은 팬들에게 NBA는 분명 이전과는 많이 다른 느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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