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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노컷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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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때때로 영화의 엔딩은 영화관 밖을 나가서도 계속된다. '행복의 나라'는 영화적으로는 분명한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여전히 '행복의 나라'를 찾아 나아가고 있기에 영화관 밖을 나와서도 관객들이 저마다의 엔딩을 이어나가게 만든다. '행복의 나라'란 어떤 나라이며, 누가 만들어가는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말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이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따라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린 '행복의 나라'로 돌아왔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우리가 익히 아는 시대다.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위해 누군가는 권력을 위해 움직이던 시기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폭력으로 짓밟던 엄혹한 시대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 명의 인물 정인후, 박태주, 전상두(유재명)가 '행복의 나라'의 중심이다.
 
재판은 옳은 놈, 그른 놈을 가리는 게 아니라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이라던 정인후는 여느 영화에서처럼 어떠한 계기를 통해 각성한다. '행복의 나라'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숨겨 주던 아버지의 죽음이다. 그렇게 정인후는 이기고 지고는 물론 옳고 그름마저 이미 정해진 판에 뛰어들며 변화하고 성장한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
정해진 판에 뛰어든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역사가 스포'라는 말이 있듯이 정인후뿐만 아니라 관객들 역시 '행복의 나라'의 결말을 알고 있다.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엔딩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이미 '행복의 나라' 속 정인후와 박태주의 결말을 알고 있듯이, 사실 영화 속 정인후와 변호인단 역시 재판의 결말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짐작하고 있다. 이처럼 관객과 정인후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달려가지만, 이 영화에서 결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정인후와 관객들이다.
 
이미 알고 있는, 질 것이 분명한 재판을 향해 나아가고, 그걸 바라보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 어떤 신념을 가질 것인가다. 평범한 누군가는 시대를 구하고자 하고, 평범했던 누군가는 시대를 짓밟고자 한다. 정인후에게 중요한 것은 적어도 목숨이 폭력적인 힘에 의해 허무하게 스러져가는 것이 아니다.
 
정인후는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을지 몰라도 점차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며 스스로가 시대의 증인이자 대변인이 된다. 그렇게 박태주의 변호인이자 시대의 변호인이 됐다. 관객들 역시 정인후의 변화와 분투, 박태주의 꺾이지 않는 신념, 전상두의 욕망으로 점철된 신념을 바라보며 점차 자신만의 신념을 꺼내 들여다보게 된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
이미 끝을 알면서도 앞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정인후와 박태주가 맞이하지 못했던 '행복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행복의 나라'로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들여다보는 신념, 떠올리는 질문이 더 중요한 영화다. 동시에 아직 오지 않은 엔딩인 '행복의 나라'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신념을 담은 영화다. 그게 이 영화가 말하는 정인후와 우리들의 '시대정신'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후반부 골프장 신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골프장 신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또 다른 폭력과 욕망에 의해 어떻게 짓밟히게 될 것인지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기나긴 유신 독재 정권이 끝난 뒤 쿠데타를 통해 들어선 정권 역시 폭력적인 독재 정권이다. 그 처참한 현실의 시작점이 골프장 신이다.
 
정인후가 구하고자 하는 박태주는 시대가 구해야 할 정의이자 생명을 대변한다. 골프장 신에서 박태주의 목숨을 위해 전상두의 골프공을 주우러 뛰어다니는 정인후의 모습은 앞서 여학생 복싱 선수를 따라 뛰던 정인후의 모습과 대비되며 더욱더 부각된다.
 
오롯이 자신의 실력으로 상대와 마주하는 스포츠인 복싱 선수 뒤에 새겨진 '승부'라는 글자를 따라 자신의 의지대로 뛰는 정인후와 영화 속 권력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스포츠 골프, 그리고 폭력의 상징인 전상두의 의지에 따라 뛰어야 하는 정인후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어떻게 짓밟히는지 대비해 보여준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
그리고 이어진 장면을 통해 필요한 건 야만적인 폭력에 맞서는 정신임을 직접적으로 만나게 된다. 전상두와 일대일로 만난 복도에서 전상두의 질문에 자신의 신념을 거리낌 없이 밝히던 정인후는 이후 영화의 후반부에 다시 한번 전상두를 향해 자신의 말을 일갈하듯 토해낸다.
 
그러나 이때의 정인후는 앞서 전상두를 바라보던 정인후와는 다르다. 앞서 정인후는 '자신'이라는 개인 안에서의 신념을 이야기했다면, 뒤의 정인후는 자신을 넘어 시대 안에서의 신념을 이야기한다. 이기고 지고, 옳고 그름마저 정해진 세상에서 적어도 인간의 생명과 존엄만은 함부로 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12·12를 다루며 전두광과 이태신의 대립을 중심에 놓은 '서울의 봄'과는 같은 시대를 다루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대를 이야기한다.
 
'행복의 나라'는 '서울의 봄'과 같은 스펙터클이나 오락성은 없다. '서울의 봄'이 대립하는 두 인물을 내세워 어느 한쪽을 응원하게 만든다면, '행복의 나라'는 시대를 살아가는 세 인물을 통해 우리는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변호인'을 떠올리는 듯한 주인공, 이미 '서울의 봄'을 통해 만난 동시대이기에 여러모로 기시감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여러모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행복의 나라'란 어떤 신념과 시대정신이 필요한 시대인지 질문이 필요한 지금이기에 '행복의 나라'는 지금 이 시기에 유효한 영화인지 모른다. '행복의 나라'의 결말은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영화 '행복의 나라' 스틸컷. NEW 제공
극장가를 웃음바다로 만들고 있는 '파일럿'에서 여장남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조정석은 '파일럿'과 정반대 결의 역할을 맡아 또 다른 호연을 보여준다. 조정석이란 배우가 가진 깊이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고(故) 이선균이 연기한 박태주는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어리석은 원칙주의자'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박태주는 단조로워 보일 수 있지만, 이선균이 연기하면서 단순하지 않게 만들었다.
 
유재명이 연기한 전상두는 이제껏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전두환씨를 모티프로 한 캐릭터들과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기존의 전두환씨를 모티프로 한 캐릭터가 영화적인 인물에 가까웠다면, 유재명이 연기한 전상두는 더욱 현실에 발붙인 느낌이다. 유재명은 그러한 시대의 전상두를 완벽하게 구현했다.
 
124분 상영, 8월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행복의 나라' 포스터. NEW 제공영화 '행복의 나라' 포스터.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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