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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43년전 타임지 사설로 본 '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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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요행히 탄핵 피하더라도 국가는 황폐화될 것"…시공초월한 문제의식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한창이던 1973년 11월 12일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때까지 50년 역사상 처음으로 사설을 게재했다.

'대통령은 사임하라'는 제목의 사설은 타임이 오랜 기간 닉슨을 지지해왔고 그가 두 번째 임기를 마칠 즈음에는 '위대한 대통령' 반열에 오를 것이란 기대감도 갖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타임은 "따라서 우리는 닉슨이 물러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상황은 전례없이 엄중하기만 하다"고 첫 사설 발간의 이유를 밝혔다.

지금으로부터 꼭 43년 전에 쓰여진 이 글의 문제의식은 지금의 우리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당시 의회의 탄핵 절차가 시작되기 전 상태에 있던 닉슨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고 조사를 방해했으며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

73년 11월 17일 기자들 앞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I'm not a crook)라고 했던 유명한 일화는 최순실 씨로부터 연설문 정도만 '도움'을 받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1차 사과를 연상시킨다.

조사가 계속되면서 닉슨의 측근 참모들은 하나둘씩 기소 또는 유죄판결을 받고 잘려 나갔고, 급기야 대통령 집무실내 대화가 자동녹음되는 테이프의 존재가 폭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닉슨은 청와대가 검찰 압수수색을 한때 거부했던 것처럼 '국가기밀'을 이유로 테이프 제출을 거부했고, 나중에는 일부를 삭제한 채 제출했다가 걷잡을 수 없는 역풍을 맞게 됐다.

상황이 이쯤 되자 타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감안하더라도 헌법체계까지 파괴하려 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타임은 "닉슨이 대통령 취임 선서와 국민에 대한 약속을 배신(betray)했다"고 했다.

타임은 또 닉슨의 사임(하야)이나 탄핵이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쉽게 물러나게 할 선례로 작용할 수 있음을 우려하는 여론도 짚었다.

타임은 그러나 "진짜로 위험한 선례는 그 반대의 경우"라고 단언했다. 닉슨을 현직에 있도록 용인하는 것은 역사에 끔찍한(terrible) 오점을 남기고 후손들에게 뭐라 설명할 길 없는 더 나쁜 선례가 된다는 것이다.

타임은 "미국의 주권자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임을 상기시키면서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았고 권력을 위임했지만, 그런 이유로 해서 대통령은 어떤 경우에도 예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독재로 가는 첫 걸음"이라고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대통령의 중도 사퇴가 어찌됐든 나라의 위신을 실추시킬 것이란 걱정도 지금 우리와 닮았다.

타임은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라고 지적했다. "정치 시스템이 잘못됐을 때 스스로 정화하는 능력을 통해 미국 헌법과 민주 정부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자"며 거듭 닉슨의 사임을 촉구한 것이다.

길고 먼 시공간을 넘어 박근혜 대통령은 닉슨보다도 훨씬 좋지 않은 상황을 맞고 있다. 그래도 닉슨의 사임할 때 지지율은 20%대였다.

박근혜 대통령(사진=청와대 제공)

 

반면 박 대통령은 5% 지지율과 2/3에 이르는 사퇴 여론을 애써 무시해가며 나라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스스로 물러날 생각은 없으니 강제로 끌어내리든지 맘대로 하라면서 탄핵까지의 오랜 절차와 혹여 있을지 모를 역풍에 기대는 눈치다.

43년 전의 타임도 "닉슨이 끝까지 가겠다고 한다면 탄핵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설령 요행히 탄핵을 피한다 하더라도 본인은 물론 미국을 황폐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대세가 기울었음을 안 닉슨은 자신보다 국가를 살리기 위한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

박 대통령이 혹시 시간 끌기에 나선 것이라면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점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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