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없어도" 완수하겠다던 연금개혁…폭탄돌리기 끝에 '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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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 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윤석열 대통령 2023년 신년사 中). 임기 초 선전포고하듯 내세운 '3대 개혁'은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CBS노컷뉴스는 윤석열 정부 2년을 맞아 노동·교육·연금 분야 정책의 현주소를 차례로 점검하고 남은 과제를 조명한다.

[尹정부 2년, '3대 개혁' 현주소]-②연금분야
尹" 회피 않겠다" 완수의지 강조했지만…近2년 가동된 연금특위 '빈손'
개혁 무산 관련 "자체 개혁案 안 낸 정부 책임 제일 크다" 지적 많아
사실상 '재정 안정' 노선에도 구체적 방안은 국회·시민에 전가했단 비판
어렵사리 도출한 공론화 결과도 '비토'…"이럴거면 왜 그 시간·노력 쏟았나"
"보험료율 인상 합의는 성과" vs "이제와 구조개혁 운운, 현상유지하잔 얘기"

정의당 김준우 대표, 강은미 의원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관계자들이 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 결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정의당 김준우 대표, 강은미 의원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관계자들이 8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 결렬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우리가 해내야 합니다."(윤석열 대통령, 2022년 12월 15일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
 
"만약 이번 임기 내에 연금개혁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국회가 무려 17년간이나 미뤄오다 또다시 미룬다는 국민의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김진표 국회의장, 이달 2일 국회 본회의)
 
현 정부의 '3대 개혁' 중 하나인 국민연금 개혁은 노동·교육 개혁 못지않은 난제다. 지난해 말 기준 18~59세 인구 '10명 중 7명' 이상(73.9%, 총 2238만 명)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대다수 시민의 '호주머니 사정'과 직결되는 문제란 점에서 남다른 폭발력을 갖는다.
 
저출산·고령화로 보험료를 내는 생산가능인구가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연금개혁은 필연적으로 '내는 돈'(보험료율)의 인상을 의미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첫 해를 매듭지으며 '여론의 호응이 없어도' 연금개혁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다진 배경이다.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 오기 전인 집권 초기에 방향성을 확실히 설정하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던 이유기도 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1월,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 결과 발표를 두 달이나 앞당기며 '속도전'에 나서는 듯 보였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5년마다 인구구조 변화와 연기금 수익률 등을 반영해 향후 운영계획을 짜는 시산 결과, 연금 고갈 예상시점은 2년 더 빨라졌다(2057년→2055년). 해당 데이터를 독촉한 주체는 개혁 논의를 주도하라고 2022년 7월 세워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다.
 
그랬던 연금특위가 '21대 국회에선 사실상 연금개혁이 무산됐다'며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회기를 3주나 남기고 활동 종료를 조기선언하면서, 올 초 공론화위원회까지 꾸려 도출한 '더 내고 더 받자'는 안(案)은 자연히 '말짱 도루묵'이 됐다. 여야가 보험료율 인상(현 9%→13%)에 잠정 합의한 점을 제외하면, 다시 원점이다.

'더 내자' 잠정합의外 도로 원점…"행정부 책임 제일 커" 지적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오른쪽 두번째부터)과 보건복지부 이기일 1차관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오른쪽 두번째부터)과 보건복지부 이기일 1차관 등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체계적인 연구와 공론화를 충분히 마무리해서" 이르면 이번 정부 말기 '연금개혁 완성판'을 내놓겠다던 윤 대통령의 공언이 '공수표'가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연금행동)은 8일 "21대 국회(연금특위)가 연금개혁을 포기했다"고 성토했다. 하지만, 17년 만의 연금개혁 시도가 좌초한 데엔 입법부 이상으로 행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내심 특정한 방향이 있음에도 고유한 개혁안은 내놓지 않은 채 국회로, 또 시민들에게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막상 구상과 다른 공론화 결과가 나오자 이를 비토하기에 급급했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달 22일 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소득보장 강화안이라 할 수 있는 1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이 시민대표단 과반(56.0%)의 지지를 얻었다고 밝혔다.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재정안정안(2안, 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은 42.6%의 득표율로 밀렸다.
 
연금특위 논의를 충실히 지원하겠다며 그간 뚜렷한 입장을 자제했던 정부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공론화위 발표 직후에 열린 전문가 간담회에서 "당초 재정안정을 위해 연금개혁을 논의한 것인데, 도리어 어려움이 가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고 말했다. 1안을 개혁안으로 확정짓는 데 대해 우회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한 것이다.
 
