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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어떻게 명작이 됐나[책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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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출신 작가이자 반체제 문인 밀란 쿤데라 94세 타계
1975년 공산에 저항하다 체코서 추방, 프랑스 파리 정착
삶과 죽음, 속박과 자유, 성과 사랑, 가벼움과 무거움 고찰

1973년 10월 체코 프라하에서 촬영한 밀란 쿤데라와 아내 베라의 모습. 연합뉴스 1973년 10월 체코 프라하에서 촬영한 밀란 쿤데라와 아내 베라의 모습. 연합뉴스 1929년 체코슬로바키아(현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밀란 쿤데라는 젊은 시절 열렬한 공산주의자였지만 체제의 부조리를 깨닫고 반공산주의 활동에 나서다 집필·판매 금지 등 정치적 박해를 당하며 1975년 공산정권에 의해 국외로 추방당한다.

이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그는 인간의 삶과 죽음, 속박과 자유, 성(性)과 사랑,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 놓인 존재가 겪어야 하는 실존적 고뇌를 다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으로 세계 문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위대한 현대작가" 94세 일기로 타계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94세 일기로 작고한 20세기 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주옥 같은 문장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1968년 옛 소련 지배에 저항해 일어난 체코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제공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제공 아버지 없이 자란 외과의사 토마스는 전처와의 이혼 이후 진지한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며 가볍고 자유로운 인생을 즐기며 살아간다. 애인이자 육체적 상대인 화가 사비나가 있었지만 존재의 무거움을 가진 운명적인 여인 테레사를 만나면서 토마스 역시 변해간다.

토마스는 공산당의 독재를 비판하는 정치칼럼을 신문에 기고하는 등 일련의 무거운 삶을 선택하지만 쾌락주의자다. 이런 토마스의 가벼움은 사랑의 무게와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테레사와와 갈등을 일으켜, 두 사람은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한다.

소련군이 체코를 침공하자 스위스로 잠시 피신했던 토마스는 테레사의 편지를 받고 체코로 돌아오지만 의사 면허를 박탈 당한다. 존재의 무거움을 선택한 토마스는 테레사와 시골에 정착하지만 어느 날 둘은 자동차 사고를 죽음을 맞게 된다.

토마스의 애인이었던 가벼운 존재 사비나는 정치·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려 프라하를 떠난다. 또다른 존재의 무거움을 가진 프란츠 교수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사랑의 가치를 중시한 유부남이었던 프란츠가 이혼을 하고 자신과 결혼하려 하자 그를 밀어낸다. 결국 가벼움을 선택한 프란츠는 제자와 사귀고 캄보디아로 의료봉사를 떠나지만 죽고만다.

삶과 죽음, 속박과 자유, 성과 사랑, 가벼움과 무거움 고찰

주인공들의 허무한 죽음은 '인생무상'과 같은 허무주의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들을 통해 사랑의 진지함과 가벼움, 사랑의 책임과 자유, 운명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 등 모순되고 이중적인 사랑의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현대 인간의 자화상을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간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며 24개국어 이상 번역된 이 책은 1988년 필립 카우프만이 제작한 동명소설의 영화로 제작돼 더 큰 주목을 받았다.  1989년 국내에 '프라하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작가 밀란 쿤데라의 진정한 임무는 그의 삶에서 자신의 나라의 비참한 역사에 대한 이미지를 찾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시대적 고뇌를 다룬 것만은 아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여성혐오적 소재는 끔찍하고 여성의 존재에 대해 근원적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의 첫 작품 '농담'은 복수심에 찬 주인공이 원수의 아내를 유혹하고 잠자리를 가지며 폭력을 휘두르고 외면한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대학원생과 사랑에 빠져 관심도 두지 않는다. 결국 여자는 수치심에 미쳐버리고 죽음을 선택한다.

반면 문학의 사상적 근원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는 평가도 있다. 소설 '농담'은 대학생인 주인공 루드비크가 여자 친구에게 엽서에 악의 없는 농담 한마디를 적어 보내지만 낙관주의적인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경도돼 있던 당시 대학과 사회는 루드비크를 레닌, 스탈린과 결이 다른 트로츠키주의자로 규정하고 그를 사회에서 축출한다. 오스트라바 지역 군 부대에 배속되어 석탄 캐는 일을 하며 복수심과 증오을 키우던 루드비크가 비극으로 몰고가는 여정을 뛰어난 문학적 섬세함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쿤데라는 철학자 니체, 문학가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브로흐, 체코의 작곡가 레오 야나체크 등 중앙 유럽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에게 깊은 애착을 가졌다. 체코의 저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터였다. 그는 "헤르만 브로흐처럼 불확실성의 진실을 포함해 소설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1983 프랑스 문학 잡지 더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에 그는 "경박한 형식과 진지한 주제의 조합은 우리의 드라마(역사적 드라마뿐만 아니라 침대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에 대한 진실과 그 무의미함을 폭로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그의 책이 시대적 화제가 된 것은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은 것도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재편되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첨예한 체제 경쟁이 가져온 부산물일 수도 있다. 물론 영화 '프라하의 봄'이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014년 출간된 쿤데라의 마지막 소설 '무의미의 축제'. 민음사 제공  2014년 출간된 쿤데라의 마지막 소설 '무의미의 축제'. 민음사 제공 칠순이 된 2000년 출간한 단편 '향수'로 기억과 귀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쿤데라는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2019년 12월 고향 체코로부터 국적을 회복한다. 체코에서 추방당한 이후 조국을 배신한 서방 세계의 첩자로 지목되며 자신의 나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지 약 40여 년이 흐른 뒤였다.

마지막 유고작이 된 '무의미의 축제'로 다시 주목받다

프랑스 주재 체코 대사는 그에게 체코 시민권을 전달하며 "체코공화국에서 가장 위대한 체코 작가의 상징적인 귀환의 순간"이라고 축하했지만 그는 돌아가지 않았다. 쿤데라의 소설은 1990년대부터 체코어로 출판되기 시작했지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2006년까지 체코에서 출간되지 못했다. 이후 현재까지 약 1만 부 가량만이 팔렸다고 한다.

그와 함께 체코 공산주의에 저항했던 반체제 대표 문인 중 하나인 바츨라프 하벨은 1989년 공사정권을 무너뜨린 벨벳혁명을 이끈 뒤 초대 체코공화국 대통령에 오른다. 체코에서는 이렇게 비교되며 쿤데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2000년대 이후 쓴 그의 마지막 작품 '무의미의 축제'(2014)는 비평가들의 의견이 분분했지만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천착했던 주제인 성(性)과 철학, 삶의 존재에 대한 허무주의를 다룬 이 소설은 알랭, 칼리방, 샤를, 라몽 4명의 친구들의 사색에 집중한다. 각자 다른 주제를 가진 주인공들은 개인주의에 직면한 실존주의와 그들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이 소설을 '명작'이라고 칭찬했고, 누군가는 '노년의 비좁은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소설 '파이 이야기'로 부커상을 수상한 얀 마텔은 "출간되는 순간 책은 온전히 독자의 것"이라고 했다.

극단적 시대의 상황,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 문학적 재능이 어우러진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30년을 뛰어넘어 현실 파리에서 등장하는 '무의미의 축제' 속 오늘날의 존재들을 통해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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