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보다 아동음란물 엄벌? 깊어지는 法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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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전문위원 "강간 죄책이 음란물보다는 무거워"
"전통적 성범죄와 양태·피해 달라…비교불가" 비판도

(그래픽=안나경 기자)

 

아동·청소년 음란물(성착취물) 범죄의 양형기준을 놓고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n번방 사건 같은 경우 정작 법정형은 무거운데 비해 실제 징역형이 선고된 선례는 거의 없어 기준을 찾는데 애를 먹는 상황이다. 여기에 강간과 같은 전통적 성폭력 범죄의 양형 수위와도 균형도 맞춰야 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29일 CBS노컷뉴스가 이달 6일 열린 양형위 전문위원들의 전체회의 논의 요지를 확인한 바에 따르면 참석자 12명 중 8명이 아동·청소년음란물 제작죄의 기본 형량으로 4~8년이 적정하다고 의견을 냈다.

이는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법정형보다 하한 형량을 1년 낮춘 것이다. 해당 법 제11조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제작하거나 수입·수출한 사람을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제7조에 규정된 아동·청소년 강간죄도 법정형이 같다.

그럼에도 전문위원들은 지난 20일 양형위 업무보고에서 "강간범죄보다 (음란물 범죄가) 다양한 행위태양이 예상되고 일반적으로 강간범죄의 죄책이 음란물 제작보다는 더 무겁다고 인식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하한을 징역 4년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전문위원 3인은 징역 5~9년이 타당하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이들은 "기본 영역의 하한은 법정형 하한과 일치해야 하므로 5년이 타당하다"며 "청소년 강간·유사강간과 비교해 성착취물 제작의 죄질이 더 가볍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양형위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있는 반성폭력·여성단체 등은 앞선 다수의견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직접적인 물리적 손상을 발생시키는 강간범죄도 중대하지만 디지털성범죄의 죄책과 피해정도를 전통적인 성폭력 범죄를 기준으로 다뤄선 안된다는 것이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의 이하영 공동대표는 "'n번방' 범죄는 기존 강간 범죄와 달리 익명의 수많은 참여자가 존재하며 1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무제한 유포·확대 가능성이 있어 더 중대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공동대표는 "강간죄 등 전반적인 성폭력 범죄 양형을 상향할 필요성이 큰 상황에서 새로 만드는 양형기준을 앞선 기준에 따라 그보다 낮게 설정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양형위의 한 관계자는 "유사범죄와의 양형 비교는 양형기준 설정 과정에서 필수적인 절차"라며 "음란물 제작죄에는 실제 아동이 피해자인 경우도 있지만 아동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도 처벌 대상인 점 등 다양한 범죄 유형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아동·청소년음란물 제작죄로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단일범 기준)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7년간 15건에 불과한 상황도 해당 범죄의 특수성을 깊게 검토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꼽힌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통상 양형기준 설정을 위해 1000건 내외의 양형사례를 수집하는데 아동·청소년음란물 관련해서는 기준으로 삼을 자료가 없는 것"이라며 "양형기준은 어디까지나 권고여야 하는데 대법원이 입법기관처럼 선언적으로 높은 형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양형위는 다음달 18일 회의를 열어 양형기준 초안을 확정한 후, 국회와 여성가족부 등 행정부 유관기관, 학술·시민단체 등 약 45개 기관에 신설 양형기준과 관련한 의견조회를 요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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