여당은 한층 더 노골적이었다. 연금특위 국민의힘 간사인 유경준 의원은 공론화위 최종 설문결과를 두고 "지속가능한 연금제도라는 측면에서 명백한 개악(改惡)"이라며 "서민을 교묘하게 희롱하는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규정했다. 또 "전 세계 연금개혁과 우리나라 연금개혁의 취지가 기금고갈을 방지하고 지속 가능한 국민연금으로의 전환이라면, 모수개혁 1안은 근본적으로 이 취지에 반대하는 안"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당정의 이러한 '속내'는 어느 정도 일관된 노선이기도 했다. 앞서 복지부는 작년 10월 말 정부 차원의 연금개혁 로드맵인 '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통해 국민연금을 지속가능한 제도로 개편하는 데 방점을 찍겠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과 비교해 소득대체율은 비슷한 반면 보험료율은 '반토막' 수준(OECD는 평균 18.2%)이란 점을 강조하며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얼마나 내고, 받을지'를 명시한 모수(母數)개혁 방안은 일절 제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의 논의를 총망라한 연금재정계산위원회 최종 보고서에 담긴 '24가지' 시나리오를 2~3개로 압축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맹탕"이란 비판이 잇따랐다. 앞서 '4가지 연금개혁안'을 제안한 전임 문재인 정부보다 퇴행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왔다.

재정안정론자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회 연금특위가 실질적인 조정안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작업들을 그 전에 밟지 못했던 것이 패착"이라며 "연금개혁의 기본 방향, 중장기 비전, (관련) 팩트 확인 등이 토대가 된 후 상호 신뢰와 양보가 있어야 하는데 앞의 과정이 (전부) 빠졌다"고 지적했다. 저간의 특위 회의가 '지극히 형식적'으로 진행됐다고도 밝혔다.
 
벌써 2년 가까이 가동된 연금특위가 '유명무실'해진 근본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게, 특위 논의에 참여해온 오 위원장의 시각이다.

오 위원장은 "연금개혁은 행정부의 몫이다. 국정 운영 책임자로서 제도 관리를 하잖나"라며 "이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을 국회가 결정하라고 던져버리니, 지금 이렇게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장강화 진영에선 더 강도 높은 비판도 나왔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정이) 처음부터 연금개혁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며 "공론화가 끝나자마자 이걸 종결지으면 반발이 커지니, 질질 끌다가 결국 '파투'를 낸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연금특위는 지난 7일 주호영 위원장과 유 의원,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이 자리한 가운데 소득대체율 2%p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며(여 43% vs 야 45%), 최종합의 결렬을 선언한 바 있다.

당정, 공론화 결과 '스스로 부정'…"안 받을 거면 왜 진행했나"

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장(가운데)과 국민의힘 유경준(오른쪽),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여야 간사가 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종료 및 출장 취소 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장(가운데)과 국민의힘 유경준(오른쪽),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여야 간사가 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종료 및 출장 취소 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김 의장 등이 막판 합의 도출을 위해 여당이 밀었던 '더 많이 내는' 안과 '더 받는' 야당 지지안을 절충해 '보험료율 15%·소득대체율 50%'안을 대안으로 거론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국민의힘 측이 이를 거부했다는 전언이다.
 
남 교수는 이에 대해 "막상 (야당이 한발 양보한) 요율 15%안을 내놓자 (여당이) '기업 부담'을 이유로 발을 뺀 것 아닌가"라며 "보험료를 이만큼 안 올리면 기금이 (곧) 고갈된다는, 협박에 가까운 주장을 펴는 데 썼을 뿐 실제로는 그 안을 갖고 경영계 등을 설득할 마음도 없었던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공론화위 숙의 과정상 재정안정론자들이 주장한 '요율 6%p 인상'에 가장 난색을 표한 것은 재계였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태환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도 "많은 국민들이 자신의 생업을 제쳐두고, 보다 나은 한국사회와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단 사명감으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50%안을 내어왔다"며 "이럴 거면 왜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공론화위를 구성하고 국민들의 소중한 시간과 일상을 빼앗았나"라고 되물었다.

당정이 뾰족한 대책은 없이 그들이 승인한 공론화위 논의 결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을 야기했단 비판이다. 이에 더해 지난달 29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연금개혁을 차기 국회로 넘기자'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복지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그래도 (연금개혁이라 하면) '합리적인 안'이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였던 것으로 안다"며 "연금의 지속가능성이나 국민의 수용성을 보고 받아야지, (공론화안이라고) 무조건 합의할 수는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박한 평가가 지배적인 와중에 윤 정부의 향후 연금개혁을 가늠할 지표인 '성과'에 대한 입장도 엇갈린다.

오 위원장은 "(그럼에도)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낸 것은 분명하다"며 '반(半)보'의 진전은 있었다고 바라봤다. 반면 남 교수는 유 의원 등 여당이 22대 국회에선 모수개혁 외 '구조개혁 논의가 제대로 돼야 한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국민연금은 현 상태로 동결하고 기초연금·퇴직연금으로 (노후 보장을) 하잔 얘기"라며 "그게 되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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