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린이가 맘껏 뛰어노는 '통합놀이터'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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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비장애 아동 모두 놀 수 있도록 설계된 통합놀이터
유모차·휠체어도 진입 가능…그네는 누워서 타기도
전국 8만 개 놀이시설 중 통합놀이터는 31개…0.03%
"아파트 앞 일반 놀이터는 장애아동 사실상 이용 못 해"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통합놀이터인 초록숲놀이터에서 윤 한(4세)군이 그네를 타고 있다. 주보배 기자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통합놀이터인 초록숲놀이터에서 윤 한(4세)군이 그네를 타고 있다. 주보배 기자
"한아! 좋아?"
 
그네가 5월의 햇살을 가르고 솟아오르자, 양 한(4세)군의 눈이 휘어졌다. 옆에서 그네를 밀어주던 아빠도 한이를 따라 웃었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한이가 탄 그네는 다른 그네와 달리 의자처럼 등받이와 안전띠가 있다. 그 옆에 있는 그네도 가운데가 오목하게 푹 들어간 넓은 바구니 모양이다.
 
"일반 놀이터에서 보던 그네랑은 다르죠? 혼자서 고개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장애 아동도 탈 수 있도록 설계된 그네에요. 바구니 모양 그네는 아예 누워서 탈 수 있죠."

서울 노원구 상계동 초록어린이집 옆에는 '통합놀이터'인 초록숲놀이터가 있다. 무장애놀이터라고도 불리는 통합놀이터는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가 뛰어놀 수 있도록 설계된 놀이터다. 지난 3일 오전 초록어린이집은 이곳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다. 발달장애·뇌성마비 등 장애 아동 16명과 부모들이 모여 놀이기구를 타고 프로그램을 즐겼다.
 
초록어린이집 이경자 원장은 통합놀이터가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예전에 있던 놀이터는 그냥 모래가 깔린 일반 놀이터였어요. 장애아인 저희 아이들이 쓰기 좀 어려웠죠. 제가 노원구청에 계속 (놀이터를) 장애아동용으로 바꿔 달라고 부탁했어요. 처음엔 예산 문제 등 여러 어려움 때문에 잘 안됐어요. 제가 막 졸랐죠. 우리 아이들이 너무 필요하니까 꼭 해달라고."
 
초록숲놀이터는 사회복지법인 세이브더칠드런, ㈜코오롱, 서울시 등이 함께 한 캠페인 '놀이터를 지켜라'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2018년 통합놀이터로 탈바꿈했다.
 
통합놀이터 바닥에는 모래 대신 우레탄을 깔았다. 휠체어·유모차 바퀴가 매끄럽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노란색 미끄럼틀 뒤편에도 휠체어·유모차가 오를 수 있도록 완만한 경사로가 있다. 미끄럼틀 가로 폭은 1.5m 이상으로 넓다. 아이들이 누운 채로도 미끄러질 수 있도록 설계한 결과다.
 
미끄럼틀 옆엔 회전무대(뱅뱅이)가 있다. 회전무대도 턱이 없고 진입로가 넓어 유모차가 쉽게 들어갈 수 있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트램펄린 역시 계단이나 턱이 없고 일반용보다 탄성이 높지 않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이혜진(가명·6세) 양이 마구 뛰어도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는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시민연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 아동도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통합놀이터는 전국에 딱 31곳뿐이다. 행정안전부가 운영하는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시스템'에 등록된 놀이시설은 8만 2084개. 전국 놀이터 중 약 0.037%만이 장애 아동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란 얘기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통합놀이터 초록숲놀이터에서 이혜진(가명‧6세) 양이 트램펄린을 타고 있다. 주보배 기자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통합놀이터 초록숲놀이터에서 이혜진(가명‧6세) 양이 트램펄린을 타고 있다. 주보배 기자
김미소(30대·가명) 씨는 뇌성마비가 있는 딸 윤예현(4세·가명)양이 탄 유모차를 끌고 있었다. 미소 씨는 집 앞 놀이터에 예현이를 데려갈 수가 없다고 했다.
 
"저는 첫째 아이가 비장애 아동인데 일반 놀이터에서는 (예현이랑) 같이 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예현이가 (장애가 있어서) 보행이 안 되다 보니까, 유모차를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다른 놀이터에서는 이렇게 (바퀴에) 걸리는 거 없이 다니기 쉽지 않아요. 장애아동은 일반 놀이터에서 못 놀죠."
 
미소 씨는 놀이터가 아이들의 발달과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예현이가) 확실히 놀이기구를 좋아하긴 해요. 애들은 놀이기구 통해서 자극을 받는 게 중요하고 그네 타는 것도 치료 수업 중에 하나거든요. 감각 통합 수업이라고, 그네에 타서 움직일 때마다 중심 잡는 과정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게 많아요. 근데 (예현이가 탈 수 있는) 이런 그네는 일반놀이터에 잘 없어요."
 
한사랑(40)씨도 아들 한이를 집 앞 놀이터에 데려갈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이가 방방이(트램펄린)같이 생긴 거 있잖아요. 거기에 데려가면 걷지는 못하지만 막 발을 굴러요. 이 통합놀이터가 어린이집 옆에 있는 게 너무 좋아요. 근데 제가 사는 아파트 놀이터에는 한이가 탈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네에 안전벨트도 없고, 미끄럼틀도 너무 높아서 탄 적이 한 번밖에 없어요."
 
전국에 통합놀이터가 31곳뿐이라는 사실을 전하자 사랑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놀이터(통합놀이터)가 그거밖에 없다고요? 저희는 정말 행운이네요."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날아오르고 트램펄린에서 펄쩍펄쩍 뛰어 올랐다. 놀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웃기도 하고 놀이가 마음대로 안 되면 울상을 짓기도 했다. 어린이날 놀이터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었다.
 
이 평범한 풍경이 많은 장애 아동에게 주어지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계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서울 강서구갑)은 2021년 3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장애인등편의법)을 대표발의했다. 장애아동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에 통합놀이터를 설치하고 국가 및 지자체에서 놀이기구 설치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도록 하는 게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그러나 강 의원이 발의한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안은 본회의 심사에 회부되지 못하고 멈춰 있다.

초록숲놀이터에 설치된 놀이기구 회전무대는 유모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주보배 기자 초록숲놀이터에 설치된 놀이기구 회전무대는 유모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주보배 기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비례대표)은 장애아동이 놀이터에서 어린이답게 뛰노는 풍경이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당연한 풍경'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유엔 장애인 권리 협약과 유엔 아동권리 협약을 비준한 당사국이에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7조에 따르면 아동은 장애와 관계없이 모든 아동이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자유를 누려야 된다고 나오고 우리나라는 그에 따르는 조치를 당사국으로서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저는 전국에 통합놀이터가 많이 생겨서 일반 놀이터와 통합놀이터를 구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런 사회가 오는 데 도움이 되도록 22대 국회에서 입법적‧정책적 조치를 강구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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