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 저들도 컵라면 한그릇이 마지막 식사였다

노컷뉴스 이 시각 추천뉴스

닫기

- +

이 시각 추천뉴스를 확인하세요

‘이천 화재 희생자’ 상당수가 하청업체 노동자, 왜?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MHz (18:25~20:00)
■ 방송일 : 2020년 4월 30일 (목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민동기 (GO발뉴스 기자)

 


◇ 정관용> 오늘 주제는?

◆ 민동기> ‘이천 화재 희생자’ 상당수가 하청업체 노동자, 왜인가다.

◇ 정관용> 사망자 중에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많다?

◆ 민동기> 숨진 38명 중 상당수는 하청업체 노동자. 이들은 하루에 10만∼15만 원을 받고 일했다고.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 하루 10시간씩 일하는 게 일상. 일부는 물류센터 근처에 있는 숙소에서 함께 먹고 자면서 일했다고. 불이 난 어제(29일)도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인 물류센터 건물의 모든 층에서 78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 동아일보가 보도한 내용이 있다.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 화재로 사망한 조모 씨(35)의 사연. 화재 당일 돈을 아낀다면서 끼니를 거르는 조 씨를 위해 동료 강모 씨가 컵라면 2개와 찬밥을 준비해 왔다고. 조 씨는 중학생 딸을 홀로 키우면서 착실히 돈을 모았다고. 평소 조 씨는 “딸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겠다”면서 3개월 내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했다고. 동료 강 씨는 “이게 마지막 식사일 줄 알았다면 더 좋은 걸 사다줄 걸…”이라며 말을 흐렸다. 희생자 중에 20-30대 사회 초년생들이 많은 것도 안타까운 부분.

◇ 정관용> 이런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하청업체 노동자들 희생이 많은 이유가 뭘까?

◆ 민동기> 산업재해 피해가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유해하고 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넘기면서 일어나는 ‘위험의 외주화(하도급화)’가 진행된 지 오래됐기 때문. 인건비를 덜고 사용자 책임을 피하려는 하청업체로의 외주화가 고용 불안을 넘어 ‘목숨과 안전의 불안’을 낳고 있는 구조적인 요인.

이번 물류센터 화재 사고를 언론들이 언급하며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사고와 흡사하다고 지적. 당시 사고로 현장에 있던 57명 가운데 40명이 목숨을 잃었다. 안전불감증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

그런데 이것 말고도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는 게 바로 ‘위험의 외주화’다. 2008년 이천 냉동사고 당시에도 사망자 상당수가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원청 정규직 노동자는 안전교육을 받지만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대부분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 12년 전에도 이 문제가 지적됐지만 지금까지 개선된 건 없다.

30일 오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사망자를 위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이천시 창전동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짓고 있다. 윤창원기자

 


◇ 정관용> 관리자 책임을 강하게 물으면 되지 않을까?

◆ 민동기> 문제는 이런 대형 참사가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점.

2008년 이천 냉동창고 사고로 40명의 건설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원청업체 대표는 2008년 7월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2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노동계는 “노동자 1명의 목숨이 고작 50만원이냐”며 강하게 반발.

법원은 원청업체의 안전관리 부실을 인정하면서도 “업체와 피해자들의 유족이 원만히 합의했고, 피고인들 모두 범죄 경력이 없고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잘 이해가 안 가는 설명.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 7월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다 하청노동자 4명이 냉매가스 유출로 질식해 숨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원청업체인 이마트는 처벌을 피해갔다. 다만 고용노동부가 이마트에 대해 특별감독을 실시해 탄현점 지점장과 이마트 법인에 각각 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 게 전부.

◇ 정관용>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게 있잖아?

◆ 민동기>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의무 소홀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등 관리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도록 돼 있다. 문제는 실제 처벌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 상당 부분이 벌금형에 그치고 있고, 징역형의 비율은 매우 낮다.

원청업체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중대 재해를 막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 하청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숨져도 원청 사업주들은 벌금 등 가벼운 처벌을 받는 만큼, 산업안전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

◇ 정관용> 외국의 경우는 좀 어떤가.

◆ 민동기> 영국의 경우 기업살인법을 만들어 노동자 1명 사망에 6억9000만원의 벌금을 부과. 산재로 인한 노동자 사망을 기업살인으로 인식. 노동계가 산재와 관련해 처벌 강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 특히 원청업체가 산업안전에 실질적으로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세균 총리에게 불상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주문. 또, 고용노동부가 공사장에서 반복적으로 화재가 발생하는 원인을 찾도록 지시.

그런데 사실 문제가 무엇이고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되는지 그리고 사망자 중에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많은지는 정부도 알고, 고용노동부는 특히 더욱 잘 알고 있다. 문제는 해결책이 있지만 현장에 적용시키지 않고 있다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 전반에 산재의 심각성을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실제 처벌 사례가 적다는 것은 사법부 역시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0

0

오늘의 기자

많이본 뉴스

실시간 댓글

상단으로 이동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다음 카카오채널 유튜브

다양한 채널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제보 APP설치 PC버전

회사소개 사업자정보 개인정보 처리방침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