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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협이 희생자?" 지금은 묵묵히 플레이로 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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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28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날 모 스포츠 전문지에서 보도한 '메리트 제도 부활 요청' 기사에 대해 오히려 자신들이 희생자라며 적극 해명했다. 사진은 선수협 총회에서 진행된 신인 선수 교육 모습.(자료사진=프로야구선수협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가 일각에서 제기된 승리 수당을 주지 않으면 팬 사인회 등 행사를 보이콧한다는 이른바 '메리트 논란'에 대해 반박했다.

하지만 FA(자유계약선수) 몸값 거품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부진 등 팬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불거진 논란이라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선수협은 28일 야구 기자단에 보도자료를 내고 "일부 언론 보도에서 나온 선수협의 메리트 부활 요구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특히 '메리트 부활 요청'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선수협 측에 확인도 하지 않고 나온 기사"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이날 모 스포츠지는 "선수협이 지난 27일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미디어데이가 끝나고 각 팀 주장들이 모인 이사회에서 메리트 제도 부활을 구단이 들어주지 않으면 팬 사인회, 구단 홍보 영상 촬영 등 모든 행사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메리트 제도는 공공연히 이뤄져 왔지만 지난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구단 운영 정상화를 위해 이를 금지했다.

선수협은 "지난해 메리트 금지에 대해서 어떠한 반대도 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방침을 철저히 지켜왔다"면서 "다만 작년부터 선수단에 대한 지원이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구단 행사 참여 등 선수들의 경기 외적 부담은 커지고 있어 선수 복지 차원에서 수당이나 보상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기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행사가 끝나고...'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진행된 '2017 KBO 미디어데이 & 팬페스트'에서 10개구단 감독 및 선수들이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이어 선수협은 "28일부터 선수 대표들이 구단과 협의를 시작하려고 했고 오히려 구단에서 협조를 해주지 않는 경우 선수단 자체적으로 팬 서비스 행사를 마련하기로 결의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선수협은 "사실 확인도 없이 선수협의 의도와 다르게 마치 팬 사인회를 볼모로 메리트를 요구한 것으로 나간 기사는 선수협을 의도적으로 폄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마치 메리트가 선수들이 요구해서 만들어진 제도인 것처럼 인식되는 점에 대한 억울함도 호소했다. 선수협은 "메리트 제도는 선수가 아닌 지난 80년대부터 구단간 경쟁으로 촉발되어 KBO도 방치하면서 이어져 왔던 것"이라면서 "더구나 구단들은 메리트를 많이 줬다는 이유로 연봉 인상을 하지 않는 등 조삼모사식으로 운영해왔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선수들은 메리트 제도의 희생양이 됐다는 의견이다. 선수협은 "오히려 선수들은 구단들의 수단을 가리지 않는 성적지상주의 구조와 메리트 제도의 희생자"라면서 "구단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메리트 제도의 책임을 선수협에 뒤집어 씌우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선수협의 주장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선수협의 말대로 메리트는 연봉 이외의 뒷돈으로 음성적인 성격이 다분한 제도다. 따라서 KBO와 각 구단들이 이를 폐지하기로 한 것. 이런 가운데 선수협이 수당과 보상을 구단에 요청한 것은 살짝 앞뒤가 맞지 않은 대목이다.

물론 선수협은 경기 외적인 행사에 대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팬 사인회나 구단 홍보 영상 촬영에 대해서까지 수당을 요구하는 부분은 야구 팬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경기력과 훈련에 영향을 줄 정도의 행사는 분명 지양돼야 하지만 어쨌든 팬들과 소통은 프로 선수라면 지켜야 할 덕목인 까닭이다.

'전설의 친절한 사인' 삼성 이승엽이 지난해 야구의 날 기념 팬 사인회에서 한 팬에게 웃으며 사인을 해주는 모습.(자료사진=삼성)

 

선수협은 각 구단들이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됐다고 질타했다. 그렇게 성적이 중요한데 구단들이 선수들의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로 행사를 진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성적지상주의라면 각종 행사 없이 선수들이 훈련에 매진하게 해야 하는 게 맞다.

더군다나 최근 KBO 리그는 실력과 몸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최근 FA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어 4년 100억 원을 넘어 150억 원까지 치솟았다. 10승 투수나 3할 타율-30홈런-100타점에 가까운 선수는 100억 원 안팎의 몸값을 받는다. 환율이나 세금 등을 고려할 때 어지간한 일본 FA들보다 높은 액수다.

지난해 연봉 상위 27명, 이른바 1군 선수들의 평균 몸값은 2억 원이 넘었다. 팬 사인회 등 구단 행사에 참석할 만한 선수들, 혹은 논란의 메리트를 받을 만한 선수들이다. 10개 구단 선수들의 전체 평균 연봉은 1억2656만 원이었다. 최저 연봉이 2700만 원임을 감안하면 1군 선수들의 연봉이 평균을 올린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KBO 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된 국가대표팀은 2회 연속 WBC에서 1회전 탈락의 쓴잔을 맛봤다. 특히 올해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된 이스라엘에 지면서 안방에서 2라운드 진출 좌절의 수모를 겪었다. 100억 원 안팎 몸값 선수들이 즐비한 대표팀이 당한 어쩌면 망신이었다.

반면 병역 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에서는 최근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따냈다. 경기력은 물론 절실함에서 WBC와는 달랐다는 지적이다. 한 야구계 관계자는 "WBC는 더 이상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면서 "병역 혜택이 걸린 대회는 필사적으로 나서지만 FA가 된 뒤 출전하는 WBC는 아무래도 소속팀 경기를 생각해 몸이 생각만큼 따르지 않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WBC 한국대표팀 이용규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WBC 서울라운드' 개막전 이스라엘과의 경기 5회말 삼진 아웃을 당한 뒤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이런 가운데 '메리트 제도 부활' 논란은 사실 여부를 떠나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길 수밖에 없다. 선수협 주장대로 팬 사인회, 홍보 영상 촬영 등의 행사에 대한 수당 요청이라고 해도 이를 접하는 팬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련 기사 댓글이 대부분 선수협을 비판하는 내용이고, 심지어 선수협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KBO 리그 소속이거나 출신 선수들은 크고 작은 추문에 휩싸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KBO는 불법 도박에 연루된 진야곱(두산)과 스프링캠프 도중 무면허 운전을 한 임창용(KIA)에 대한 징계를 발표했다. 강정호(피츠버그)는 음주 파문으로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할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최근 KBO 리그를 뒤흔든 불법 도박과 승부 조작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선수협은 이에 대한 책임과 관련해서는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물론 선수협도 나름의 고충과 애로사항이 있고, 할 말도 많을 터다. 최근 야구 클리닉 등 팬들을 위한 자발적인 행사도 열었던 선수협이다. 여기에 최근 몸값과 실력 거품 현상에는 KBO와 각 구단들의 잘못이 더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KBO 리그의 상황과 맞물려 선수협의 주장이 과연 팬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의무에는 다소 소홀하면서 권리 찾기에는 적극적이라는 지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자청해서라도 사인회나 행사에 참여해 WBC 부진으로 등을 돌린 팬들을 끌어모으고,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멋진 플레이로 찾아준 팬들의 응원에 보답해야 할 때다. 그렇게만 한다면 먼저 말하지 않아도 팬들이 나서서 선수들에게 수당이나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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