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후보자 '2차 가해' 변론 논란…총선 검증 첫 이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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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 후퇴하는 '젠더 정치'

N번방 사건에 국회가 특별법을 만든 지 4년. '젠더'가 주류 정치권 의제로 등장한 것도 잠시, 거대 양당의 2024년 총선 공약과 공천 등을 평가하면 '성평등' 이념은 여전히 불충분해 보인다. '2차 가해' 성격의 변론을 했던 변호사 출신 후보들이 논란을 일으켰고, 표 계산에 급급해 '젠더' 공약을 번복하는 촌극도 빚어졌다. 여야 모두로부터 외면 받은 '젠더 정치'의 현주소를 CBS노컷뉴스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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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후보자 '2차 가해' 변론 논란…총선 검증 첫 이슈화

더불어민주당 조수진 전 후보가 2차 가해 변론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변호사 출신들에 대한 과거 변론이 재조명받고 있다.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이 과거 변호사 시절 변론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후보 직에서 사퇴하는 것은 기존 한국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없던 풍경이다.

4·10 총선 과정에선 상대 진영의 과거 변론을 문제 삼으며 정치 문제로 비화시키는 공세가 잦아졌다. 이런 가운데 조 전 후보의 무리한 변론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우리는 피해자 편"이라며 민주당과의 차별화에 나서기도 했다.

조 전 후보는 2021년 초등학생 피해자를 여러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체육관 원장의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려 논란이 됐다. 판결문을 보면, 변호인단은 지속적인 성폭행으로 성병까지 걸린 피해자에 대해 '피해자의 성병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졌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블로그에 감형 방법을 조언하는 글을 올리고, 집단강간 사건을 변호하며 심신 미약 등을 주장한 사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조 전 후보는 당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지자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민주당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소속 후보들도 변호사 시절 성범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변론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거대 양당 모두 검증을 부실하게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그간 정치권이 성범죄 엄단을 주장해왔던 것의 반대 급부로 이번 총선에선 성범죄 '2차 가해' 성격의 변론 이력이 새로운 검증 잣대로 등장하게 됐다.

"4년동안 동거해서" "여행 같이 가서"…與후보들의 변론 보니

3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국민의힘 양홍규 후보(대전 서구을)는 2019년 동거하던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폭행 및 강간한 뒤 살해한 피고인을 변호하면서 "강간의 죄책을 지지 않는다"고 했다.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해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할 정도로 외포(畏怖·몹시 두려워함)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피해자가 강간 범행 직후 신고하지 않았고 피고인과 여행을 갔던 점 역시 양 후보의 주요 변론 내용으로 확인됐다.

대전지법 논산지원 형사합의1부(송선양 부장판사)는 미신고와 동반 여행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한 항거불능 내지 항거곤란 상태에 있었음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피고인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국민의힘 공천을 받은 다른 변호사 출신 후보자들의 과거 변론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나태근 후보(경기 구리)는 피해자를 간음하는 중에 불법 촬영한 피고인을 변호하면서 "피고인과 피해자가 4년 이상 동거한 연인 사이였고, 피해자는 의사에 반한 성관계가 있었음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피고인과 함께 식사를 하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했던 점에 비춰 성관계에 관해 묵시적 합의 또는 포괄적 양해가 있었다"며 준강간죄에 대한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1부(윤경아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항거불능상태에 있었던 피해자를 준강간하고, 피해자의 신체 및 성행위하는 모습을 촬영하였는바 그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양 후보와 나 후보 모두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것을 핵심 근거로 무죄를 주장한 셈이다. 대법원은 2013년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판례를 확립한 상태다. 조 전 후보가 '강간 통념', '피해자다움' 등을 악용해 변론했다는 비판을 받은 뒤 사퇴했던 만큼 두 사람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자질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마치 '피해자를 탓하는 듯한' 변론을 한 후보도 있다. 정필재 후보(경기 시흥갑)는 준강간치상 혐의를 받는 피고인을 변호하면서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피해자가 성병에 감염된 것에서 비롯된 것이지 피고인의 준강간 범행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김연학 부장판사)s는 "피고인의 준강간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생한 사실이 인정된다.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태도도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박선영 전 한국젠더법학회장은 "극악무도한 사람을 변호하는 것과 (그 사람의)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9조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이나 명예가 손상되거나 사적인 비밀이 침해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사생활에 관한 신문 또는 진술이 이루어지거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 또는 공포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수진 '2차 가해' 비판 뒤 與 후보들 논란…한동훈 침묵은 '내로남불' 지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로 대표되는 피고인의 방어권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확립된 사법 질서다. 변호인으로서는 감형받기 위해 무리한 변론을 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 법조계 내 우세한 견해다.  
 
하지만 변호사 출신 후보들이 법적 영역에서 벗어나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해 평가받는 정치권으로 넘어오기로 한 이상 공당은 자당 소속 후보들의 수임 기록이나 주요 변론 내용을 검증했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성범죄 엄단"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이를 구현할 후보를 공천하는 것이 '책임 정치'라는 것이다.

한 위원장 스스로도 조수진 후보 논란 국면에서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 행동들로, 이런 행동이 저 당(민주당)에선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용인하지 못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27일에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을 놓고 번복한 민주당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저는 성범죄의 피해를 누구보다 보호하려 노력했고, 성범죄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해 온 사람이며 저보다 범죄자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수진 전 후보를 비판했던 잣대를 자당의 '2차 가해성' 공격적 변론을 펼친 후보들에게도 적용하지 않는다면 '내로남불' 비판이 불가피하다. 야권은 한목소리로 "피해자 편"이라는 것을 강조했던 한 위원장에게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 위원장을 향해 "이제 한 위원장이 답할 시간"이라고 촉구했고, 새로운미래도 "성범죄 가해자를 전문적으로 변호한 후보가 한 위원장이 언급한 '피해자 편'에 해당하는지 궁금하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이같은 야권의 지적은 물론, 조 전 후보와 비슷한 전력을 가진 국민의힘 후보들이 계속 해서 밝혀지고 있지만 한 위원장은 이날까지도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용인대 최창렬 특임교수는 "거대 양당에서 마음만 먹으면 변론 요지는 검토할 수 있는 사항인데 (성인지 감수성 측면에서) 검증에 소홀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정치 변호사들이 너무 많아졌으니 가려서 받았어야 하는데, 양당에서 특정 계파에 유리한 공천만 신경 쓰다 보니 걸러지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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